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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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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입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서의 기자네요."

23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만화가 윤태호(42)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윤씨는 최근 개봉된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를 그린 사람이다.

"영화를 보자마자 만화를 다 읽었다"고 하자 그는 "만화를 먼저 봤다면 '영화에 실망했다'고 악플을 다는 누리꾼들 중 한 명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고 다행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끼>는 아버지 류목형(허준호 분)의 죽음을 계기로 천용덕(정재영 분)이 다스리는 시골 마을로 들어오게 된 류해국(박해일 분)의 이야기다. 류해국이 마을에 눌러 살면서 마을사람들과 긴장이 고조되고 아버지를 둘러싼 비밀이 밝혀진다는 이야기는 외견상 스릴러의 구조를 띠지만, 윤씨는 자신의 작품이 그 이상으로 읽히길 기대하는 눈치다.

- 자기 작품이 사회에 대한 풍자·우화로 읽히길 바라는가?
"기본적으로 창작은 우화이고 풍자다."

- <이끼> 만화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재미있는 스릴러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이끼>에 나오는 마을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구나'라고 느끼길 바라나?
"그렇다."

28일 현재 개봉 15일만에 250만 관객이 영화 <이끼>를 봤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돌며 만화에 이어 영화도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졌지만, 만화를 먼저 본 사람들의 실망감도 대단하다.

- 영화와는 달리 만화에는 '음습함'과 '분노'의 정서가 많이 담겨 있다.
"동남아로 여행가면 공항에 내리자마자 공기가 확 덤비는 느낌 있지 않나? 그런 걸 그리고 싶었다."

"<이끼>에 나오는 마을이 대한민국 축소판으로 느껴졌으면"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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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제목이 <이끼>인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이끼라는 제목이 먼저 들어왔다. 이끼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이끼라는 말을 어느 상황에 쓰는가에 주목했다. '너 이끼 같다. 왜 이리 칙칙하게 사냐'라는 식으로... 그런데 나중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끼가 매우 이로운 식물이더라. 제목을 바꿀까 생각해봤는데 이끼가 주는 싸늘한 어감을 대체할 제목이 마땅치 않아서 밀고 나갔다."

- 만화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려면 강우석보다 봉준호가 메가폰을 잡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더라.
"안 그래도 강우석 감독이 영화를 맡기로 했을 때, 저도 만화계 친구들에게 문자로 의견을 물었다. '최고야',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동안 만화계에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크게 히트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일부 누리꾼들이 얘기하는 봉준호 감독의 경우 제가 촬영 스케줄을 알고 있어서 그분이 연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우석 감독이 하겠다니 나로서는 감지덕지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흥행감독이니 관객이 바라는 영화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로서는 강우석 감독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 천용덕 역과 관련해 정재영이 아니라 더 나이 든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천용덕 역에는 청년과 노년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런데, 노년 배우가 젊은이를 연기하는 것보다 젊은 배우가 노인을 연기하는 게 더 쉽다. 또 하나, 배우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립관계에 있는 또 다른 주연배우와 에너지 싸움이 가능하냐를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외모는 만화속의 인물과 비슷하더라도 에너지를 억지로 뽑아내는 연기라면 관객들도 불편할 테니까."

- 젊은 천용덕은 정재영, 나이 든 천용덕은 변희봉씨 같은 분이 맡는 방안도 있지 않았을까?
"그럴 경우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배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환기했을 것이다."

- 만화와 달리 영화에서는 덕천(유해진 분)이 할머니 귀신에 쫓기는 장면, 류목형(허준호 분)이 베트남전쟁에서 겪은 일들이 빠졌다. 이런 장면들을 빼더라도 영화가 원작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을까?
"영화는 풍성한 화면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시간에 얘기를 풀어가야 하는 제약이 있다. 쳐낼 얘기는 쳐내야 한다. 류목형의 베트남전 얘기를 포함시키면 류해국도 마을에 오기 전에 있었던 얘기를 세세히 풀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끼>를 이끌어가는 것은 역시 캐릭터의 힘이었다. 작가는 이런 캐틱터들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정치적인데, 만화라고 정치 안 들어갈 수 있나?"

