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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醴泉)은 지명대로 물이 좋은 고장이다. 내성천이 예천을 굽이 흘러 의성포라는 걸작을 빚었다. 내성천과 합류하는 산골짜기 냇물도 좋아 초간정원림이라는 영남 유일의 원림을 탄생시켰다.

초간정원림 정경 호남에 주로 남아있는 원림이 영남에 있어 이색적이다
▲ 초간정원림 정경 호남에 주로 남아있는 원림이 영남에 있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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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원림은 예천권씨종택의 별채로 별서정원이다. 종택에서 10리 안 되는 곳에 있다. 지금은 차로 10분 안에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집 뒷동산을 넘어 쉬엄쉬엄 1시간 정도 걸어가야 닿는 곳이었다. 처음 지어질 때는 작은 초가집으로 초간정사라 했고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몇 차례 고쳐지었는데 지금 초간정은 1870년에 지은 것이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정경 사진 가운데가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별당채), 왼쪽 맞배지붕 건물이 서고인 백승각 건물이다
▲ 예천권씨 초간종택 정경 사진 가운데가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별당채), 왼쪽 맞배지붕 건물이 서고인 백승각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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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원림은 17세기에 가장 원림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그 당시에는 석조헌, 화수헌, 백승각 등의 건물과 함께 있었다. 이 건물들은 지금 초간정 옆에 권씨 후손들이 거주하는 집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건물들이 헌(軒), 각(閣)인걸 보면 주로 거주를 위한 것이나 책이나 자료를 보관하는 서고(書庫)이었을 거라 추정된다. 실제로 백승각(百乘閣)이라는 건물이 종택 안에 서고로 남아 있다.

계류를 따라 외담을 쌓고 건물성격에 따라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낮은 헛담을 쌓아 휴식과 학습 그리고 생활공간으로 구분하고 금곡천을 건너기 위한 돌다리나 판석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담과 숲, 계류와 건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정원, 원림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초간정원림 정경 원림 내부의 모습은 많이 다를지 몰라도 겉에서 찍은 이 사진모습은 17세기 석조헌, 화수헌, 백승각 등의 건물이 있었을 때의 정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담과 숲, 계류와 건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정원, 원림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초간정원림 정경 원림 내부의 모습은 많이 다를지 몰라도 겉에서 찍은 이 사진모습은 17세기 석조헌, 화수헌, 백승각 등의 건물이 있었을 때의 정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담과 숲, 계류와 건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정원, 원림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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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초간정 원림은 썰렁한 지금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17세기에 이 정도의 건물을 구비한 원림이었다면 다른 문인과 활발한 교류로 인해 집마당과 정자마루가 윤기가 흐르지 않았을까? 인적 교류의 중심으로 봉화에 청암정이 있었다면 예천에는 초간정원림이 있었다.

봉화 청암정 정경 초간정은 문인과의 교류의 폭과 깊이 면에서 청암정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예천에서는 초간정원림이 교류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봉화에 청암정이 있다면 예천에는 초간정원림이 있다
▲ 봉화 청암정 정경 초간정은 문인과의 교류의 폭과 깊이 면에서 청암정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예천에서는 초간정원림이 교류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봉화에 청암정이 있다면 예천에는 초간정원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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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의 풍광만큼은 소쇄원을 능가하고 17세기에 국한하여서는 원림으로 소쇄원에 미치지 말란 법도 없다. 지금은 17세기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이 곳을 정자만 하나 달랑 있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하나의 별서정원, 원림으로 부르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담양 소쇄원 정경 계류의 풍광으로 따지면 초간정원림이 소쇄원을 능가한다.
▲ 담양 소쇄원 정경 계류의 풍광으로 따지면 초간정원림이 소쇄원을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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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림은 우리의 정원 중에 특정한 정원이다. 원림은 집안으로 공간을 한정하지 않고 집터에 딸린 숲, 계류까지 공간을 확대시킨다. 정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 즉 담으로 한정된 공간만을 정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담을 너머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생각이 원림에 잘 드러나 있다.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만들어지는 우리의 정원을 집안이라는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우리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거의 모든 정원이 담으로 자연과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담은 일정한 영역을 표시할 뿐 안과 밖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담을 너머 끊임없이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다.

소쇄원 외담장 담이 동산을 타고 오른다. 이 담이 소쇄원의 안과 밖, 자연을 구분하지만 이 담으로 인해서 안과 밖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이 담에 담긴 생각 하나가 소쇄원을 최고의 정원으로 남아있게 한다.
▲ 소쇄원 외담장 담이 동산을 타고 오른다. 이 담이 소쇄원의 안과 밖, 자연을 구분하지만 이 담으로 인해서 안과 밖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이 담에 담긴 생각 하나가 소쇄원을 최고의 정원으로 남아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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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우리의 정원 전체를 원림으로 바꾸어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서석지는 대표적인 우리의 민간정원이나 원림이라 말하지 않는다. 창덕궁 후원은 궁원이면서 개념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원림이다. 소쇄원과 담양 명옥헌원림은 대표적인 별서정원이면서 개념적으로 완벽한 원림이다.

