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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기스락에 자리한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따로 없습니다. 굳이 이곳까지 들어올 사람이 없을 뿐더러, 택배 기사들은 우리 집까지 물건을 가져다주기를 꺼립니다. 고작 몇 분 돌아가는 일이지만, 시골 택배 기사는 숱한 시골 구석구석을 도시보다 훨씬 많이 돌아야 하기 때문에 썩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산골 기스락에 자리하고 있는 탓에 금세 매지구름이 몰려들어 소나비가 퍼붓다가는, 금세 비가 그치며 하늘이 맑게 개고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곤 합니다. 빨래를 앞마당에 널어 놓았다가 한눈을 팔거나 깜빡 졸고 있다가는 애써 빨아 놓은 빨래가 거의 마를 무렵 흠뻑 젖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비가 퍼부으면 모진 비바람이 몰아치며 우리들 작은 집을 날려 버릴 듯하지만, 비가 멎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싱그럽고 깨끗하며 따사롭습니다.

 

 

비가 퍼붓는 동안에는 창문을 모두 닫습니다. 이쪽저쪽 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빗물은 이리로도 들어오고 저리로도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모두 닫았으니 파리는 더 들어올 수 없고, 파리채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며 한 마리 두 마리씩 잡아서 텃밭 가장자리로 던져 놓습니다.

 

비가 그치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텃밭에 고인 물을 들여다보다가는 풀포기를 얼마쯤 뽑아냅니다. 아빠나 엄마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느새 신을 발에 꿰고 한손에는 호미를 든 채 사뿐사뿐 웃음얼굴로 걸어나옵니다. 아이는 제가 본 대로 따라하며 커 나가니까요.

 

도시에서는 아빠가 늘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언제나 저도 자판을 두들기겠다 하고 사진기를 갖고 놀았는데, 시골집으로 온 뒤로는 자판 두들기며 노는 일이나 사진기 들고 노는 일은 그리 재미가 없는 듯합니다. 아니, 더 많은 일거리와 놀이거리가 있기 때문에 뒤로 젖혀 놓았겠지요.

 

아이는 아빠나 엄마를 따라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놀다가는, 아빠와 엄마가 집에 들어와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심심하면 혼자 호미를 들고 나와 텃밭에서 흙을 파고 놉니다. 날이 좋아 엄마가 제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와 제기차기를 할라치면 아이는 엄마한테서 제기를 얻어 저도 차 보겠다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아이는 제기를 쥘 줄은 알아도 하늘로 띄웠다가 발로 톡톡 올려찰 줄은 모릅니다. 제기 끄트머리를 붙잡고 발에 갖다 대다가는 바닥에 떨굴 뿐입니다.

 

 

그래도 아이는 제기차기 놀이가 재미있는지, 엄마랑 노니까 신나는지, 마당에서 햇볕을 듬뿍 쬐며 뛸 수 있어 기쁜지, 마음껏 소리소리 질러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아 홀가분한지,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소리를 꽥꽥 지릅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 골목집에서는 아이가 방방 뛸 때마다 걱정을 해야 하고 아이를 타이르거나 구슬러야 합니다. 2층집에서는 아래층 집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꼴이니, 늘 미안하면서 걱정스럽습니다. 2층집이 아니어도 벽이 맞닿은 이웃집을 시끄럽게 하는 셈이니, 노상 아이를 타이르며 "좀 조용히 놀자" 하고 말해야 합니다.

 

뛰고 싶은 아이가 뛸 수 없는 곳에서는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갈 수 없어요. 요즈음 새로 짓는 높다랗고 값비싼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뛰며 소리치고 놀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요즈음 도시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뛰며 소리치고 놀 겨를이 없이 학원에 다니고 벌써부터 대학입시지옥에 목매달고 있을는지 모르지요.

 

비가 올 때 받아 놓고 호미를 씻는다든지, 밭일을 마친 두 사람이 발과 신을 닦는다든지 할 때 쓰려고 큰 물통을 내놓았습니다. 이 물통에 고인 빗물을 본 아이는 비가 그친 다음 손을 담그고 놉니다. 아빠 고무신을 제 발에 꿰고 어기적어기적 마당을 거닐며 놉니다. 혼자서 이 몸짓 저 몸짓을 합니다.

 

둘레에 빽빽이 서 있는 나무들하고 나무들과 풀밭 사이를 오가며 노니는 나비가 우리 아이한테 살가운 동무입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아빠는 빨래가 잘 안 말라 근심인데, 이렇게 근심스러운 날씨에도 엄마랑 아이는 우산을 받고(우산은 받으나 마나이기 일쑤이지만) 빗속을 뛰며 놉니다. 아이는 선물받은 긴신을 처음으로 신어 보지만 아직 즐겁게 신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긴신을 썩 안 좋아한다는데, 우리 아이도 그러한지 모릅니다. 그예 맨발로 다닐 때가 훨씬 좋겠지요. 맨발로 땅을 느끼고 빗물을 느끼며 철벅철벅할 때만큼 신나고 재미있을 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빗물에 옴팡 젖은 아이를 받아안아 물기를 닦고 젖은 옷을 새로 빨아 너는 몫은 온통 아빠한테 있습니다. 날마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빨래를 해도 빨래감은 그치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태그:#시골살이, #산마을 삶, #시골집, #마당집, #빗속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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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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