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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의 출생이란 죽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도를 얻은 자는 죽음을 잘 알기에 죽고 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세속에서 법정 스님의 탄생과 죽음은 일종의 큰 사건이었다. .. 그동안 스님의 글을 관심 있게 찾아 읽던 독자로서, 그리고 편집자로서 스님을 추모하는 글을 펴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공광규, '기획의 글' 몇 토막

 

시인 이원규, 양문규와 더불어 이름 끝 글자가 '규'로 끝난다 해서 문단에서 '쓰리큐'로 불리는 시인 공광규. 그가 기획한 법정 스님 추모 산문집이 2~3개월을 넘긴 끝에 마침내 <맑고 아름다운 향기>란 이름으로 서점가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 책에는 글쓴이가 쓴 글도 한 꼭지 실려 있어, 그 기쁨이 배로 크다.      

 

사실, 글쓴이는 법정 스님 글을 참 좋아했지만 살아생전 한 번도 가까이서 뵙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서점에서 법정 스님 책을 사서 읽을 때마다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왜? 스님께서 '무소유'란 실로 이 세상 진리를 보석처럼 알알이 꿰어놓은 그 글들을 몰래 훔쳐 읽는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쓴이가 삶이 지치고 고달플 때마다 찾아뵙는 한 스님은 늘 "시인은 좋은 글을 만나면 그 글을 쓴 사람을 스승으로 알고 찾아 나서라"고 말했었다. 근데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뛰어난 스승을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그 스승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거리란 말인가.

 

그래도 한 가지 불행 가운데 다행인 것은 살아서 만나지 못했던 법정 스님에게 돌아가신 뒤에라도 이렇게 추모글이라도 한 편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스님을 잃은 슬프고 아픈 마음 한곳을 기우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여기에 법정 스님 추모글을 쓰기 위해 스님이 낸 책을 샅샅이 훑으며, 그 속내를 조금이나마 더 더듬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작은 깨침이 아니겠는가.

 

향촉으로 빛나고, 목탁소리로 스미는 법정 스님 추모글

 

"수필집 <무소유>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분... 법정 스님은 불교의 선승이셨지만, 종교의 계파를 뛰어넘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와 파란만장한 사회 변혁 속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대중의 스승이었고 선승이었다. 스님은 우리 시대가 정치, 사회적으로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고 있을 때,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이끌어 주셨던 종교계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분이었다."

- '책머리에' 몇 토막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를 비롯한 시인, 수필가, 소설가, 언론인, 수녀, 신부, 목사, 원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등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사람들 16명이 쓴 법정 스님 추모 산문집 <맑고 아름다운 향기>(스테디북)가 나왔다. 모두 6부로 짠 이 책은 법정 스님 사상과 삶, 인연 등을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꿰뚫고 있다.

 

제1부 '법정의 사상과 정신'에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쓴 '법정의 환경 생태 사상'과 문학평론가 장영우가 쓴 '무소유 사상의 전파와 그 교훈', 수필가 이명숙이 쓴 '무소유 사상과 그 실천'이 사리알처럼 박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제2부 '법정 스님과의 인연'에는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가 쓴 '다산초당과 불일암의 추억', 소설가 정찬주가 쓴 '삶과 죽음마저 무소유였던……', 전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최정희가 쓴 '다시 가슴에 되새기는 영혼의 모음'이 향촉처럼 타오르고 있다.

 

제3부 '법정 스님의 행장과 수행관'에는 시인이자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을 맡고 있는 임연태가 쓴 '말과 글로 세간에 진리의 원음을 던진 수행자'가, 제4부 '법정 스님의 글들'에는 시인 이소리가 법정 스님이 펴낸 모든 책을 되짚어보는 '산문집과 법문집 등 다양한 저서 남겨……'가, 수행자 손에 쥔 염주알처럼 한 알 한 알 넘어가고 있다. 

 

제5부 '법정 수필의 위상과 가치'에서는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 권대근이 쓴 '문학적 위상으로 승화시킨 무소유 정신'과 시인이자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인 공광규가 쓴 '내 인생의 사유의 그림자'가, 저만치 목탁소리와 풍경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절마당으로 깔리는 산그늘처럼 드리워지고 있다.

