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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TV를 없애야 할까. 고민이다. 켜면 광고와 캐릭터로 가득한 TV, 컴퓨터는 원하는 것만 보게끔 놔두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끼어드는 광고, 화면을 외면하면 들리는 CM송은 왜 그리 귀에 착착 감기는지. 세 살 아이가 한 손에 동물모형을 들고 콧노래를 부른다. 대부업체 광고에 삽입된 곡이다. 기가 막힌다. 뜻도 모르면서 벌써 '현실경제'의 최전방논리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면 상표에 따른 계급이 형성된다. 입고 있는 옷과 가방, 신발, 핸드폰에다 게임기와 엠피쓰리까지 상품이 곧 그 사람을 말한다. 이쯤 되면 부모가 그것도 돈을 벌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적당히 사주어서 달래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 동네가 어디냐에 따라 아이가 타는 유모차의 브랜드도 크게 차이난다. 결국 빚을 내서라도 꿇리는 건 막아보겠다는 부모는 더 허덕이게 된다.

 

좋지 않다.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가. 집에서 하루 평균 3~4시간은 잡혀있는(?) TV프로그램 시작과 중간. 끝에는 항상 광고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채널을 돌려도 소용없다. 다 광고시간이다. 바깥세상의 일은 온통 상표로 가득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게 되면 활동의 대부분은 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노동, 놀이, 교육, 종교 활동 대신 메이커 장난감으로 놀고, 인스턴트 간식을 먹고, 브랜드 가방을 메고 집에 와서 외국기업의 게임기를 붙잡거나 피시방에 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네트워크 게임을 한다.

 

편리함과 속도로 무장한 상품에 대한 구매욕구를 억제하기 힘들다. 홈쇼핑채널은 하루종일 과장된 웃음과 성능포장으로 상품만 소개하는 프로다. 오로지 심각하게(?) 광고만 보는 시청자가 꾸준하다는 것은 소비에 대한 욕구가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오직하면 '지름신'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구매욕구를 숨기는 장치로 널리 회자되겠는가.

 

문제는 어린아이들이다. 유아기때 말배우기부터 TV와 업체에서 만든 비디오로 시작한다. 각종 캐릭터와 브랜드가 엄마 다음에 배우는 고유명사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유부터 시작해서 이유식, 요구르트, 음료와 반찬으로 이어지는 '유아용시장'(유아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선택한다)은 매년 증가세가 가파르다.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러한 쇼핑문화가 과연 그대로 좋은지, 특히 미약한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연구 결과 소비문화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울증·불안증·자부심저하·심신증의 중대한 원인의 하나가 소비문화의 심취였다. 소비문화 관여도가 높아지면 아이들의 심리적 복지는 악화된다는 것이었다.

 

또, 텔레비전과 다른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은 어린이일수록 소비문화에 보다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결과도 있었다. 이를 통한 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한 부문인데. 소비문화 관여도가 높을수록 부모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불안과 우울 정도가 심하고 자부심이 낮으며 심신증의 증세가 많았다. 역방향으로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이러한 통계학적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못해도 소비문화 관여가 강한 불만, 만족을 모르는 욕망, 비교의식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나타내준다.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사람들, 자신이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들, 돈과 물건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들, 경제적 성공을 보다 중시하는 살마들은 더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기 쉽다. 보다 많이 획득하는 것보다 적게 바라는 것이 만족과 행복의 열쇠인 듯하다. 이것은 분명 이 연구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이다.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TV다. 텔레비전은 특히 유아기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읽기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데에 열중하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 소비주의적인 어린이들은 주변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다. 독서, 놀이, 운동처럼 만족감을 주고 창의적인 활동을 거부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들은 아이를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시간을 급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의 해악과 부모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아이가 납득할 수 있으면 억지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기른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랄 것인지에 대해 걱정이 크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알면 당장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즐겨보는 버라이어티와 스포츠, 다큐프로그램은 어떻게 하지? 일도 컴퓨터로 하는 터라 집에서도 항상 켜져 있는데 아이한테는 허용 안 한다는 것이 말이 통할까.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미 익숙해져서 문화가 되어버린 소비주의적 삶에 대한 경고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의식을 깨워야 하며 매체와 최신기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줄리엣 B.쇼어 저·정준희 역 / 해냄/ 2005년3월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해냄(2005)


태그:#쇼핑하기위해태어났다, #BORNTOSHOPPING, #텔레비젼의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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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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