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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싶습니다."

대형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면서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연장제한을 요구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서비스연맹 조합원들
 대형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면서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연장제한을 요구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서비스연맹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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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아침 롯데백화점 안양점 앞, 한 여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바쁘게 출근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진행하고 있는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유통업체 영업시간 규제! 주1회 정기휴점제 시행!' 캠페인의 51차 시민선전전이었던 것. 주로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이들은 백화점이 영업시간을 늘리고, 정기휴점제를 없애 서비스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있다고 외쳤다.

오후 7시 30분이던 폐점시간, 10시까지 늘어나

백화점 영업시간이 엿가락처럼 돼가고 있다. 본래 폐점시간인 오후 7시 30분에 문 닫는 백화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어느 순간 폐점시간을 오후 8시로 바꾸는 백화점이 생기더니 다른 백화점들도 따라서 오후 8시에 문을 닫게 됐다. 그뿐 아니다. 주말과 세일 기간엔 다시 오후 8시 30분까지로 영업시간이 연장된다.

이경옥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이제는 오후 9시, 9시 30분까지 영업하는 백화점이 있는가 하면, 신세계 죽전점은 베드타운이라고 1시간 늦게 시작하는 대신 밤 10시까지 영업한다. 직원들은 손님들이 다 간 후에 정리하다 보니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에 자비 들여 택시 타고 가야 한다"면서 백화점들이 영업시간을 마음대로 늘였다 줄이는 데 대해 비판했다.

주1회 있었던 백화점 휴점일도 유명무실해졌다. IMF를 거치면서 백화점들이 하나 둘 휴점일을 줄이더니 이달 현대, 롯데, 신세계 백화점의 거의 전 점이 한 번만 쉰다. '고객'을 위한다는 백화점들의 조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고객'들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2008년 9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1층과 영등포역 대합실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70대 노인을 비롯해 22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당시 29세이던 김아무개씨는 하반신 마비가 되기도 했다.

2004년 7월엔 롯데백화점 울산점에서 정전사고로 수천 명의 쇼핑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었는가 하면, 백화점 내 영화관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안에 갇힌 관람객들을 긴급 구조하는 일도 있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2008년에 일어난 승강기 사고의 70%가 백화점과 할인매장에서 일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쉬지 않고 일하면 사람이 병이 들듯 건물도 안전 점검 소홀로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안전점검 소홀로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501명이 사망하고 부상 937명, 실종 6명 등 총 1444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시민 호응도 뜨거워... 2만 5천여명 서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노동자들이 16일, 롯데백화점 안양점 앞에서 '백화점,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연장제한, 주1회 정기휴점 실시'를 위한 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노동자들이 16일, 롯데백화점 안양점 앞에서 '백화점,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연장제한, 주1회 정기휴점 실시'를 위한 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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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무처장은 캠페인의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캠페인 시작하면서는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했는데 시민들도 취지에 많이 동의해 주신다. 벌써 2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당사자인 백화점 직원들의 반응 또한 짐작 가능하다. 이 사무처장은 "뜨겁다. 한 백화점 앞에서는 1000명 가까운 직원들이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그만큼 사측의 견제도 심하다"고 말했다.

지난주 롯데백화점 일산점 앞에서의 캠페인은 백화점 앞에 집회신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측의 견제로 백화점에서 떨어진 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단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정식 백화점 직원은 10% 정도 밖에 안 된다. 90%에 이르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동요할까봐 백화점 측이 경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캠페인도 롯데백화점 안양점 관계자들이 여러 명 나와서 지켜봤고, 선전물을 받아들고 가는 직원들에게서 선전물을 걷어가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여러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 사무처장은 "지난주에 한 분이 사측 때문에 눈은 앞을 보고 가면서 말로는 우리한테 '정말 서명하고 싶어요'라고 하더라"면서 백화점 노동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의자를 놓아 준 시민의 힘 이번에도 보여주길

한 조합원이 "퇴근시간 11시, 오늘도 딸아이 잠든 얼굴만 보았습니다" 피켓을 든 채, 백화점,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연장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한 조합원이 "퇴근시간 11시, 오늘도 딸아이 잠든 얼굴만 보았습니다" 피켓을 든 채, 백화점,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연장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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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도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이런 바람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민주당 이용섭 의원 등이 대형유통업체의 영업시간·영업품목 제한, 신규출점 허가제 도입, 의무휴업일 지정 등을 담은 관련 법을 발의한 상태다.

이 정책국장은 "8월 중에 중소상인조직, 시민단체까지 포함한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관련 조례 제정 캠페인을 벌여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 71개 백화점과 449곳 할인점에 시민들이 만들어준 의자가 놓였다. 지난 1년여 간의 '서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캠페인에 시민들이 함께 해준 결실이다.

다시 서비스노동자들이 외친다.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가 함께 웃는 세상'을 위해 '영업시간 연장제한, 주1회 정기휴점' 캠페인에 함께 해 달라고. "퇴근시간 오후 11시, 오늘도 딸아이 잠든 얼굴만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축 처진 어깨에 시민들의 격려의 손이 얼마나 얹힐지 앞으로 캠페인의 결실이 궁금하다.


태그:#대형유통업체, #연장시간 제한 캠페인,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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