 <이끼>의 캐릭터들 
류목형(허준호 분) : 베트남전에 참전한 죄책담을 안고 삼덕기도원으로 온 뒤 신도들을 교화하는 일을 한다. 삼덕기도원이 신도들의 집단자살로 문을 닫은 뒤 천용덕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마을을 만든다.
천용덕(정재영 분) : 류목형과 함께 마을을 만든 전직 형사. 섬뜩한 카리스마와 폭넓은 인맥으로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공권력까지 주무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류해국(박해일 분): : 자신의 신념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다가 직장을 잃고 이혼까지 당한 상태에서 아버지 류목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버지가 살던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사람들의 푸대접에 불쾌감을 느끼고 아버지와 마을의 이력을 캐기 시작한다.
영지(유선 분) : 마을 수퍼의 주인이자 마을의 유일한 여성.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목격하면서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유해국을 돕는 수수께끼의 인물.
김덕천 (유해진 분) : 천용덕 이장을 도와 이장의 농사와 마을 대소사를 처리하는 노총각.
박민욱 (유준상 분) : 유해국의 사소한 송사를 다루다가 그의 심경을 건드려 한직으로 좌천된 검사. 유해국을 좋아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결국 그의 집요함에 감화돼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
- 류해국은 실존 인물인가?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무서운 분이 있다. 편의상 A라고 지칭하겠다. A가 모 웹사이트 게시판에 자기 사연을 올려놓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검사와 파출소장이라는 기득권층과 지독하게 싸웠고, 이 과정을 게시판에 다 올려놓았다. A는 이 싸움을 하기 위해 이혼당하고 직장도 잃었다. 그 얘기는 작품에 하나도 안 썼다. 나도 그분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더라. 다만, 그런 일을 겪은 A가 도피처라고 할 수 있는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곳에서도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며 원래의 근성이 다시 발현되는 줄거리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두 장면이 떠올랐다. 영지(유선 분)가 창고에서 4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인 장면과 류해국이 잠자려고 하는데 누군가 밖에서 지켜보는 장면. 두 장면을 떠올리며 만화의 콘셉트를 스릴러로 잡았다."

- 류해국 캐릭터가 독특하긴 하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면 자식의 도리로서 사연을 규명하려고 끈질기게 들러붙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류해국을 움직인 건 효도나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자기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 거다. '남에게 피해 준 적 없는 내가 왜 이 마을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는 불쾌감을 떨치고 싶은 거다. 류해국은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라도 그런 사건을 접하면 파고들었을 인물이다."

- <이끼>에 묘사된 마을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논산-천안 간 고속도로의 소음 방지벽 너머에 가둬진 작은 마을이 있다. 시속 110km로 달리다가 도로 밑의 교각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인데, 그 마을에 반드시 가야 할 용무가 없는 사람은 접근하기 힘든 구조더라. 내가 저런 마을에 들어가면 정말 무섭겠다, 저런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외부인들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류목형 같은 인물이 흔할가?
"어느 사회에든 초인의 경지를 탐하는 사람, 순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말에 맞춰 살면서 주변사람들에게 계속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진보성향 인사들 중에 순혈주의 지향하는 분들도 예가 될 수 있겠다."

- 적잖은 사람들이 <이끼>를 정치적인 코드로 읽어냈다. 일부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류목형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고도 한다. 그런 생각에 동의하나?
"<이끼>가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한 류목형과 형이하학적 가치의 천용덕의 대결을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류목형 같은 근본주의자·순혈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순혈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보수건 진보건 반대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려고 했지만 양쪽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지 못한 합리주의자였다.

물론, 나는 <이끼>의 캐릭터를 그렇게 대입해본 적은 없지만, 작품을 정치적으로 읽지 말자는 의견에도 반대한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정치적인데, 만화라고 정치가 안 들어갈 수 있나? 정치에 대한 혐오도 정치적 태도다."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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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유시민 전 장관 같은 사람은 어떤가? 호불호가 뚜렷한 인물인데.
"나는 지지하는 쪽이다. 2002년 개혁당 만들었을 때도 오프라인 당원모임에 열심히 나갔고, 이듬해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전날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만화가들이 축하만화를 그릴 때도 갔었다. 이런 얘기하면 세무조사 들어올까? 그럼 큰일인데... 내 점을 봐주는 분이 '내달 5일까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는데 기사가 그 이후에 나갈 수는 없는지?"

- 유시민 이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싹수가 보이는 정치인이 있나?
"지금은 없다. 유시민만 해도 너무 오랜 싸움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정적들도 (공격의) 세팅을 완벽하게 끝냈고, 세속적인 표현으로 '견적'이 나와버린 상태다. 아군에도 안티가 많이 양산됐으니 그분이 차기 대선후보가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도가니에 빠져버릴 것 같다."

- 이명박 정부가 소통을 잘하려면 뭘 해야 할까?
"방법은 없는 것 같고... 남은 임기가 빨리 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웃음) 사람 나이가 60을 넘으면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남은 기간 동안에 더 이상 큰일만 안 터졌으면 한다. 어떤 사람에게 도덕성과 염치 같은 게 있어야 뭔가 바라거나 기대할 게 있을 텐데 그런 게 부재한 대통령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정은 논쟁의 여지는 있더라도 사람 자체는 부끄러움을 아는 분이었다. 그건 대통령으로서 평가 받을 덕목이다."

기자가 "만화가가 아니라 국회의원과 인터뷰하는 느낌"이라고 하자 윤씨가 또 피식 웃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대해 물어봤다.

"진보정당 지지, 자칫 '패션'이 되지 않을까 걱정"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영화 <이끼>의 원작만화 <이끼>의 윤태호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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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보니 "정치인들이 마초 근성이 강하다"는 얘기를 했다.
"최소한 초식동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옛 유산을 이어받은 정치인들이 있는데, 이분들이 보여주는 호의와 배려의 기저에는 마초 기질이 깔려 있지 않나?"

