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바다열차를 타고 도착한 정동진역
 바다열차를 타고 도착한 정동진역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강릉에서 출발한 바다열차는 정동진역에 멈췄다. 새해 아침이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고 왕년의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도 유명한 정동진.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기도 하다. 열차는 이곳에서 15분간 정차한다. 잠깐 내려 정동진 해변의 서정을 카메라와 눈동자에 담기에 많은 여유까진 없어도 그럭저럭 충분한 시간이다.

 정동진이라는 지명은 광화문의 정동쪽에 있다는 뜻이란다.
 정동진이라는 지명은 광화문의 정동쪽에 있다는 뜻이란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정동진 시비
 정동진 시비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정동진역에 있는 조각
 정동진역에 있는 조각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정동진에 처음 온 것은 아니었는데, 여기가 이렇게 좋은 줄은 처음 알았다. 한겨울, 일출을 봐야한다며 떠지지 않는 눈을 부벼 가며 새벽 네 시에 끌려왔을 때와는 정말 달랐다. 아무리 정동진 일출이 장관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도 들지 않는 것임을.

 정동진 바닷가에 앉아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 셋. 나도 이렇게 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 속으로 '보고싶다 친구야' 했다.
 정동진 바닷가에 앉아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 셋. 나도 이렇게 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 속으로 '보고싶다 친구야' 했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이내 다시 출발한 열차는 묵호, 동해를 거쳐 삼척선으로 접어든다. 모니터 화면과 방송을 통해 승무원이 진행하는 OX 퀴즈 게임이 시작됐다. 나는 그냥 앉아 있었지만 절반쯤 되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그려진 동그라미와 가위 사이를 설왕설래 한다.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다. 끝까지 남은 사람에게는 조그만 기념품도 주어졌다.

즐거운 바다열차의 추억을 뒤로 하고 종점인 삼척역에 내렸다.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이나 삼척 해변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 삼척선의 종점까지 와보았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었다. 여길 또 언제 와 보리. 강릉에서 삼척까지는 한 시간 이십 분이 걸렸다.

"거기 뭐 볼 것도 없는데…."

삼척역은 시내와 약간은 떨어져 있어서, 뭘 구경하려면 택시로 기본요금쯤 나올 거리를 가야 한다. 하루 종일 기차만 탔더니 다리에 기운이 넘쳐서 걸어가볼까 했는데, 웬걸. 지도가 순 엉터리라 이걸 믿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로변에 있는 지도와 역에서 받은 관광안내도가 영 딴판이라서 헷갈려하다가 그냥 택시를 타는 편을 택했다.

"동굴탐험관이오."

동굴탐험관과 동굴신비관, 시립박물관 등이 모여있는 엑스포타운과 근처 죽서루 정도를 둘러보고 추암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택시기사 아저씨의 반응은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헐…. 거기 뭐 볼 것도 없는데."

일단은 주행하고 있으면서, 그 볼 것 없는 거 보러 가는 내가 지불하는 돈 받을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자 기분이 좀 상했다. 그래서 내가 "거기 이것저것 모여 있어서 볼 거 많아 보이던데…. 그럼 삼척에서는 뭐 봐야 돼요?"라고 묻자 아저씨는 "삼척엔 바다랑 동굴 말고는 볼 거 없어요" 라고 딱 잘라 말한다.

한 곳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 동네의 참신함에 대해서 무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동네? 별로 볼 거 없어~" 하는 겸손은 어쩌면 우리네 특유의 것이라 밉지 않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진저리치는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을텐데... 좀 더 애향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약간의 찜찜함을 뒤로 하고 내린 곳은 동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전시실들이 있는 동굴신비관 앞이다. 삼척은 2002 세계동굴엑스포를 열었을 만큼 동굴이 많고 유명한 곳이다. 특별히 동굴의 종류나 생성과정, 동굴 속 생물들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동굴신비관보다는 실제 동굴의 형태를 재현해 두었다는 동굴탐험관에 가볼 생각이었다. 코앞에 모여 있어서 거기가 거기긴 하지만, 방향치인 나는 헷갈리는 바람에 동굴신비관에 들어가게 됐다. (동굴신비관 입장료 3000원, 바다열차 티켓 소지시 50% 할인)

