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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부엌 안은 항상 어두침침했던 것 같다. 소나무 가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기 전 불쏘시개인 지푸라기에다 유엔표 팔각성냥통 속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댕겼다. 지푸라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보다 조금 굵은 나무를 넣고 그 다음에는 어느 정도 마른 소나무 가지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부뚜막 아궁이에는 타다만 나뭇가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40년 전 기억 속 아궁이에 걸려 있던 솥이 무쇠솥이었다면 7월 방문한 전라남도 여수시의 한 외딴섬 낡디낡은 가옥 부뚜막에는 양은솥이라는 차이 뿐. 

 

가을 수확 철 마당 한편에 높다랗게 쌓여 있던 볏짚은 여름이 오기까지 소여물이나 새끼줄 꼬는 데 사용했기에 갈대를 말려 불쏘시개로 사용했던 것 같다. 특히나 여름철이면 고구마 줄기를 잘 말려서 불쏘시개로 사용했던 기억도 있다.

 

솥 단지 안에는 보리쌀과 남도땅에서 하지감자(?)라고 불렀던 고구마를 넣고 그날 먹을 밥을 짓곤 했었다. 매캐한 연기가 걷히고, 부뚜막 안쪽에서 소나무의 불땀이 활활 살아날 때쯤에는 부뚜막 위에 걸린 무쇠 가마솥 뚜껑 밖으로도 허연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었다.

 

잘 익힌 고구마와 보리밥은 차례대로 들어내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에 퍼 담았다. 40여 년 전 쯤 초등학생일 무렵, 여름 방학 때 경험했던 전라남도 해남에 위치한 친가쪽 시골집에서 늘 있었던 아침밥 짓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기억 저편 속에 존재하던 머나먼 과거의 이미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억 저편 속 풍경이 40여 년을 뛰어넘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평도에 있는 한 낡디낡은 집에 딸려 있는 부엌을 통해서였다.

 

 

새까맣다 못해 윤기 나는 부엌···바닥 울퉁불퉁 혹 달린 듯

 

여수시 삼삼면에 속해 있는 '평도'는 육지에서 무척이나 머나먼 곳에 있는 섬이다. 여수 여객 터미널에서 거문도행 쾌속선을 타고 1시간 40여 분쯤 달려 손죽도에서 내린 후 다시 한 번 인근 섬만 운행하는 '섬사랑호'를 타고 30여 분 이상을 가야만 닿을 수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70~80년대 여객선이 다닐때만 해도 7~8시간 이상 걸리는 뱃길이었다고 하니 교통의 불편함이야 더 이상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제 거리상으로도 여수항에서 남서쪽으로 83.7㎞, 손죽도에서 남동쪽으로 10㎞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섬의 거주 인구는 현재 13가구에 불과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몇 백 가구가 살고 있었다지만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총 마을인구라고 해 봐야 20여 명 안쪽이다. 면적도 그리 크지 않다. 0.41㎢에 불과하다. 섬의 이름이 평도로 지어진 것은 바로 그 형태가 평평하기 때문이란다.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대가로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마을의 몇 가구는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집 한 채. 그 집은 돌담장으로 둘려 쌓여 있었고 전체 크기는 10여 평 남짓이나 채 될까 싶었다.

 

방은 2개였다. 가운데에 있는 부엌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한 개씩 방이 있었다. 집은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낮아 보였다. 방 문 또한 무척이나 작은게 인상 깊다. 문이 열려 있는 부엌 쪽을 빠끔히 들여다보니 40년 전 내 기억 한 편에 간직되어 있던 시골 부엌의 모습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엌 천정은 새까만 숯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바닥은 마치 혹이라도 붙어 있는 듯 울퉁불퉁하다. 부엌 한편에는 땔감용 나무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부엌 바닥이 평탄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이유는 무엇일까?  '배수구가 없는 바닥이다보니 당초 건물을 지을 때는 진흙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골랐겠지만 세월이 가면서 각종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물기가 흘러내렸겠지. 혹은 그릇에서 떨어져 내린 물이 바닥을 그렇게 혹이 생긴것처럼 울퉁불퉁하게 만들었겠지' 하고 추측해봤다.

 

집은 지은 지 100여 년이 훨씬 넘었을 거란다. 주인 할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때 부터 있던 집을 그때그때 수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따져보니 10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증언이 맞다면 구한말 지어진 가옥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당초 있던 집을 그동안 살면서 조금씩 손 본 것이고 부엌 만큼은 손을 대지 않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은 10여 평 남짓이나 될까? 지붕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다. 아마도 70년대 지붕개량 사업하면서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바꾸지 않았나 싶다.

 

슬레이트 밑으로는 당초 집을 지을 때 그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서까래 위에 진흙을 얹기 전에 대나무를 쪼개 성기게 얽어 놓은 모습이 노출돼 있다. 담장은 강한 비바람, 특히 이곳 평도 앞바다를 통과하는 태풍을 의식한 듯 돌로 튼튼하게 쌓아져 있었다.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돌담에 둘려싸여있는 마당 한편에는 각종 꽃이 한가득이다. 물론 그 옆 텃밭에는 각종 푸성귀가 심어져 있다. 백 년이 넘게 이런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당 한쪽에는 돼지도 키우고 각종 농기구도 보관해 놓았을 법한 허름한 헛간도 보인다.

 

섬을 방문한 외지사람을 맞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순박하고 자상하기만 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 집 모습과 손님을 맞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40년 전 당시 조부께서는 농사일로 한 여름 땡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만 가득했던  그 얼굴에는 광주에서 해남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를 바라보는 기쁨이 녹아있었다.

 

할아버지 얼굴에 떠올랐던 선 굵은 반가운 마음이 이날 마주한 몇몇 주민들의 얼굴에서도 떠올랐다.

 

텃밭의 깻잎이 무척이나 푸르다. 초 여름 텃밭에서 갓 따낸 풋고추에 된장을 듬뿍 찍어 보리밥과 함께 먹던 그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마을 주민 한 분이 집에서 담근 막걸리를 걸러서 내왔다. 냉동실에 넣어놨던 안줏거리도 꺼내 놓는다.

 

이 섬에서 많이 나는 것은 따개비의 일종인 '보말'이다. 보말을 삶아서 그 알만 냉동실에 넣어놨던 것이다. 깻잎에 보말을 얹고 된장을 조금 올려 입에 넣으니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듯하다. 7월,  섬 주민들의 삶은 그렇게 작고도 낡디낡은 집을 의지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평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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