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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라는 말보다 폭염이라는 단어가 흔히 들리는 요즘, 어느 때보다 파도소리와 바닷가가 그리운 나날이다. 지난 주말 그런 바다를 찾아 가려고 하니 TV와 라디오 교통방송에서 말린다. 휴가를 떠난 차량들의 교통체증으로 차도가 주차장이 됐다면서 말이다.

이 더위에 차 속에 갇히면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야 하고, 가다 서다 하는 차량 속에서 나오는 지독한 매연까지. 차길위에서 심신도 지치고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며 찜찜해 하느니, 자전거로 갈만한 가까운 해변을 찾자 해서 발견한 곳이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이다. 강화도에서 제일 큰 해변이며, 세계 5대 갯벌로 꼽힌다는 드넓은 바닷가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런 얘기를 하며 주위에 자전거 여행을 권하니 모두들 벌써 더위를 먹은 표정이다. 사실 직접 타보면 여름날 자전거 여행만의 특별한 쾌감과 수돗물도 꿀맛이 되는 이열치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텐데. 하는 수 없이 홀로 지난 8월 1일 애마 잔차(자전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타고 눈부신 햇살 속으로 돈키호테처럼 달려갔다.

잠자리들만 보이는 여름 한낮의 평야길에서는 자전거탄 군인들을 만나도 너무 반갑다.
 잠자리들만 보이는 여름 한낮의 평야길에서는 자전거탄 군인들을 만나도 너무 반갑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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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로길을 달리다 들른 재미있는 이름의 수퍼 평상에 앉아 음료수도 마시며 잘 쉬어갔다.
 농로길을 달리다 들른 재미있는 이름의 수퍼 평상에 앉아 음료수도 마시며 잘 쉬어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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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가는 자전거길

수도권에서 자전거를 타고 강화도에 가려면 고수들처럼 국도를 타고 차량들과 기싸움을 하며 가든지, 신촌강화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잔차를 싣고 강화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강화도까지 가는 좋은 코스가 생겼으니 바로 공항철도 검암역에서 강화도의 초지대교를 향해 가는 길이다. 인터넷 자전거 카페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에서 알게 된 길인데 이 코스를 여러 번 탐색하면서 찾아냈을 당사자가 참 대단하다.

검암역에서 나오면 광활한 김포 평야 위에 짓고 있는 여러 신도시들이 나를 맞아준다. 그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아직도 건재하다는 듯 푸르고 드넓은 김포 평야가 시원하게 나타난다. 논밭사이로 쭉뻗은 작은 농로길은 어쩜 그리 자전거로 지나가기 딱 좋은지. 호기심 많은 잠자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끝도 없을 것 같은 초록 평야를 달린다. 논밭은 여름 열기도 식혀주는지 농로길을 달리며 쐬는 바람이 참 시원하다.  

한낮의 여름이라 그런지 논밭에 농모님이나 농부님들은 안보이고 흰옷을 입은 백로들만이 논에 옹기종기모여 있다. 그러다가 만나는 주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척 반가운데 자전거탄 군인들을 농로길에서 만나기도 한다. 반가운 마음에 길도 물어보고 짧은 얘기도 나눈다.

이 더위에도 어떤 농부님이 논 한가운데서 초록색의 벼들을 돌보고 있다. 자전거 여행이 내게 준 습관 가운데 하나가 식사를 하다가 밥알이 떨어지면 바로 주워 먹는 것이다. 식구들이 늘 타박을 하며 고치라고 하는데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한 그릇의 밥이 내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손길이 닿는지 봄부터 가을까지의 자전거 여행에서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대명포구에서 바라 본 초지대교에 정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대교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것 같다.
 대명포구에서 바라 본 초지대교에 정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대교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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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때는 갈매기가 놀던 배에, 썰물이 되자 강아지들이 와서 놀고 있다.
 밀물때는 갈매기가 놀던 배에, 썰물이 되자 강아지들이 와서 놀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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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고딩'들과 함께 달리다

길도 확인해 볼 겸 평상이 있는 소박한 동네 슈퍼에 들러 물어보니 주인 아저씨가 저 앞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을 보니 긴 초지대교가 보인다. 정겨운 김포평야에서 벗어나 국도를 타고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와 그 옆 대명포구를 향해 달린다. 국도를 타자마자 거대한 덤프트럭이 사나운 용처럼 굉음을 내며 왼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가 오히려 오싹하게 느껴진다.   

