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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는 권일혁(58)씨가 첫 구입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5일 오전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는 권일혁(58)씨가 첫 구입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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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빅이슈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흡연 중 빅이슈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하루 수익의 50%는 저축을 합니다'

'빅이슈' 판매사원의 행동수칙이다.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인 '빅이슈'는 노숙인들이 서울의 주요 전철역 출구 등 길 위에서 직접 판매한다. '노숙인이 잡지를 판다고? 어떤 잡지일까? 잘 팔릴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5일, 공식 창간을 한 '빅이슈 코리아' 판매 현장으로 가봤다.

노숙인이라는 편견을 버려~ 우리는 판매사원!

 5일 오전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권일혁(58)씨가 도우미와 함께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고 있다.
 5일 오전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 권일혁(58)씨가 도우미와 함께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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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파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3천 원입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가보니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준말) 권일혁(58)씨가 잡지를 팔고 있었다. 노숙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깔끔한 옷차림과 빨간색 빅이슈 모자, 조끼, ID카드까지 목에 걸고 의욕적으로 잡지를 팔고 있는 그는 영락없는 신입사원이었다.

과거 골동품을 취급하던 권씨는 IMF 이후 어려움을 맞았다. 사업이 망한 후 우울증과 함께 술에 기대면서 병까지 생긴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결국 노숙인이 됐다. 12년간 노숙인 생활을 한 권씨는 그 세월 동안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 실제로 4차례의 시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그는 "이제 못할 게 뭐 있겠느냐"며 의욕을 보였다.

긴 노숙인 생활동안 많은 자활 프로그램을 겪은 권씨. 그는 "그동안 노숙인 자활은 관(官)이 주도했던 터라 수동적이고 다양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빅이슈 판매는 일한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당장 많은 경제적 이익을 바랄 순 없지만 상황이 더욱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 아니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판매를 시작한 지 한 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나타난 첫 손님, 회사원 허정도씨는 "신문에서 보고 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빅이슈의 사업에 대해 "그간 노숙인 지원이 일회성으로 끝났는데 구조적 ․ 체계적으로 재활할 수 있는 자립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하기 위해 2권을 샀는데 앞으로 관심이 많아졌으며 좋겠다"고 전했다.

마돈나, 베컴, 오바마의 공통점은?

<빅이슈(The Big Issue)>는 1991년 영국 '더바디샵(The Body Shop)'의 공동 창업자 고든 로딕(Gorden Rodick)과 존 버드(John Bird)가 창간한 대중문화잡지이며 홈리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자립의 계기를 주는 스트리트페이퍼(street paper)의 대표 저널이다.

자선단체가 아니라, 잡지 발행을 통해 자체적으로 이윤을 창출, 이를 재투자해 사회적 혜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영국과 일본, 호주 등 9개국에서 영국의 지역판을 포함, 13종이 발행되고 있으며 런던에서만 주간 약 14만부(ABC, 2009)가 팔리는 유력지이기도 하다.

<빅이슈>는 이미 영국에서 성공한 모델로 한국에서 오랜 준비 끝에 창간하게 됐다. 유명인사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잡지는 양질의 콘텐츠를 갖게 되며 마돈나, 베컴, 오바마도 '빅이슈'의 재능 기부 표지모델로 나섰다. 그들로 인해 잡지 판매량이 늘었고, 늘어난 수익은 노숙인들에게 돌아갔다.

광화문역 '빅판' 권일혁씨의 도우미인 강인아 빅이슈코리아 문화사업국 활동가는 "빅이슈 코리아는 영국의 빅이슈를 단순히 본 뜬 것이 아니라 정식 MOU를 체결한 것"이라며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판매하는 정당한 거래"라고 강조했다.

"나는 길 위의 서점, 길 위에 나를 던지겠다"

 5일 오후 강남역 7번 출구 앞에서 이철민(가명, 55)씨가 도우미와 함께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고 있다.
 5일 오후 강남역 7번 출구 앞에서 이철민(가명, 55)씨가 도우미와 함께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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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강남역 7번 출구에서 만난 빅판 이철민(가명, 55)씨는 몇 권을 팔았느냐는 질문에 "한 권을 팔았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부산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다 실패해 작년 초 서울로 온 그는 "서울에 있는 두 딸이 걱정 돼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길거리에 선 그는 "어제 걱정 돼 잠도 안 왔는데 막상 서니까 편하고 재밌다"며 "나를 세상과 길 위에 던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또 스스로를 "길 위의 서점"이라고 부르는 그는 "앞으로 트위터도 만들어 곧 생길 마니아 단골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아직 만들지 못해 아쉽다"며 자신의 메일주소(lik1275@hanmail.com)를 남겼다.

그의 도우미인 이경은(20, 대학생) 자원활동가는 "이렇게 나오기 전에는 노숙인들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편견에 불과한 것 같다"며 "오픈된 공간에서 노숙인들이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까지 해가며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었다.

그러나 창간 첫날 '빅이슈'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빅 이슈가 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잡지를 파는 이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쳐다만 볼 뿐, 빅판들이 왜 그곳에 서 있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반나절동안 한, 두 권이 판매의 전부였기에 실망할 법도 했다.

강남역 빅판 이철민(가명)씨는 "당장 한 두 권 안 팔린다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버텨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들(빅이슈)을 믿어보겠다"며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주목했다.

"구걸이 아니라 판매입니다"
런던의 빈민가 출신인 창간자 존 버드(John Bird)는 5일 오후 사회복지공동모금 강당에서 있었던 창간기념 공개강연에서 "빅이슈는 구걸이 아니라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 판매"라며 "이는 노숙인들에게 다른 이들과의 동등함과 사회 소속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존 버드는 "노숙인들은 길거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도 매 순간 박사학위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하며 "노숙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자체가 온갖 지식과 읽을 것,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한 책과 같다"고 노숙인들의 인격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노숙인들을 상처입은 동물처럼 바라보는 시각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무두 빅이슈 코리아 판매국장은 "빅이슈 코리아는 일하기를 희망하는 노숙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며 당당한 자립을 할 수 있는 손 쉬우면서 새로운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당당히 드러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숨지 않는 당당한 자립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빅이슈의 의미"라고도 설명했다.

'빅이슈 코리아'의 판매 시스템은 최초 10권을 무료로 제공한 후, 모두 팔면 남는 3만 원 이익을 원금으로 계속해서 잡지를 공급받아 판매하는 것이다. 잡지 1권의 정가는 3000원으로 빅판들은 1400원에 잡지를 사 1600원의 이익을 남긴다. 이는 정가의 50%가 넘는 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된 빅판은 주거와 주소를 확보하고 직업을 찾게 된다.


태그:#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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