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환경연합 염형철 사무처장님.

 

지난 겨울이었던가요. 제 사무실 근처에서 점심을 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정법을 위반해가며 무모하게 진행하는 4대강 죽이기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나누었지요. 그때 환경단체 회원으로서 저는 너무 쉽게 활동가들을 나무라듯이 말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 포클레인 아래 눕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염 처장님은 환경운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다는 심정을 토로하셨지요.

 

"포클레인 아래 눕기라도 하세요"

 

며칠 전에는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동기를 만났습니다. 두 딸을 키우는 성실한 아이 엄마이고 직장인이지요. 역시 점심을 먹다가 4대강에 대해 환경단체 회원인 저에게 묻습니다.

 

"나랑 남편은 4대강 사업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고 장기적으로 나라를 위해 꼭 해야 할 사업이라니까…. 당장은 공사로 인해 지저분하고 그렇게 보여도 다 마치고 나면 좋아지지 않을까?"

 

저는 친구에게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통계는 적절한 통계가 아니며 4대강 사업이 가뭄과 홍수 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로서는 4대강을 파헤치고 준설을 하고 긴 수로를 만드는 것이 '상식적으로' 당연히 자연 생태계에도 경관으로도 수질로도 경제성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믿기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렇다보니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하는 과학적인 논거들은 건성으로 듣거나 잊고 말았지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밤에 염 처장님께 페이스북을 통해 메모를 남겼습니다. 우리나라가 왜 물 부족 국가가 아닌지 좀 더 설명해달라고. 염 처장님은 답신이 없으시더군요. 그날 밤이 지나 새벽 3시경에 당신은 동료 활동가들과 남한강 이포보를 오르고 계셨으니까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고 뉴스를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다섯 명의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남한강 이포보에 그리고 낙동강 함안보에 올라갔다는 소식이었죠. 모두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얼마 전에 낙동강에서 만나서 4대강 막아내자고 결의를 외치던 분들이었지요.

 

박평수 위원장님은 고양시에서 서식지 파괴로 죽어가는 백로들을 살려내느라 바쁘시더니 언제 고공에 오르셨습니까. 고3, 고1의 아이들은 어쩌려고 그곳에 올라가셨나요. 고3에게 수능시험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때잖아요. 염 처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3인 딸아이가 총명하여 혼자서도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스러워 하셨지요. 하지만 아빠가 보 위에 올라가 있으면 딸아이는 어떻게 마음 편히 고입시험 공부를 하겠나요.

 

내가 친구와 4대강 토론 할 때, 당신은 이포보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26일에는 여주 이포보로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마침 현장에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조승수 국회의원도 오시고, 멀리 고양에서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온 시민들도 계셨습니다. 보를 같이 바라보며 걱정되고 안타까운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기에 우리는 누구라도 서로 손을 잡고 반가워했습니다.

 

보 위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봐야 세 분이 보였습니다. 망원경을 통해서 염 처장님과 장 국장님, 박 위원장님의 모습이 보이자 저랑 아이랑 격렬하게 두 팔을 흔들었어요.

 

얼마 후에 세 분도 손을 흔드시더니,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만드시더군요. 저는 그렇게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이 싫었어요. 당신들을 기어이 보 위로 올라가게 한 대통령도 어디선가 머리 위로 양팔을 올리고 하트를 만들었던 사진을 본 기억이 나거든요. 하지만 한참을 하트를 그리고 서 있는 세 분을 보자 저도 엉거주춤 하트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달리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으니까요.

 

한여름의 햇살이 강가의 천막에도 거침없이 들이치는데, 콘크리트로 만든 보 위는 얼마나 뜨거울까요. 급히 올라가시느라 해를 가릴 변변한 텐트조차 갖고 가지 못하셨다면서요. 마침 마용운 국장님이 전화를 연결해주셔서 세 분과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결연하고 담담하고 정겨운 목소리, "잘 있다"는 말씀에 다시 눈물이 납니다.

 

당신을 저 극한의 절벽에서 외치게 하는 것

 

저는 오늘 휴가로 고향 제주에 가고 있습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가는 페리 안에서 염 처장님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동료들을 두고 보 위로 오르던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합니다. 강가에 피는 단양 쑥부쟁이 꽃과 작은 물떼새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 강물에 성큼 발을 담그고 강에서 놀고 싶어하는 당신의 동심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을 저 극한의 절벽에서 외치게 하는 것은 비단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에 대한 사랑만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이제 중3인 당신 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딸에게 유유히 흐르는 예쁜 강을 남겨주고 싶어서겠지요. 그냥 두었으면 거저 줄 수 있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이 현실을 개탄합니다. 너무나 쉽게 당신에게 포클레인 아래 누우라고 말하던 제 자신도 밉습니다.

 

제주에서 며칠 지내고 돌아오면 염 처장님을 강가에서 환한 웃음으로 얼싸안고 만나고 싶습니다. 대통령께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도 여름휴가를 갈 터인데, 휴가를 가기 전에 뜨거운 해 아래서 양팔로 하트를 그리고 있는 저 남자들을 봐달라고요. 저 남자들이 무슨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고공에 올랐겠습니까. 시민들께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고공에 올라 외롭게 싸우는 남자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부디 그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함성을 질러 주세요. 강을 그대로 흐르게 하라고….

덧붙이는 글 | 경기도 여주 이포보 위에 올라가 7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중이염 증상이 심해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도 탈진한 상태라고 합니다. 특히 염 사무처장은 올 11월에 중이염 수술을 하기로 예정된 상태에서 농성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태그:#4대강, #고공농성, #환경연합, #염형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