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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145호의 고창읍성.
 사적 제145호의 고창읍성.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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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올봄 내로라하는 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데 대학졸업과 함께 취직을 해 한시름 던 기분이다. 그런데 부모입장에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늘 조마조마하다. 최선을 다해 좋은 인간관계로 근무하라는 말에 녀석은 "어떻게 구한 직장인데 잘 적응하여 열심히 해야죠!"라며 걱정을 하지 말란다.

이런 녀석이 휴가를 얻었다며 대뜸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1박 2일 가족여행 어때요! 시간 내실 수 있죠?"
"나야 좋지! 네가 계획을 잘 짜 보라고!"
"그러시면 제가 알아서 할 게요. 숙소도 미리 알아보고 코스도 정하고요."
"엄마랑, 동생하고도 상의해야지!"
"엄마는 무조건 OK(오케이)래요. 동생이야 불만이 있겠지만 잘 이야기 해볼게요."

녀석은 목소리에 신이 나있다. 가족여행을 떠난다니 모처럼 집안분위기가 활기차다. 요즘 다 큰 애들은 자기 또래끼리 배낭여행이다 해외여행이다 하여 부모와 함께하는 여행은 탐탁치 않게 여긴다던데 가족끼리 휴가를 보내려는 녀석이 참 기특하다.

아들은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전라북도 고창을 행선지로 정한 모양이다.

"고창읍성 성돌이도 하고, 선운사 구경도 하고, 그곳에서 가까운 해수욕장도 가보자구요!"

고창읍성 답성놀이 해볼까

우리는 서해안고속도를 따라 정오를 넘겨 영광 법성포까지 차를 몰았다. 법성포에서 '굴비정식'으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 진수성찬이 우리 입을 즐겁게 했다. 구시포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잠깐 발을 담그고 첫날 주목적지로 지목한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고창읍성 앞 동리 신재호 선생 고택.
 고창읍성 앞 동리 신재호 선생 고택.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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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에 도착하니 고즈넉한 초가 한 채가 눈길을 끈다.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 고택이다. 동리 선생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를 체계화시켜 판소리 여섯마당을 집대성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이곳 고택은 선생이 말년까지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후학을 불러들여 명창들을 길러냈다는 곳이라고 한다.

마당에 있는 우물이 정겹다. 고택 분위기가 예전 우리 고향마을에 온 것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좁은 방안에 밀랍 인형들이 소리 공부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선생의 가르침에 목에서 피가 날 때까지 소리연습에 몰두했을 명창들의 애절한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이곳은 동리국악당, 판소리박물관이 있어 남도판소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신재호 선생 고택과 연계하였다.

고택을 뒤로 발걸음을 옮기니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는 '세 여인의 청동조각상'이 우리를 맞는다.

딸내미가 답성놀이 유래 안내를 보고서 호들갑이다.

 고창읍성 답성놀이 여인상.
 고창읍성 답성놀이 여인상.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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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면 좋은 일이 있나 봐! 세 번 돌면 극락승천 한다는데…. 날이 너무 더운데 우린 어쩌지?"
"극락승천 한다면야 세 바퀴 아니라 열 바퀴라도 돌아야지!"

딸은 말을 꺼내고선 내 우스갯소리에도 손사래를 친다. 아내도 힘들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성곽을 한 번은 돌아야 한다는 내 제의에 모두 순순히 따른다.

역사가 살아있는 고창읍성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은 모양성이라고도 부른다. 나주 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성곽이다. 성의 둘레 1684m, 높이 4~6m로 면적은 약 5만여평이다.

 대부분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
 대부분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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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축조할 당시 19개 군·현별로 구간을 분담하여 외침을 막기 위한 유비무한의 슬기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성벽에 '제주시(濟州始)', '화순시(和順始)', '나주시(羅州始)'라고 구간마다 각자되어 있고, 동문 옹성 성벽에는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어 이를 유추해보면 계유년에 축조되었고 여러 지방이 합심하여 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창읍성은 전략적 요충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성에는 북문(공북루), 서문(진서루), 동문(등양루)이 있고, 3개의 성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옹성(甕城)을 쌓았다. 또 성벽에 돌출시켜놓은 치성(雉城)이 6개이다.

