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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에서 무얼 해야할지 고민하기 위해 떠난 두 청년

타자니아의 입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알렉스와 샘
 타자니아의 입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알렉스와 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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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저는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들어가는 나망가 국경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국경 출입국사무소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날 아프리카 트레블코(Africa Travel Co.)의 우리 트럭에 새롭게 합류한 두 젊은이와 얘기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메웠습니다. 아직 순박함이 얼굴에 묻어나는 알렉스와 샘이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영국에서 왔습니다."(Alex)

-방학을 이용해서 여행하는가?
"아니요. 샘과 함께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Alex)

-대학에 입학해야 되지 않나?
"1년쯤 여행하고 일하면서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보려고요."(Alex)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를 정했나?
"철학과 경제를 복수전공하려고요. 철학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 경제는 제가 일하고자 하는 은행에서 필요한 것이고요."(Alex)
"역사와 경제를 공부할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에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결정하고자 해요."(Sam)

-이번 아프리카 여행은 얼마동안이나 계속할 것인가?
"나이로비에서 빅토리아아폴스까지 3주간의 여행입니다."(Alex)

-여행경비는 어떻게 만들었나?
"고등학교의 스포츠센터에서 청소를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Alex)
"고등학교 졸업하고 5개월, 호텔에서 잡부로 일했습니다."(Sam)

-아프리카여행을 마친 3주후부터는 어떤 계획이 있나?
"미국에서 2달간 워크캠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Alex)
"남미를 여행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야죠."(Sam)

"이렇게 여행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인 것 같구나. 젊었을 때의 여행은 그 젊은이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지만, 어른들의 여행은 단지 마음만이 바뀔 뿐이다. 그러므로 여행도 알렉스와 샘처럼 젊었을 때 하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지."

저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알렉스와 샘의 여행을 진심으로 격려해주었습니다.

#2. 호주의 학생들은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 '자기 결정기간'을 갖는다

시드니에서 온 엄마 수잔과 딸 야나
 시드니에서 온 엄마 수잔과 딸 야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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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모티프원으로 호주의 모녀가 왔습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엄마 수잔과 딸 야나였습니다. 조각을 전공하고 있는 야나와 함께 한국으로 예술문화기행을 온 것입니다.

-야나에 의하면 집안에서 호주를 대표하는 화가와 조각가가 배출되었다면서요?
"야나의 아버지쪽 집안이 예술을 해왔습니다. 야나의 증조할아버지 프랭크는 호주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증조할머니 마젤은 조각가이고 고모인 위버도 화가입니다."(Susan)

-한국에는 며칠일정으로 여행 중인가요?
"2주간입니다."(Susan)

-지금까지 어디를 가보셨나요?
"서울의 인사동과 비원, 리움과 국립현대미술관, 안양예술공원, 경주와 양동마을, 제주도 등입니다."(Susan)

-어디가 특히 좋았나요?
"양동마을이 특히 좋았습니다."(Jana)
"제주도의 일정은 예정보다 단축했습니다. 호주에는 제주도보다 좋은 해변이 많습니다. 동양해변의 다른 풍경을 기대하고 제주도를 갔는데 해변이 호주와 달리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낮에 헤이리를 둘러보았는데 파주까지 발품을 판 가치가 있었습니다."(Susan)

-호주에도 아티스트컬러니가 있습니까?
"멜버른이 작가들이 모여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아티스트컬러니라 할만한 곳이 특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에는 예술을 좋아하는 인구가 많습니까?"(Jana)

-예술지향적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컬렉션을 하는 인구는 소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주는?
"마이너러티입니다. 예술보다는 스포츠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특히 '푸티footy'라는 호주축구가 인기 있습니다. 일반 축구와는 많이 다릅니다. 푸티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호주 축구는 올해의 남아공월드컵에서도 형편없이 탈락했습니다. 테니스와 크리켓 등은 호주 사람들이 스스로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Susan)

-지금 야나의 대학등록금은 누가 부담하고 있나요? 야나 스스로 혹은 부모님이?
"야나의 할머니가 등록금을 내주고 있어요. 할머니께서 야나를 특히 좋아해서 스스로 야냐의 학비를 부담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호주 대학생들의 경우, 파트타임잡으로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거나, 등록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을 졸업한 다음, 취업후 그 대출을 상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자가 비싸서 많이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바로 대학으로 직행하지는 않습니다."(Susan)