-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성희롱 발언을 한 것도 마초 근성이 드러난 것일까?
"그건 마초가 아니라 무개념이다. 마초들은 자기 확신이 있다. '그게 뭐 어때서?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당당하게 맞서기라도 할 텐데, 강 의원에게는 그런 것도 없더라."

- 스스로 '불안하고 삐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마이너리티 기질에 비관적이기까지 했는데, 아이들이 생긴 후 많이 바뀌었다. 내가 포기하는 싸움이 있을지 몰라도 지는 싸움은 허용해선 안 되겠더라."

- 젊은 세대에 대해 부정적인가?
"인터넷 댓글들만 보고, 촛불집회에서 만난 젊은이들만 보고, 젊은이들은 진보의 편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자를 골탕 먹이는 투표 몇 번 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진보정당 지지하는 게 자칫 '패션'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 창작자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시대다.
"우리 선배들은 사회적 발언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는 시대를 겪었다. 우파단체에서 나를 '좌파 만화가'로 분류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존재감을 갖지 말자'고 자기 암시를 많이 준다."

- <이끼>의 성공 이후 '더 센 작품'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독자 수만 보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만한 수의 독자들을 확보했으니 다음에도 이만큼'이 아니라, 독자들이 나의 어떤 포인트를 지지했는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 독자들이 <이끼>의 정치적인 코드만 보고 지지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끼는 회당 40만~50만 조회수가 나왔는데, 댓글은 최대 1000여 개다. 적극적인 댓글들이 발언하지 않는 나머지까지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게 물었다...영화와 원작이 왜 달라졌나

만화가 연재될 때나 영화가 개봉된 후에나 <이끼>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만화나 영화를 보려는 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스포일러 문답은 따로 담았다. 그러나 <이끼>를 이미 본 사람들에게는 원작자의 설명이 작품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겠다.

영화 <이끼>
 영화 <이끼>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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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목형은 감옥에서 나온 뒤 기도원 사람들을 심판하려고 했고, 나중에는 천용덕을 칼로 죽이려고 했던 류목형을 과연 이상주의자로 묘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류목형이 이상향을 꿈꾼 것이 절대선을 꿈꾼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 류목형은 근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다보니 폭력성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류목형도 오류가 있는 인간이었다."

- 트위터 질문이다. 영화와 달리 만화에서는 영지가 마을 창고에 대해 언급하자 천용덕이 자살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나?
"천용덕은 이상에 대한 의견 차이를 놓고 류목형과 대립한 인물이다. 그 거대한 싸움에서 진 류목형이 아들을 불러내어 대리전을 시킨 것이다. 아버지는 너무 형이상학적이라서 차마 끄집어내지 못했던 이장의 약점을 아들이 끄집어내서 그를 파멸시켰다.

천용덕은 그 순간 '생전의 류목형은 나에게 졌지만, 류목형은 죽은 후 결국 나를 이겼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만화를 그릴 때는 비리의 증거가 나와서 천용덕이 죽는다는 설정은 가볍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강 감독은 그것이 영화적 어법으로는 맞지 않다고 봤다. 나는 만화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으니 영화화 작업에서는 연출자의 비전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 원래 마음속에 담아놓은 결말은 지금의 만화·영화와 달리 비극적이었다고 들었다.
"류해국이 '내가 또 졌구나'라는 패배감에 젖어서 마을을 떠나는 설정이었다. 내가 마이너리티의 정서가 많은 사람인데, 류해국 같은 캐릭터는 우리 사회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세상은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밝게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화의 결말을 향해 한창 나아가고 있는데, 각본을 쓰는 정지우 감독이 '류해국이야말로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지닌 인물인데 왜 이 사람을 패배자로 만드느냐?'라고 애석해하더라. 그 말에 감동했고, 내 생각이 바뀌었다."

- 류해국과 앙숙이던 박민욱 검사(유준상 분)가 유해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류해국이 이기되, 유해국의 방법으로 이기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박 검사한테 손을 뻗고, 검사도 '당신은 잘못이 없다'고 하고... 이런 식으로 류해국을 조금 더 긍정적인 사람, 남과 손 맞잡을 수 있는 융화적인 인간으로 그리게 됐다. 박민욱도 류해국을 만나면서 유들유들한 타협적인 인간에서 유해국처럼 선이 분명해진 인간으로 캐릭터가 바뀌었다.

박민욱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라는 게 너무도 기만적이고 취약한 구조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류해국이 '우리가 아는' 보통 검사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 자체가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도움을 받은 것이라서 말이 안 된다. 류해국과 박민욱만 놓고 보면, 영화 <이끼>는 버디무비라고 할 수 있는데 류해국이 세상을 긍정하게 되면서 박 검사의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현실에는 그런 검사가 없다. 어떤 때는 '권력의 시녀'로 보이다가 또 어떤 때는 무모할 정도로 정의로운 모습이 나오고... 나에게 검사들은 종잡을 수 없는 집단이다. (웃음)"


태그:#이끼, #윤태호, #유시민, #강우석, #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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