 

제6부 '종교인이 바라본 법정 스님'에는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김의정이 쓴 '차향 같이 맑은 위대한 차인'과 시인 김정운이 쓴 '자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수녀 강희경이 쓴 '가톨릭 수도자보다 더 가톨릭적인……', 목사 이훈식이 쓴 '신행일치의 길을 가신 우리 시대의 구도자', 원불교 교무 서도명이 쓴 '우리 시대의 참된 스승', 성공회 신부 최자웅이 쓴 '젊은 날 내 영혼의 향기로운 등불'이 석등처럼 빛나고 있다.

 

이 책을 기획한 공광규 시인은 "22년 전, 내가 불교 종립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첫 직장이 월간 <대원>의 편집부 기자였다"며 "이 책은 스님의 글을 찾아 읽고 인생의 방향을 점검했던 충실한 한 독자이며, 또한 불교문학의 편집자로서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그 역할을 해보고자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정 스님, 우리시대 가장 탁월한 환경 생태사상가

 

"'겉으로는 그럴듯한 자유무역 같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미국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한 협정'이라고 보는 그는 '정치,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강자의 보호주의'라고 풀이하면서 한국농업의 미래를 염려한다. 법정의 생태적 자연사상은 인간과 대지의 일원론적인 상상력에서부터 국토와 농업문제라는 구체성까지를 두루 아우르고 있다."-임헌영, '제비꽃은 제비꽃다워야' 몇 토막

 

임헌영은 법정 스님이 지닌 환경과 생태사상은 "불교적인 연기설에 입각한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이 시대와 장소에서 함께 살고 있는 형제들"이며 "같은 나무에 열린 열매들"이라고 법정 스님이 말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또한 "우리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연의 농도가 짙어서"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그중에서도 같은 지역에 살게 된 것은 불교적인 표현을 빈다면 몇 생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오늘 우리들이 좋으나 궂으나 공동운명체의 멍에를 함께 메고 있다"고 매듭지었다. 임헌영은 이에 대해 "이를 구호화하자면 '서로 손을 잡자, 억만의 이웃이여! / 이 포옹을 온 세상에 퍼뜨리자'로 변형된다"고 풀이한다.

 

임헌영은 그렇다고 법정을 선동가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천만에'라는 낱말까지 써가며 법정 스님은 "선승의 자세로 돌아가서 차분하게 선의 자세를 취한 채 정치와 과학이 못하는 일을 종교가 담당해야 한다고 그렇게 결론을 맺는다"며, 법정 스님이야말로 우리시대 가장 탁월한 환경 생태사상가라고 매듭짓는다.     

 

글과 행동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교훈을 준다

 

"우리는 스님과 함께 가지고 간 수박을 쪼개 먹으며, 뜨락에 한창 피어나던 달맞이꽃을 모습을 구경했다. 이제는 이곳이 원산지라는 달맞이꽃을 바라보면서 유신독재에 신음하던 우리들은 소리 없는 함성처럼 터져 나오던 마음을 그 꽃을 보며 달래기도 했다. / 그런데 잠시 후 스님은 우리가 뱉어놓은 수박씨를 하나하나 쓸어 담고 계셨다."-박석무, '다산초당과 불일암의 추억' 몇 토막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는 지금으로부터 34년 앞인 1976년 뜨거운 8월에 시인 김남주(1946~1994)와 옥우(감옥친구) 김정길과 함께 불일암에서 만난 법정 스님 그림자를 더듬는다. 박석무는 이때 수박씨를 쓸어 담고 있는 법정 스님에게 "왜 그러시냐?"고 묻는다. 과연 법정 스님 입에서는 무슨 말씀이 나올까 몹시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법정 스님 말씀을 들어보자. "수박 냄새를 맡으면 개미가 달려들고, 그러다보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발로 밟아 살생을 하게 되니, 개미가 오기 전에 씨를 주어야만 한다." 과연 법정 스님다운 말씀이다. 박석무는 법정 스님을 생각하면 "내 필생의 공부인 다산 선생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며, 선승과 학자가 닮은 점은 글과 행동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교훈을 주는 데 있다고 못 박는다.

 

그는 "다산은 180년 전에 타계했지만, 이제 스님은 49일 전에 열반하여 막재를 마쳤다"며 "오호통재로다"라고 스님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땅을 친다. "버리거나 남에게 주어 버릴수록 얽매임에서 풀려나고, 더 많이 지니고 쌓아 높을수록 옭죄여 살아간다"는 법정 스님 말씀을 가슴 곳곳에 갈빗대처럼 새기며.  