-무슨 의미인지요? 고등학교 졸업 후 일정기간 일을 한다는 것입니까?
"저희 때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야나의 세대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1년쯤의 '자기 결정기간'을 갖습니다. 즉 졸업 후 외국으로 나가서 여행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과연 대학에 진학해야할지, 대학에 가야한다면 무엇을 전공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Susan)

-'대부분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의 비율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야나야 얼마나 될까? 아마 70~80%의 학생들이 그렇게 할 겁니다."(Susan)
"이런 추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요. 저는 바로 대학으로 진학한 케이스지만 제 친구들은 국내외, 특히 유럽으로 가서 여행하고 일하면서 거의 반 1년 정도를 보낸 다음 대학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저도 고등학교 때, 몇 개월을 엄마의 원적인 덴마크로 가서 몇 개월을 지냈습니다."(Jana)

#3. 자신의 꿈 찾아 '늦깎이 대학생' 선택한 여자들

정수옥과 친구들
 정수옥과 친구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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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대학교 3학년이라며 예약했던 정수옥과 그 친구들이 왔습니다. 하지만 4명 모두 풋풋한 대학생의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속으로 품었던 그 의문은 그날 밤 이 네 명의 '늙은 대학생(?)'들과 수다를 즐기면서 풀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수옥은 대학교 2학년이었고 나머지 3명은 대학3년을 마친 휴학생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인 이 네 명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들을 찾아 열심히 삶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수옥은 고등학교 때부터 디자인과 이과 과목에 소질이 있었지만 졸업 후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될 만한 이과쪽 전공을 택했습니다. 화학공학과를 다니면서도 금속공예공방에서 일을 돕거나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이는 일들을 계속했습니다. 스스로 디자인한 제품 판매로 소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패션디자인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녀는 과감하게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패션디자인과로 재입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또래 학생들보다 '늙은, 그러나 행복한' 대학생입니다.

이아영은 문예창작학과에 톱으로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을 쓰는 일이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며, 또한 글만 써서 먹고사는 것의 진입장벽이 적지 않게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몇 명의 유명작가들만이 생계가 가능한 세계임도 알았습니다. 그녀는 3학년 때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으로 영어연수를 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학교로 되돌아가는 대신, 영어학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 영어학원 원장님입니다. 물론 작가의 길을 영영 접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과정들이 모두 그 재료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김다영은 대학교 3년 때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의류 쇼핑몰을 창업했습니다. 개업 3년 만에 쇼핑몰은 어느 정도 안정권에 올랐습니다. 언니와 단 둘이서 모든 파트를 책임졌던 3년 동안의 동분서주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직원도 4명 고용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가장 돈 많이 버는 버젓한 '사장님'소리를 듣습니다.

정수옥과 달리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김모아는 대학 3학년 때 휴학하고 금속공예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샵에서 그녀를 절실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고 지금 그 영역에서 기초를 든든히 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졸업을 유보한 이 네 명의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정답이다. 대학이 결코 당신들의 행복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우리 대학들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 마인드를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다. 매년 등록금을 인상하지만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의 입장을 얼마나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학들은 여전히 학생들, 즉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고 그들이 졸업한 후, 어떻게 사회의 벽과 부딪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

대학등록금의 수백분의 일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산 전자제품 하나도 고장나면 공급자가 A/S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졸업 후 취직을 못해도 나 몰라라 한다. 대학이 관심있는 것은 당신들의 미래가 아니라 당신들이 매학기 내는 등록금이다. 대학이 삶의 정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도 아니며 결코 졸업한 학생들의 미래 삶의 질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선, '대학미필'의 당신들이 정답이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아라

저는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모두 입시에 일로매진하느라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황금 같은 시기를 야간학습으로 보내야 하고 모든 밤들을 지식을 외우느라 보내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그들이 면벽을 하고 외우고 있는 입시용 지식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컴퓨터 자판으로 마법처럼 불러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공부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한 대가로 그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지향하는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와 연구에 치열한 것도 아닙니다.

제 눈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삶,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알렉스와 샘이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는 것, 호주의 많은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으로 가는 대신, 세상을 경험하는 일, 정수옥과 그 친구들이 대학 졸업을 유보하고 스스로 사업가가 되어서 세상의 파고와 맞서고 있는 일 등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인 나를 위한 주체적인 삶의 한 단면으로 여깁니다.

세칭 일류대학 출신을 선호하는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요강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고등학교부터 다른 모든 활동을 유보하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 올바른 태도일 수 없습니다. 자신 삶의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타인이 아닌 자신'이 행복한 그리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혼자서 가야 합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불과 진흙이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대학교육,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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