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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안 주면 막걸리 한 잔 못 먹고 살지요."

"불쌍한 노인들이 제일 만만한가 보네요. 다른 데는 돈 펑펑 잘도 쓰면서..."

 

서울 노원구 중계동 근린공원에서 만난 노부부는 아예 체념하는 표정이다.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를 70%에서 40%로 줄이려 한다는 소식은 들었다고 한다. 노인정에서 어느 노인이 신문에서 보았다며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그거 없으면 막걸리 한잔 못 마셔요"

 

지난 13일자 <한겨레> 1면에 보도된 기초노령연금 축소 움직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지만 당사자인 노인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소득과 재산이 적은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며 2009년에는 509만 명 중에서 356만 명이 혜택을 받을 예정이다.

 

현재 80세와 79세인 노부부는 근린공원 나무그늘 밑에 앉아 멀거니 오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보였다.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으니 눈도 잘 안 보이고 걷기도 불편하다고 한다. 노부부는 근근이 살아가기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 달에 10만 조금 넘게 받고 있어요. 그걸로 용돈 쓰고 막걸리도 한 잔씩 사먹고 있는데 그거마저 안 주면 용돈은 아예 없는 거예요. 정말 막걸리 한 잔 못 사먹어요."

 

할머니는 말이 없고 할아버지는 약간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정부에서 안 주면 별 수 없지 뭘 어쩌겠느냐고 한다.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자식들도 저희들 살기 힘들어 생활비 조금씩 보태주는 것도 힘겨워 하는 걸 보면 딱하다는 것이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도 올해 79세라고 했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등에 배낭까지 짊어지고 어딜 가시느냐고 물으니 시장에 마늘 껍질 까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 나절 동안 마늘 껍질을 벗기면 5천 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홀로 사는 할머니는 노령연금으로 8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수급대상자 70% 중에서 30%가 줄면 거의 반이 줄어드는 셈인데 자신도 혹시 해당될지 모른다며 불안한 표정을 지을 뿐 별 말이 없었다.

 

우리 때는 노후대책도 없었는데...

 

근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세 분의 노인을 만났다. 그들 중 한 노인은 집도 한 채 있고 국민연금을 받고 있어서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다른 노인 두 분은 노령연금을 받고 있었다.

 

"에라이~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래. 그 잘난 노령연금을 줄이겠다니 말이 됩니까? 4대강인지 뭔지 국민들이 하지 말라는 짓에는 수십조 원씩 퍼붓는다면서 늙은이들에게 겨우 몇 만원씩 주는 노령연금을 줄이려고 해! 쯧쯧!!"

 

노인 중 한 분이 벌컥 화부터 낸다. 노인은 올해 67세로 이제 2년째 몇 만원씩 노령연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저축은 거의 하지 못하고 일손을 놓은 후론 국민연금으로 받는 매월 40여만 원과 노령연금 받는 것을 합쳐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게 노인의 설명이었다.

 

"국민들이 살기 힘들어 하면 다른 예산은 조금 줄이더라도 노령연금 같은 건 오히려 더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우리네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세대는 노후대책 같은 건 꿈도 못 꾸었습니다. 부동산 투기 잘한 특별한 사람들 빼고 나면 돈 모은 사람들 별로 없어요.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일만 한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진 노인은 화를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벼룩의 간을 빼드세요
 

"노령연금 수급대상자를 늘려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줄이겠다니 말이 되는 겁니까? 결국 부자들 세금 줄여주어서 부족한 돈을 노인들 노령연금 줄여서 보충하겠다는 셈이잖아요."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노인이 거들고 나선 말이었다. 노인들의 화난 표정을 뒤로하고 종로3가 종묘공원으로 들어섰다. 종묘공원은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발굴 작업 중이어서 길가 쪽 제법 넓은 공간에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노인들은 종묘 입구 쪽 너른 마당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며 무더위를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 한쪽에 십여 명의 노인들이 둘러서서 무슨 환담이라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가가 들어보니 바로 노령연금 이야기였다. 그런데 노인들의 이야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결론은 만만한 노인들에게 쥐꼬리만큼씩 보태주던 노령연금 줄여서 부족한 재정 채우겠다는 거네요."

"재정 채우기는 무슨, 밀어붙이기 4대강 사업인지 뭔지에 늙은이들 노령연금 줄여서 보태겠다는 심보지."

"벼룩의 간을 빼먹으라지, 에이 더러워서~~ 늙으면 그저 빨리 죽어야지. 퉤퉤~~"

 

이야기를 끝낸 노인 몇 사람이 돌아서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흩어지고 있었다. 초복날의 뜨거운 찜통더위는 해가 설핏 기울었지만 식을 줄을 모르고. 쓸쓸하게 돌아서는 노인들을 더욱 지치게 하는 풍경이었다.


태그:#기초노령연금, #종묘공원, #막걸리, #이승철, #수급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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