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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전 영등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해병대 성폭력 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사건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4일 오전 영등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해병대 성폭력 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사건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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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씻을 땐 떨어진 비누를 줍지 말라 했던가.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풍자하는 이 표현을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게 됐다.

최근 해병대 장교가 운전병을 성추행한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고, 해당 부대가 이를 은폐·축소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군대 내 성폭력이 침묵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군대 내 비일비재한 성폭력... "심각한 문제인지 몰랐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복무를 했던 A씨는 2008년 군대 내 성폭력을 목격했다. 자신보다 선임이었던 병장이 후임병이었던 이등병에게 성적 모욕감을 준 것이다. A씨의 말에 따르면, 평소 잘못된 성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 병장은 어눌한 성격이었던 이등병에게 "너 같은 것도 여자랑 잘 수 있겠냐", "너 고X 아니냐"는 등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함께 휴가를 나갔을 때는 공중 화장실로 따로 불러 자위 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B씨 또한 1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같은 내무반에서 선임병의 후임병 성폭력을 목격했다. 병장이었던 선임병은 후임이었던 특정 일병을 밤마다 자신의 옆자리로 불러 잠이 들기 전까지 중요 신체부위를 쓰다듬는 등의 성추행을 일삼았다. 병장이 가해를 하는 동안 내무실은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A씨와 B씨는 이런 상황들을 목격했지만 둘 다 가해자의 후임이었던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결국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가해자인 선임병들이 전역할 때까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최근 군대를 다녀 온 이들이 증언한 사례다. 분명 이런 일들이 군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부르지 못하는 군대 시스템이 문제

군대 내 성폭력이 공개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은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군대이기 때문에 사건 자체가 문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군대 안에서는 친밀함 표현이나 장난을 이유로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남자가 뭘 이런 것 가지고 그러냐'며 암묵적으로 성폭력이 용인되는 문화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피해자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피해자 쪽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군대 자체가 폐쇄적인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군질서 등의 이유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보고를 해도 상부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군대 시스템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에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신고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4.4%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성폭력 신고율도 7%로 낮은데 비해 더 낮은 비율이다.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으레 있는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아서", "상관에게 보고해도 소용이 없어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너도 당해봐라"... 침묵 속에 피해자가 가해자로, 고통의 순환 고리

 해병대는 7월26일부터 8월13일까지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해병대 여름캠프’를 진행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최근 대령이 운전병에게 입을 맞추고 바지를 벗기는 등 강제로 추행한 '해병대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서 군대 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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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군과 당사자들의 소극적인 태도 속에서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대령이 운전병에게 입을 맞추고 바지를 벗기는 등 강제로 추행한 '해병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이아무개(22) 상병은 현재 외부 병원 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사건 후 심한 스트레스로 탈수 등 육체적인 병까지 얻었다.

현재 해당 부대는 이 상병의 상태를 알면서도 복귀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이 상병은 "그렇다면 병원복을 입고 복귀하겠다"며 군복을 입는 것도 거부할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남성 간 성폭력에서 피해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자괴감에 고통 받고 있다. 자신이 "이제 게이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이 문제가 해결이 되더라도 전역 후 사회에서 가정을 꾸리는 등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괴로워 한다는 것이다.

이 상병은 5일 오전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증인신문 및 피해자 조사 중에 과호흡에 의한 쇼크로 쓰러져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았다. 피해자의 불안한 육체·심리 상태를 참작 받아 군 법관, 군 검찰, 가해자 측 변호인과 피해자의 변호인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단 한 번 증언을 하기로 했던 것인데 성폭력의 기억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그에겐 이마저도 무리였다.

이처럼 피해자가 해결 의지를 갖고 나선 경우에도 문제는 심각하지만, 피해자가 침묵 속에 방치될 경우 더 큰 문제는 바로 이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군대 성폭력 가해자 중에 80%가 과거 성폭력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은심 활동가는 "선임병에게 암묵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후임병은 내재적으로 갖고 있던 복수심을 그의 후임병에게 '너도 당해 봐라'라는 식으로 되풀이해 결국 악순환 된다"며 "자기가 겪은 부당한 처우를 문제의식 없이 되풀이함에 따라 고리가 계속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군과 당사자 스스로 철저하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개적이고 제대로 된 문제해결로 분위기 쇄신 시급

피해사실도 있고, 군대 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근거가 연구를 통해 제시되면서도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것은 군 당국의 폐쇄적인 자세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법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개 시민단체가 가진 '해병대 성폭력 사건 긴급 기자회견'에서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의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 군인복무규율 제25조 4항은 "군인은 복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진정·집단서명 기타 법령이 정하지 아니한 방법을 통해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이 조항에 의거해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외부의 성폭력상담소나 기타 인권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군대 내 사건 해결관행은 성폭력 사건 자체를 공론화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결되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은심 활동가는 "군대는 성폭력 문제가 조직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은폐·축소하기에만 급급하고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사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 인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피해자들의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서 피해자의 신변보호 조치도 제대로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해병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신변보호 조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피해자가 의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문제를 입 밖으로 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군 당국의 압박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활동가는 "군대 내 성폭력은 상사가 부하에게 행하는 만큼 권력의 문제"라며 "물리적이나 심리적 폭력으로 저항을 억압할 수 있는 군대의 분위기와 문화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대의 문화와 분위기를 바꾸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일어난 '해병대 성폭력 사건'도 제대로 해결 돼 앞으로 일어날 군대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선례를 남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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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마이TV 최인성 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