짭쪼름한 냄새가 배어있는 대명포구의 수산물 시장도 구경하고 어느 가게 앞 그늘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날이 덥긴 더운 모양인지 호객행위를 하던 횟집과 식당의 아주머니들도, 자전거만 보면 짖어대는 개들도 모두들 그늘로 숨어 버려 포구가 조용하기만 하다.

친구로 보이는 세 명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헐레벌떡 가게로 들어와 물을 사마신다. 반가운 마음에 친근한 눈길을 보내고 있자니 한 눈에 봐도 고등학생 초보 자전거 여행자들 같다. 목이 마른 건 이 더위에 물통을 다는 곳이 없는 자전거를 탔기 때문.

그건 그렇고 두건과 토시를 안해서 얼굴과 팔뚝이 낮술 한 사람처럼 벌건 초보 자전거 여행자들을 보고 있자니 애처롭기도 하고 어쩌면 그리 내 학창시절과 똑같은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인천 집에서 아침밥 먹고 여태껏 달려 왔다는 그들의 초행길 여행담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다. '고딩'들과 강화도 동막해변에 같이 가기로 하고, 자전거 여행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삼촌뻘인 내가 그만 형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물을 예술적으로 던지는 어떤 주민 아저씨 덕택에 더위도 잊어버리고 고기잡이 구경을 했다.
 그물을 예술적으로 던지는 어떤 주민 아저씨 덕택에 더위도 잊어버리고 고기잡이 구경을 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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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간만의 차가 큰 강화도 바닷가에서는 썰물땐 사막 같은 갯벌을 만날 수도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엔 저곳이 바다였다니..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강화도 바닷가에서는 썰물땐 사막 같은 갯벌을 만날 수도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엔 저곳이 바다였다니..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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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가 아닌가 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긴 초지대교를 건너 드디어 강화도로 넘어간다. 해안가 차도 한쪽에만 있었던 자전거길이 양쪽에 다 생겨 달리기 좋아졌다. 특히 자전거길의 흰 선 이외에도 살짝 턱을 내어 만든 경계선이 자전거 타는 사람을 더욱 안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진을 찍어 표시하고 줄만 그어 넣은 우리 동네 자전거 도로도 이처럼 만들어 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해야겠다.
 
강화도 해안가를 달리다가 만난 새끼섬 동검도에도 잠시 들렸다. 넓게 펼쳐진 해안가에서 동네 아이들은 자전거를 추격하는 듯 마냥 뒤따라 오며 소리를 지른다. 점점 썰물이 돼 가면서 바다 위에 철퍼덕 주저앉은 배들도, 수심이 얕아진 바다 위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멋지게 그물질을 하는 주민들도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진풍경들이다.

동막해변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수평선 저멀리 가물거리는 신기루같은 바다였다.
 동막해변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수평선 저멀리 가물거리는 신기루같은 바다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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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온 초보자전거 여행자들이 동검도 바닷가가 좋아졌는지 갈 생각을 안하고 놀다가 의견이 갈렸는지 저희들끼리 투닥거린다. 아마 동막해변까지 가지말고 여기서 그냥 놀자고 누가 꼬셨을터.

이곳이 좋으면 그냥 놀다가라며 나 혼자 잔차에 다시 올라타 출발한다. 그사이 뜨거운 햇살에 데워진 안장덕분에 엉덩이 찜질을 한다. 누가 형~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열심히 페달질을 하며 쫓아오고 있다.      

갑자기 해안가에 차들이 많아지고 사람들도 북적인다. 드디어 동막해변에 온 모양이다. 뒤에 따라오는 고등학생 라이더들에게 다왔다고 손짓을 하며 바닷가로 달려간다. 다들 한여름의 햇살과 더위 속을 뚫고 찾아온 바닷가인 만큼 옷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 기세다.

그런데 바닷가에 막상 도착해보니 잔차 여행자들을 맞이한 건 사막같은 갯벌이다. 저 멀리 수평선 뒤로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다가 신기루처럼 가물거릴 뿐. 우리는 때맞춰 서해의 썰물 절정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이건 뭥미?'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혼잣말 같은 외침이 나온다.

'어라, 이 바다가 아닌가 봐!'      

공항철도 검암역에서 내려 신도시와 농로길을 따라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 동막해변을 향해 가는 이열치열 자전거 여행 코스
 공항철도 검암역에서 내려 신도시와 농로길을 따라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 동막해변을 향해 가는 이열치열 자전거 여행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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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태그:#자전거여행, #강화도, #동막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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