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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0일 오후 5시 10분]

2년 전 이맘때 쯤, KBS를 향해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던 어느 날 저녁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선명한 사진처럼 떠오른다. 2008년 7월 18일 저녁의 일이다. 8월 8일 KBS 이사회에서 해임 결의를 했고,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후 귀국하자마자 나를 해임했으니, 내 목이 달아나기 20일 전 쯤이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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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어느 날 밤의 풍경

그 즈음 어느 날이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이날은 특히 바빴다. 아침에는 변호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검찰의 배임혐의 수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당시 검찰은 5차례에 걸쳐 나의 출석을 요구했다. 담당 검사가 구속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검찰 쪽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이 날은 마침 금요일이라, 오전 10시에는 제작임원회의가 열렸고, 이어 편성본부의 편성보고가 있었다. 제작임원회의는 매주 금요일 오전에 열려 제작과 관련된 주요 사안들이 보고되는 자리였다. 편성보고는 주말의 주요 프로그램과 그 다음 주의 주요 편성내용을 편성본부 팀장들이 사장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오후에는 몇 군데 약속도 있었다.

이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임원들이 만나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워낙 회사가 어수선하던 때라 임원들과 한 자리에서 만나 술 한 잔 나누며 편하게 이야기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쫓아내기 위해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막바지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이미 '친 MB 정권' 이사들이 다수를 점한 KBS 이사회는 해임 결의안 통과를 위해 압박을 높여가고 있었다. 이사회가 열리면 늘 소란스러웠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주변에는 아침만 되면 뉴라이트 소속 데모꾼들이 모여와서 확성기로 고함을 지르며 시위를 했다. 이 시위는 KBS의 간부 수십 명이 모여서 만든 간부노조(공방노)의 대표인 윤명식(현 KBS JAPAN 사장)을 비롯한 간부노조 일부와 뉴라이트 단체 회원들이 시작했고, 얼마 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이 참석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들은 아침에 우리 아파트 앞에서 한 바탕 난리를 치른 뒤 오후에는 KBS 앞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정연주 구속' 등을 외쳤다.

폭풍의 언덕 위에 서 있는 듯

 13일 저녁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KBS앞에는 노조가 내건 정연주 사장 퇴진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2008년 6월 13일 저녁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KBS앞에는 노조가 내건 정연주 사장 퇴진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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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임원들과 오랜만에 만나 소주잔을 나누었던 7월 18일 그 즈음에는 그렇게 회사 안팎에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그 폭풍의 언덕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밤 10시 쯤 되었을까, KBS 두 이사가 전화를 했고, 얼마 뒤 박승규 당시 KBS 노조위원장(현 KBS 보도본부 사회팀장)이 전화를 했다.

그는 당시 KBS를 지키겠다며 KBS 본관 앞에 모여든 촛불 시민들과 부딪치며 싸우기도 했고, <인물현대사> <시사투나잇> <미디어 포커스> 등이 편파방송이라며 '정연주 퇴진'에 올인한 인물이었다. 회사 안팎에는 박승규 노조가 내건 검은 만장이 여기저기 휘날렸다. 그 만장은 나에 대한 저주와 증오의 문구로 가득했다.

박승규 위원장의 전화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별관(KBS 별관) 근방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시민사회단체 두 분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시민사회단체 두 분이 정연주 사장도 이 자리에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군데 더 들러야 할 곳이 있어, 좀 늦을 것 같은데 기다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다리겠다고 했다. 함께 있는 시민사회단체 두 분이 누구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임원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두 KBS 이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에 대한 해임 결의안 추진에 반대했던 두 이사는 이미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그들은 술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밤 11시가 넘어서 박승규 노조위원장 일행이 기다리는 술집으로 갔다. 술집에 들어갔더니, 박승규 위원장, 그의 오른팔 구실을 했던 김성진 기자(당시 노조 총무국장. 현 KBS 보도본부 정치팀 한나라당 반장), 이재원 기자(당시 노조 전임. 현 KBS 청와대 출입기자), 그리고 또 한 명의 노조 간부가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 날 술집에서 만난 당시 노조 간부 셋이 모두 지금 김인규 체제에서 속된 말로 잘 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 술 자리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인 전○○이 있었다. 전○○은 내가 도착하자 바로 자리를 떠났다.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박승규 노조의 핵심들과 술을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2008년 7월 말,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나를 해임하려는 공작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그 폭풍의 시기에, 나와 생각과 가치가 전혀 다른 박승규 노조와 나 사이에 의미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궁금한 게 적지 않다.

