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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아동성범죄 소식. 아동성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당사자와 그의 가족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어도, 늘상 긴장해야 하고 마음 졸여야 하는 비슷한 또래의 아동들과 가족 역시 간접적인 피해자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부류의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있다. 바로 남성들이다. 역설적이지만  남성들도 아동성범죄가 낳은 또 한명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을 상대로 하거나 아이들과 접촉하는 직업을 가진 남성들의 경우 '아동성범죄'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전주에서 초등학생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고 있는 허웅(37)씨도 마찬가지다. 허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약 7년 전. 처음 시작했던 그 당시에도 남선생에 대한 편견과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과 같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저 '외간남자'를 집에 들이기 불편하고 껄끄럽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조두순 사건 이후로, 학부모들이 제시하는 학습지 입회 첫째 조건이 남선생님이 아니어야 한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때는 직접 방문해 설명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여선생님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

 

특히나 요즘같이 끊임없이 아동성범죄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허씨와 같은 학습지 남성교사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그나마 올해 초에 사무실 관리직을 맡으면서 예전에 비해 허씨의 가정방문횟수가 줄어든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약 가정방문만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더라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게 허씨의 설명이다.

 

물론 면전에 대고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학부모들은 없다. 그러나 몇몇 특정 학부모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다. 미심쩍은 눈초리와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허씨를 더 위축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그동안 잘 지내던 회원 집에서도 '의혹'의 눈길

 

"아무래도 가정을 방문하는 직업이다보니 어머님들께서 여선생님을 더 선호하시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예요. 요즘에는 더 많이 주저하시죠. 남선생님이라고 하면 여선생님으로 바꿔달라고 하세요. 특히 아버님들이 싫어하세요. 지금까지 관계를 잘 맺어왔던 가정에서조차 아버님들이 새삼 반대를 하시더라구요. 우리집만 왜 하필 남선생님이냐면서요… "

 

아빠 외에 잘 모르는 아저씨와는 말을 나눠서도 안되고, 따라서도 안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다. 때로는 아이들의 시선을 감당하기가 어렵고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누가 뭐라하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위축된다고 허씨는 설명했다.

 

가장 난처한 순간은 여자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그럴 때는 대부분 허씨가 먼저 알아서 자진신고(?)를 한다고 한다. 자신은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누구네 집에 무슨 일로 가는 중인지 먼저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몇몇 아이들은 아예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보이는 여학생들도 있단다. 이동이 많은 직업 탓에 곳곳마다 아이들과 마주치거나 남의 집 들어가는 일도 많은데 모든 게 예전에 비해 무척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든 간에 아이들과 거리를 두게 되기 시작한 것. 

 

"예전에는 친한 학생들과는 자연스런 신체 접촉을 하기도 했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구요. 하지만 여학생은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아주 허물없는 남학생들과는 간혹 신체접촉도 하지만 보통 남학생들도 어지간하면 자제하려고 합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죠."

 

허씨는 두 딸아이의 아빠다. 아이들은 현재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허씨에게도 아동성범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자연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 하굣길이나 평소 안전관리에 대해서 물었다.

 

"별거 있나요. 그냥 조심하라고 말할 수밖에요. 저도 아이들에게는 낯선 아저씨들 보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하죠. 밖에서는 제가 그런 의혹의 대상이 되더라도 말이죠"라며 허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허씨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ID카드 뒷면에 있는 딸아이들의 사진이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이 예뻐서 붙여두었던 사진.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요긴하게 잘 사용된다고 한다.

 

두 딸의 아빠...그러나 밖에서는 나도 '낯선 아저씨'

 

"간혹 남선생님이라고 불안해하시는 어머님들도 이 사진을 보면 안심하시더라구요.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공감대가 통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같은 방문교사라 하더라도 미혼인 남선생님은 참 어렵죠. 이직률이 높은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두 딸아이의 아빠이자, 학습지 교사이기도 한 허씨는 이래저래 신경쓰이고 피곤하다. 두딸아이에게는 낯선 아저씨를 경계하라고 누누이 가르치지만 밖으로 나오면 자신이 그런 '낯선 아저씨'가 된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답답하다.

 

본래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허씨가 학생들과 거리를 두어야하는 사실도 안타깝다. 허씨는 이렇게 변한 사회분위기가 억울하다기보다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아동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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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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