사용된 석재는 대부분 자연석이지만 초석, 대리석, 당간지주 등 절터에서 나온 듯한 석재들도 간혹 끼여 있다. 특히 공북루 주춧돌 높이가 각각 다른 게 이채롭다. 주춧돌이 1m쯤 되는 것과 기둥이 땅바닥까지 내려온 것이 묘한 흥미를 돋운다.

성 안에 동헌, 객사 등 22개 동의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있었다는데 병화로 소실되고, 1976년부터 복원해오고 있다고 한다. 성 안에는 관아만 만들고 백성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 유사시에 성 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순천 낙안읍성이나 서산 해미읍성과는 다르다.

성곽을 걸으며 느껴본 조상의 숨결

 고창읍성의 성돌이는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고창읍성의 성돌이는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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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우리 가족.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우리 가족.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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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창읍성 정문인 공북루에서 시작하여 성을 한 바퀴 걷기로 했다. 성의 폭이 꽤 넓다. 성벽 바깥쪽에도 철쭉밭 사이로 또 둘레길이 있다. 성이 구불구불하니 바깥쪽 길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구불구불하다. 그러니까 고창읍성은 성 바깥쪽 아랫길, 성곽길, 그리고 울창한 숲이 우거진 성 안길이 있어 걷는 기분이 각각 다를 것 같다. 철쭉이 필 때는 성 밖으로, 벚꽃이 필 때 성 안으로 걷는 게 운치를 더한다고 이곳에 살며 늘 성을 걷는다는 사람이 귀띔을 해준다.

앞서가는 아들이 첫 번째로 도달한 치성에서 연신 카메라를 터트린다. 'ㄷ'자 모양의 치성은 사방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곳인데 시야가 탁 트여 사진 찍기에 참 좋은 곳이 되었다.

"아버지, 이곳은 읍성인데 산성 분위기가 느껴져요."
"그렇구나. 나지막한 산의 지세를 따라 축성한 것 같지?"

 고창읍성에서 바라본 고창읍내이다.
 고창읍성에서 바라본 고창읍내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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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위에서 고창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후덕 지근한 날씨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준다. 작은 오르막에는 잠깐 숨을 헐떡이고, 내리막에서는 숨을 고른다. 성문 주변 쉼터에서 쉬고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다.

성곽의 돌에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것 같지만 눈여겨보면 위 아랫돌이 잘 맞물릴 수 있도록 짜 맞춘 축조기술이 놀랍다. 돌들이 숨쉴 수 있는 틈에서 조상의 숨결이 느껴진다. 숨쉴 공간에는 담쟁이 넝쿨이 뻗어 친구가 되어 놀아주는 것 같다.

 한여름날 고창읍성의 아름다운 모습.
 한여름날 고창읍성의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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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가 휜 고창읍성의 소나무숲. 색다른 운치를 자아냈다.
 허리가 휜 고창읍성의 소나무숲. 색다른 운치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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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보니 성곽 옆으로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소나무가 한결 같이 허리가 휘어졌다. 성밖 동리 선생 문하생들이 내는 판소리 가락에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이렇게 굽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을 도는 데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바쁠 것 없는 느릿느릿 발걸음으로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소중히 여겨진다.

아내 얼굴이 빨갛게 달궈졌다. 기분 좋은 표정이다.

"고창읍성을 밟으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고, 한 바퀴 걷다보니 다리에 힘이 붙은 느낌이에요."

아내는 아들에게 고창읍성을 다녀간 기념으로 사진 한 방을 부탁한다. 아내의 옅은 미소와 떠나갈 듯 노래를 부르는 한여름의 매미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싶다.

 성돌이를 끝내고 아내가 고창읍성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돌이를 끝내고 아내가 고창읍성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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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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