한편 시민사회단체 인사인 양○○은 6월 4일 KBS에서 있었던 'KBS 노조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2008년 6월 9일자 'KBS 노보' 특보 34호는 그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이날 KBS 노조 비대위에는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갈등 관계였던 전국언론노조와 KBS 본부 사이에 타협을 이뤄져 양자 간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양자간 '정치적 타협'이 이뤄졌는데, KBS 노조의 '정연주 퇴진 운동'에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듯했다. 그러나 양자간 갈등은 그 뒤 다시 불거져 KBS 노조 지도부 제명 - KBS 노조 언노련 탈퇴가 뒤를 이었다. 지금 KBS 새 노조가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지위를 갖게 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이날 비대위에는 양○○도 참석했다... 양○○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반대,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 반대, 국가기간방송법상 예산통제 반대, 공영방송 민영화 저지 투쟁 등을 올 하반기 언론 투쟁의 4대 핵심 과제로 규정하고 이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은 또 정연주 사장 퇴진 문제에 대해서는 KBS본부와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방송의 공공성 사수 투쟁을 위한 연대 강화와 KBS본부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앞으로는 정 사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KBS 노보' 특보 34호. 2008.6.9)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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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자리에 앉자 박승규 위원장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줄기차게 '퇴진'을 요구해온 그들이 나더러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은 언제 그만둘 것이냐를 묻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즈음 나의 거취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테이프를 틀어놓듯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사장의 임기를 채우는 것이 첫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장이 바뀌게 되면 정치적 독립의 첫 조건이 무너진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결코 내 발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대충 그런 내용을 박승규 위원장에게 했다. 그러자 그는 나더러 "KBS를 사랑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했다. KBS를 사랑한다면, KBS의 앞날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 출신인 김인규씨가 KBS 사장으로 오는 것을 막는 조건으로 사장직을 자진사퇴하고, 이런 것을 가지고 청와대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KBS 독립성의 첫 기본조건인 사장의 임기를 지키는 일이 그런 식으로 정치적 흥정거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곧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되는데, 나 곧 날라갈 걸세."

박승규 위원장은 그렇게 급박하게 진행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후임 사장에 누가 올 것으로 보느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김인규씨가 가장 유력하다고 했다. 그 즈음 내가 KBS에서 쫓겨나면 누가 후임이 될 것인가가 큰 관심거리였다. 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나를 쫓아내기 위해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통위 등 국가 권력기관을 총동원하고 또한 KBS 이사회의 친MB화를 위해 신태섭 교수까지 축출하는 등 온갖 무리를 다해온 정권이다. 더군다나 방송법에는 KBS 사장 임명에 대한 절차가 구체적으로 나올 뿐, 그 직위를 면제하는 '면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런데도 나를 쫓아내기 위해 이처럼 온갖 무리를 다 하는데, 그 이유는 KBS를 장악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 우선 나를 제거하고, 그 다음 가장 신뢰하는 인물을 당연히 심을 것이고, MB 입장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김인규씨라고 나는 본다. 그러니 그가 KBS 사장이 될 것이다".

이런 나의 설명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설마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을 KBS 사장으로 데려다 쓰는 그런 무리를 하겠느냐, 라고 되물었다. 박승규 노조위원장에게는 위에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쫓아내기 위해 이렇게 무리를 하는 엠비 정권이 '특보 출신 사장'을 심는 정도의 무리는 별 것 아니라 생각할 거라고 말했다.

 8일 오전 여의도 KBS본관에 공권력이 투입된 가운데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이 통과된 가운데, 민주광장에서 기자, PD, 일반직원 등 KBS직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누리꾼들이 모여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2008년 8월 8일 오전 여의도 KBS본관에 공권력이 투입된 가운데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이 통과된 가운데, 민주광장에서 기자, PD, 일반직원 등 KBS직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누리꾼들이 모여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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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조' 배 터지게 생겼네"

박승규 노조위원장의 답이 걸작이었다. "우리 노조가 배터지게 생기게 되었네"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정연주 사장 쫓아내는 일에 몰두해 왔는데, 그런 뒤에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오면 노조 입장이 참 난처해지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설명했다. 싸울 의지와 결의가 있다면, 그리고 확고한 신념과 원칙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 문제이지, 노조 입장이 난처해지고 않고는 별 문제도 아닐 터였다. 

싸울 의지도, 결의도, 신념도 없다 보면,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도 없고, '특보 출신 사장' 들어온 데 대해 욕은 욕대로 얻어 먹게 되었으니, 난처하게 되었다는 뜻인 모양인데, 그 표현을 그는 '배터지게 생겼다'는 말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 결의와 신념, 원칙이 있는 인물들이었다면 그때 '배 터지게 생겼다'고 생각한 김인규 체제에서 지금처럼 핵심 역할을 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박승규 노조위원장(KBS 11대 노조) 뿐 아니다. 지금 KBS의 김인규 체제를 떠 받쳐주는 핵심 기둥들은 10대 노조 집행부(위원장 진종철)의 핵심들과 11대, 12대 노조 집행부 핵심들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런 인물들이 12대 KBS 노조(위원장은 11대 노조의 부위원장인 강동구. 일부에서는 새로 생긴 KBS '새 노조'와 구분하여 KBS '헌 노조'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를 지배하고, 김인규 체제의 현상을 유지시켜주는 주요 역할을 하다 보니, 젊은 기자, 피디들의 저항과 분노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새 노조'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정연주 사장은 KBS를 사랑하지 않는군요"라는 박승규 위원장의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나는 바로 다음날 밤 늦게 내 집을 찾아 온 박선규 당시 청와대 언론 제2비서관(나중 대변인)으로부터 직접 다시 듣게 되었고, 한 달 뒤 백운기 기자(현 김인규 사장 비서실장)의 글을 통해 다시 접하게 되었다. 사용하는 용어와 내용까지 어떻게 그렇게 같았는지, 참 신기하기까지 했다.

알려드립니다
정연주의 증언 37편에 실린 '2008년 7월 18일 저녁 박승규 노조위원장과 술자리에 시민사회단체 인사인 양○○이 참석했다'고 기록한 부분에 대해  양○○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그렇게 기록한 부분에 대해 독자여러분과 해당 당사자에게 사과드립니다. 당시 정연주 사장이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이 전화했을 때 "시민사회단체 두 분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그 술자리에 갔을 때 누군가가 양○○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인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혀와 기사 일부를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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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