 동굴신비관 안에 있던 종유석 모형
 동굴신비관 안에 있던 종유석 모형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동굴에 굉장한 생태가치가 있다 해도 가본 동굴이라곤 단양의 온달동굴이 전부고, 그 때의 느낌이라곤 "참 신기하고 시원하다"가 다였던 내게 온갖 복잡다단한 동굴에 대한 설명들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전시관이 생각보다 더 크고 잘 꾸며져 있어서 한 번 휘적휘적 둘러볼 만은 하다고 느꼈다. 사실 대부분 일반인의 눈에는 동굴이 예쁘지도 않고 동굴생물도 징그러울 뿐일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바로 앞에 있는 시립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라서 한 번 훑고 나왔다. 민속자료가 많이 전시돼 있는데 삼척 지역의 전통 생활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원시 신앙이 강한 동네다, 삼척은.)

관동팔경 죽서루, 송강 정철이 가사 짓던 곳

 관동팔경 중 제1경인 삼척 죽서루
 관동팔경 중 제1경인 삼척 죽서루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眞진珠쥬館관 竹듁西셔樓루 五오十십川쳔 나린 믈이 太태白백山산 그림재를 東동海해로 다마 가니, 찰하리 漢한江강의 木목覓멱의 다히고져. 王왕程뎡이 有유限한하고 風풍景경이 못 슬믜니,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객愁수도 둘 듸 업다. 仙션사랄 띄워 내여 斗두牛우로 向향하살가, 仙션人인을 차자려 丹단穴혈의 머므살가."  - <관동별곡> 中

현대어 풀이: 진주관[삼척]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 내리는 물이 (그 물에 비친)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옮겨)가니, 차라리 그 물줄기를 임금 계신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볼수록 싫증나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고,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 길 없구나. 신선이 타는 뗏목을 띄워 내어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할까? 사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무를까?

고등학교 때는 아무리 외워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 가사지만 지금은 내가 송강인 듯 절로 흥취에 젖는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관동별곡>을 지어 노래했던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1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깎아지른 절벽 암반 위에 세운 누각이다. 오십천 강변을 끼고 있어 산과 강이 다 보이는 경관이 훤하다.

 죽서루에서 내려다본 오십천. 건너편에 동굴신비관의 모습도 보인다.
 죽서루에서 내려다본 오십천. 건너편에 동굴신비관의 모습도 보인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단체여행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단체여행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죽은 뒤 용이 되어 뚫고 지나갔다는 용문바위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죽은 뒤 용이 되어 뚫고 지나갔다는 용문바위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죽서루 옆쪽에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와 용문바위가 있다. 신라 문무왕이 죽은 뒤 용이 되어 동해를 지켰다는 얘기는 알았는데 그러고 나서 오십천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문무왕이 바위를 뚫고 가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죽서루 벼랑이 아름답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을 바라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배우 배용준의 핸드프린트
 배우 배용준의 핸드프린트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삼척은 영화 <외출>를 찍은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둘러본 동굴신비관과 죽서루 역시 영화에 등장한 장소. 죽서루에는 주연배우 배용준의 핸드프린트도 있었는데, 시내 곳곳에 일본어로 된 표지판이 있는 걸 보니 한때 욘사마를 사랑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꽤나 찾아왔던 모양이다.

죽서루를 둘러보고 추암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오늘은 별로 걷지 않았지만 날이 워낙 쨍쨍해서 금세 지쳐버렸다. 기운없어하고 있는 가운데 터미널 앞에서 국토대장정 중인 대학생 무리를 만났다.

 국토대장정 중인 대학생들
 국토대장정 중인 대학생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소요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김밥나라(아침) 2500원
바다열차 10000원
구운달걀 500원
삼척역→동굴신비관 택시비 2600원
동굴신비관 입장료 1500원
빵 21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19200원

깃발을 보니 학교에서 간혹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 알 만한 단체다. 오늘 아침에 김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본 TV에서도 국토대장정이 나오더니만, 딱 그 시즌인 모양이다. 나는 요만큼 걷고도 기운이 쭉 빠졌는데,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표정을 보면 다들 담담하고 그저 씩씩하다. 하긴, 힘들다고 찡그려 봐야 더 지칠 뿐일 테지. 나도 체력을 더 길러, 다음 여름에는 꼭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현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