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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국무총리실이 벌집을 들쑤신 듯 요란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시에서 불법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하였는데 그 범위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까지 번지고 있으며 여기에 청와대도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나라당 4선 의원인 남경필 의원 부인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친이계 소장파인 정두언, 정태근 의원에 대해서도 사찰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에선 여권 핵심부와 부딪쳤던 한나라당 소장파와 친박계 의원들,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광범위한 사찰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이 사건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이명박 정권 내부에서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것을 이명박 대통령 레임덕의 시발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민간인이 아닌 공직자에 대한 사찰은 괜찮다는 것인가? 불법사찰은 법원의 영장없이 집행되는 사찰을 말할텐데 그렇다면 법원의 영장만 들고 있으면 어떠한 형태의 사찰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한국사회가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의 발끝에도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위 질문이 다소간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MB정권 이래 매우 광범위한 사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실까지 사찰에 동원되었다는 것이니 민간인 사찰을 전문으로 하는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에서야 두 말할 나위없지 않겠는가?

내 컴퓨터 안을 샅샅이 들여다본 국정원의 패킷 감청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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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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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8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받을 때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국가정보원이 인터넷 회선을 고정적으로 들여다보는 패킷 감청(인터넷 회선을 통해 전기신호 형태로 흐르는 패킷을 제3자가 중간에 가로채 같은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쉽게 말해 국가정보원이 필자의 컴퓨터 인터넷 회선에 터미널을 연결해두고 내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2009년 범민련 남측본부 수사 과정에서 이경원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에 대해 법원이 패킷 감청 영장을 무려 14차례나 연장해 줘 이 사무처장이 총 28개월간 패킷 감청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나 이경원 사무처장이나 모두 집행유예로 석방된 사람들이다. 특히 이경원 사무처장의 경우는 사법부가 보석을 허가하였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명박 정권의 눈엣가시로 찍혀서 고생 좀 한 것이지 그야말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운동 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인사들은 MB 정권 아래에서 그야말로 21세기판 요시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의 요시찰인들은 집 대문 앞에서 경찰이 감시하였지만 21세기의 요시찰인들은 인터넷 회선 앞에서 정보기관이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혐의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원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규탄하니까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캐캐묵은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들이대면서.

자, 문제는 요시찰을 당할 때의 당사자 심리상태다. 국정원이 인터넷 회선을 죄다 검열하고 있는데 휴대폰 통화내역은 검열하지 않을까? 통신내역을 검열하고 있다는데 집안에 도청장치는 없을까? 특히나 진보단체 사무실의 경우 사무실 통로나 골목에 원거리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그 사무실을 지나다니는 인사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뒷조사를 시도하지 않겠는가? 머릿속 의문은 끝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마치 집안에 바퀴벌레를 한 마리 잡았을 때, 그것으로 집안의 모든 바퀴벌레를 다 잡았다고 볼 수 없듯이, 사실 도청, 감청이나 미행과 같은 은밀한 염탐은 그 자체가 상대가 모르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이번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고 해서 그 사건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바퀴벌레가 한마리 출현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열 마리의 바퀴벌레가 있다고 짐작하면 되듯이, 하나의 정탐사건이 터지게 되면 적어도 그와 유사한, 도청행위가 매우 광범위하게 펴져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한 마리 바퀴벌레를 잡으면 다른 바퀴벌레들은 재빨리 어둠속으로 도망치듯이,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도감청 행위는 재빨리 은폐되고 깊숙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국정원이 불법사찰했다는 정황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9일 새벽부터 서울 영등포구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가운데, 목걸이에 'MBC'로고가 새겨진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으면서 시민단체 회원들을 통제하고, 압수수색 나온 국정원 직원을 경호하던 남자가 시민단체 회원들이 "MBC직원 목걸이를 왜 걸고있나? 기자 맞나?"며 신분확인 요청을 받자 황급히 도망쳤다. 사진 왼쪽은 'MBC' 직원들이 사용하는 로고 새겨진 목걸이를 착용한 이의 신분증이며 사진 이외에 소속을 알 수 있는 표시는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당시 현장에서 취재중인 MBC 보도국 기자의 신분증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9일 새벽부터 서울 영등포구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가운데, 목걸이에 'MBC'로고가 새겨진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으면서 시민단체 회원들을 통제하고, 압수수색 나온 국정원 직원을 경호하던 남자가 시민단체 회원들이 "MBC직원 목걸이를 왜 걸고있나? 기자 맞나?"며 신분확인 요청을 받자 황급히 도망쳤다. 사진 왼쪽은 'MBC' 직원들이 사용하는 로고 새겨진 목걸이를 착용한 이의 신분증이며 사진 이외에 소속을 알 수 있는 표시는 되어 있지 않다. 오른쪽은 당시 현장에서 취재중인 MBC 보도국 기자의 신분증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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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국가정보원은 그렇게 방대하고 광범위한 도·감청장비들과 인력들을 고용하고 있으면서, 법원에서 지정하는 그나마 합법이라는 외피를 쓴 도·감청만을 벌이고 있을까? 만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만 해서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가정보원이 정치인 내사를 하지 않을 리 없고 나아가 민간인 불법사찰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그 근거가 있다.

- 2007년 8월, 박근혜 진영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후보측이 국정원 간부를 이용해 정치공작을 펼쳤다고 폭로하였다.
-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봄 국정원 직원인 이아무개씨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뒤를 조사하다가 발각됐고,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국정원에 이씨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 2010년 3월 18일, <신동아>는 국정원이 두 차례에 걸쳐 박근혜 뒷조사를 벌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국정원 전직 간부의 말을 실었다.
- 2010년 6월 국가정보원이 한국진보연대라는 단체를 압수수색할 당시 한 국가정보원 직원이 MBC 기자를 사칭한 신분증을 들고 다니다가 적발된 예가 있다.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뒷조사하고 정두언 의원을 뒷조사할 때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하였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명백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그야말로 광범위한 미행과 사찰, 도청과 감청이 판을 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때맞춰 경찰청 보안과는 2009년 7월, '보안 사이버 검색 수집 시스템' 강화 사업을 신규 발주하면서 특정 사이트 게시물과 인터넷-댓글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검열하는 체계를 확립하였다. 2009년 8월에는 온라인상에서 각종 보안수사 역량을 강화한다며 사이버 보안 전문인력을 일선 경찰서에 배치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빌린다면 이쯤되면 막 가자는 것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시대는 사생활이 없는 시대

적어도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촛불을 켜고 '아침이슬'을 부른 사람이라면, MB정권의 사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이명박 욕이라도 한 사람들이라면 잠재적인 사찰의 대상자일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라고 하는 정두언 의원에 정태근 의원까지 뒷조사를 당하는 통에 일개 국민들의 처지야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대는 사생활이 없는 시대다. 이 시대에는 단둘이 있으면 경찰을 포함해 셋이 앉아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나와 국정원, 단둘이 있다고 생각해야 뒤탈이 없는 시대다. 


태그:#국정원, #민간인 사찰,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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