 

법정 스님을 수행자로서 '마음의 도반'으로 삼았다

 

"가톨릭의 수도자는 수련기를 거친 후에 청빈, 청결, 순천명의 세 가지 서원을 한다. 이들 서원 가운데 청빈이 무엇인지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무소유>였다. 청빈, 즉 무소유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인 그분은 진정 마지막까지 청빈이자 무소유를 실천하신 분이시라고 회고하고 있다." -강희경, '종교인이 바라 본 법정 스님' 몇 토막

 

이 책 끝자락에 있는 '종교인이 바라 본 법정 스님'도 법정 스님 이름을 달고 나와 있는 수많은 책에서 읽지 못하는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강희경 수녀는 수도생활 들머리에 < 무소유>를 읽고 "법정 스님을 수행자로서 마음의 도반으로 삼았다"고 썼다. 기독교회 이훈식 목사는 "법정 스님은 부처님을 통해 세상을 보고자 했고, 부처님을 통하여 자신을 들여다보며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 드리고자 했다"고 믿고 있다.

 

원불교 서도명 교무는 "법정 스님의 입적을 이 시대의 존경하는 종교인이자 스승님을 잃어버려서 마치 자신이 고아가 된 것과 같다"고 적었다. 성공회 최자웅 신부는 "스님의 글을 통해서 종교를 초월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청정하고 자유로운 수행의 뜻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며 "무소유의 향기가 늘 영원하기"를 빌었다.

 

그밖에도 다른 법정 스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참 좋고 새로운 글들이 많다. 법정 스님과 만난 인연을 따뜻하게 추억하는 작가 정찬주가 쓴 글, 조계종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이 "법정 스님은 차를 좋아하는 '차인'이었다"고 되돌아보는 글, 시인 이소리가 1972년 <영혼의 모음>에서 시작된 법정 스님이 펴낸 49권이나 되는 책을 간추려 정리한 글,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권대근이 법정 스님 글쓰기를 수필문학 차원에서 평가하고 문학사적인 위상을 재조명한 글, 시인 공광규가 깊은 성찰과 사유의 깊이를 되짚으며 문학 인생에 있어서 스승이 되어준 법정 스님을 추억하는 글, 시인 임연태가 법정 스님 행장과 수행관에 대해 쓴 글 등도 사리알처럼 반짝거린다. 

 

임헌영, 박석무 등 16명이 저마다 새로운 눈으로 읽은 법정 스님 추모 산문집 <맑고 아름다운 향기>는 법정 스님 사상과 정신, 삶, 글, 스님과 만난 인연 등... 법정 스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16명이 쓴 글들은 하나 같이 법정 스님 몸이 되고, 마음이 되고, 가사가 되고, 목탁이 되고, 경전이 되어 '우리시대 부처님'으로 바짝 다가선다.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살다 간 '우리시대 부처님'

 

소설 <무소유>를 쓴 작가 정찬주는 "속가조카로서 피붙이인 현장 스님이 가장 명쾌하게 정의를 하신 듯하다. '법정 스님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티베트 사람으로 살았고, 가난한 인도 사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셨다'"고 말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은 "법정 스님은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무소유의 사상을 실천하신 '차인'의 삶을 살았다"고 평했다.

 

누리꾼 개울옆 (POETL**)은 <맑고 아름다운 향기> 독자리뷰에 "법정스님 추모 산문집이 나와 관심 있게 읽었다"며 "16명의 필자가 책을 쓰다 보니 책의 곳곳마다 그들이 만났거나 겪은 스님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써 있었다. 문학가로서 생태사상가로서 수행자로서 또는 스승이거나 가족의 모습으로 보여진 스님의 생전 이야기가 생생하게 마음을 울렸다"고 썼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가 전남대 상과대 3년을 마치고 진리를 찾기 위해 1955년 오대산으로 떠난다. 하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에 있는 선학원에서 그 시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 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생활을 시작하다가 28세이던 1959년 2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959년 4월에는 해인사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고,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한다. 1960년대 끝자락에는 서울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 불교경전 번역작업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만들어 유신철폐운동에 앞장선다. 1975년에는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뒤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4월에는 산문집 '무소유'를 펴낸 뒤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1992년부터 강원도에서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 혼자 살았다.

 

1994년에는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마음과 삶을 맑히는 운동을 펼치다가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해 회주로 주석하면서 신도들에게 1년에 여러 번 정기법문을 들려주었다. 2010년 3월 11일 오후 1시52분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법랍 54세, 세납 78세.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맑고 아름다운 향기 - 법정 추모 산문집

임헌영.박석무 외 14인 지음, 스테디북(2010)


태그:#법정 스님, #맑고 아름다운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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