담양 명옥헌원림 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를 이용하여 명옥헌 뒤에 작은 연못, 앞에 큰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배롱나무를 심어 조경하였다. 자연과 인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원림의 표본이 되었다
▲ 담양 명옥헌원림 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를 이용하여 명옥헌 뒤에 작은 연못, 앞에 큰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배롱나무를 심어 조경하였다. 자연과 인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원림의 표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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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원림으로는 보길도 부용동원림, 순천 초연정원림, 담양 명옥헌원림, 소쇄원, 담양 독수정원림, 장흥 부춘정원림, 장흥 용호정원림, 화순 임대정원림, 장성 요월정원림 그리고 예천 초간정원림 등이다. 모두 호남지역에 남아있고 초간정원림만 영남에 남아있다.

이는 영호남간의 문화와 지리(地理)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림이라는 것이 동산과 숲, 계류를 조경으로 삼고 있어 아무래도 쾌활하고 활기차며 약간 들뜨게 하는 맛이 있는 영남보다 지세가 완만하고 평평하며 아늑하게 감싸는 포근한 맛이 있는 호남이 원림을 조성하기에 더 유리하였다고 봐야한다.

호남은 정자를 짓더라도 거기에 주저앉아 자연을 가꾸고 살집으로 만든 반면 영남은 장쾌한 자연 속에  안주하고 거주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휴식과 학습할 목적으로 정자를 지었다.

또 다른 이유, 문화와 정치에 따라 영호남의 정자문화와 원림문화가 달라진다. 기묘사화후 사림파는 중앙정치무대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데 영남사림은 서원과 서당을 중심으로 학맥을 유지하였고 호남사림은 누정과 원림을 중심으로 지방문화를 이어 갔다.

자연적으로 영남의 정자는 생활공간이기보다는 휴식공간 성격이 더 컸다. 반면 호남은 정자와 원림중심으로 은둔과 은거생활을 하여 정자와 원림은 생활공간이고 학습공간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남의 누정은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에 세워졌고, 호남의 누정 혹은 원림은 생활현장에 세워졌다.

경북 예천 초간정원림은 호남에만 남아있을 법한 원림이 영남에 남아 있어 이색적이다. 사실 초간정은 원래 학문에 정진하기 위한 초간정사였음으로 학습공간 성격이 강하여 경승지에 세워진 다른 영남의 정자들과 성격이 좀 다르다.

그러나 정원개념으로서 원림이라면 모를까 호남의 원림문화까지 초간정원림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초간정에는 초간정 주위를 100번 돌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전설과 관련된 일화가 전한다. 한 선비가 99번을 돈 뒤 현기증으로 난간 밖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자 그 장모가 도끼를 들고 와 기둥을 찍었다고 한다. 이 일화로 미루어 헤아려 볼 때 초간정원림은 서원과 서당과 같은 성격을 갖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남의 누정과 원림문화와 성격을 좀 달리하고 오히려 영남사림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볼수있다.

초간정원림 정경 자연석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올린 배치가 절묘하다
▲ 초간정원림 정경 자연석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올린 배치가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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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정은 'S'자로 굽이쳐 흐르는 금곡천 바위 위에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서있다. 자연석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올렸다. 초간(草澗)이라는 이름처럼 계곡근처에는 물풀이 우거져 자라고 있다.

계곡바위 위에 외담을 쌓아 원림과 그 밖의 세계, 자연을 구분한다. 담으로 안과 밖을 구분하지만 초간정 앞은 문과 벽을 통째로 없애 안과 밖을 완전히 통하게 만들었다. 자연과 더 적극적으로 어울리려 이런 누각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로써 초간정사 바로 밑을 흐르는 계류와 솔밭은 앞마당이 된다.

초간정에서 내려다본 정경 문과 벽을 통째로 없애 초간정 바로 밑을 흐르는 계류와 솔밭은 앞마당역할을 한다.
▲ 초간정에서 내려다본 정경 문과 벽을 통째로 없애 초간정 바로 밑을 흐르는 계류와 솔밭은 앞마당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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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자마루에 오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꽉 닫힌 콘크리트 안에 갇혀 살아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찾는 이가 적어 윤기 잃은 정자마루에는 송화가루가 노랗게 쌓여 있다. 이에 개의치 않고 정자마루 난간에 기대 계곡과 솔밭을 보면 오감이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초간정과 계류 번잡하게 변해버린 소쇄원이나 명옥헌원림에서 느껴 보지 못한 또 다른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이 원림의 주인이 된다
▲ 초간정과 계류 번잡하게 변해버린 소쇄원이나 명옥헌원림에서 느껴 보지 못한 또 다른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이 원림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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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하여 두 다리 뻗기 어려운 소쇄원이나 명옥헌 원림에서 느껴 보지 못한 또 다른 희열이 있다. 원림과 거리 먼 영남 땅에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이 정자, 이 원림의 주인이 되는 묘한 감정에서 오는 희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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