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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 청령포 전경. 육지 안에 있는 '절해고도'.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 전경. 육지 안에 있는 '절해고도'.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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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아침(6월 25일) 청령포로 향한다. 청령포는 영월 동쪽을 흐르는 동강이 영월 서쪽을 흐르는 서강과 만나는 합수머리(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 쪽으로 약 1km 올라간 지점에 있다. 그러니까 청령포는 서강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이 지역 최초의 명승지라고 할 수 있다.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돼 청령포로 유배되기에 이른다.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때가 1452년, 단종의 나이 12세였다. 그리고 청령포로 유배되었을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서 들어간다. 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단종이 살던 집, '어소'가 있다.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서 들어간다. 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단종이 살던 집, '어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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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서강 푸른 물 위에 뿌린 눈물 자국

청령포는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 면은 바위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청령포가 바라다보이는 강변에 지붕을 덮은 나룻배 두 척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관광객 역시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청령포에 내려서면, 먼저 하얀 조약돌과 푸른 소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는다. 소나무 우거진 숲 속에 단종이 거처했다는 '어소'가 들어앉아 있다. 이 어소는 2000년에 단종문화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소나무 숲은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나무 숲은 2004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숲, 우수상'을 받았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 백성들의 출입을 막는 '금표비'가 있어 보존이 가능했다. 이 숲에 금강송 7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 백성들의 출입을 막는 '금표비'가 있어 보존이 가능했다. 이 숲에 금강송 7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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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금표비. 영조2년(1726년)에 세워졌다.
 청령포 금표비. 영조2년(1726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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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가운데에 600년 수령의 '관음송'이 버티고 서 있다. 관음송은 단종의 유배 시절 비참한 생활을 보고(觀, 볼 관), 들었다(音, 소리 음) 해서 붙은 이름이다. 관음송 뒤로 단종이 서울을 향해 서 있곤 했다는 망향대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관음송이 망향대로 오르는 단종을 묵묵히 지켜보았음직하다.
망향대 아래는 깜깜 절벽이다. 그 아래로 서강의 푸른 물이 잔잔하게 흐른다. 그 물이 남한강이 되어 한양 밑까지 흘러간다. 망향대는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려운 곳에 떨어진 단종의 심정을 읽고도 남음이 있는 곳이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흘렸을 눈물 자국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다시 청령포 강변에 서서 건너편 강변으로 건너갈 배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건너편 강변이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강물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선 섶다리라도 하나 놓고 싶은 심정이다. 청령포까지 채 50m가 되지 않는다. 배를 타고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런 곳에 '왕'을 가두고 '숙부'는 별로 안심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매일 밤 단종이 강을 훌쩍 뛰어 건너서 한양으로 한걸음에 쳐들어오는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단종은 청령포로 유배된 그해 1457년 9월 숙부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면서, 10월에 사약을 받는다.

망향대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서강(평창강). 밑은 아득한 절벽이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살아야 했던 단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망향대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서강(평창강). 밑은 아득한 절벽이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살아야 했던 단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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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죽은 뒤에도 시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등 수모를 겪는다. 그러다 사후 241년이 지난 뒤인 1698년 숙종의 명에 의해 왕으로 복권된다. 그리고 묘 역시 왕릉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단종은 지금 '장릉'(영월읍 영흥4리)에 잠들어 있다. '선돌'과 '한반도지형'을 찾아가는 31번 국도변에 장릉이 있다.

단종이 영월에 머물렀던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종이 영월에 남긴 사건과 이야기는 시간의 폭을 뛰어넘는다. 이제 영월은 단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영월을 여행하다 보면, 단종과 관련이 있는 장소와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 영월 사람들에게 단종은 영원히 살아 있는 왕이다.

선돌,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 있는 70m 바위

선돌. 한 쌍의 바위가 까마득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있다.
 선돌. 한 쌍의 바위가 까마득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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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다는 소나기재.
 구름도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다는 소나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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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을 지나 선돌을 향해 가는 길은 완만한 고갯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엔 조금 힘든 길일 수도 있다. 땀이 좀 심하게 흐른다 싶더니, 선돌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는 길 앞이 고개 정상이다. '소나기재 정상, 해발 320m'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구름도 눈물을 흘리고 지나간다'는 소나기재, 단종도 눈물을 흘리며 이 고개를 넘었을까?
나는 이 고개를 땀을 진탕 흘리며 넘어간다. 소나기재는 영월이 강원도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강원도에서 자전거여행을 할 때는 절대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개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니 늘 체력을 아껴 두어야 한다.

고개 정상 주차장에서 선돌까지는 나무판자로 계단을 놓았다. 그 길 끝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 선돌과 함께 서강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이런 절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강가에 평지돌출형으로 곧추선 바위 하나가 또 다른 바위 절벽 곁에 바투 붙어서 있다.

아마도 지각변동에 의해 선돌이 절벽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내 눈에 그 바위들이 한 쌍의 다정한 연인처럼 보인다. 서로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에 굳어진 모습이다. 분명 이야기 짓기 좋아하는 우리 선조들이 그와 관련해 전설 속 사랑 이야기 하나 만들어냈을 법한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대신 이곳에는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꼭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선돌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간절한 손끝이 연상된다. 이곳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가을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끔찍한 사건으로 이별을 맞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딱 좋은 곳이다. 강 건너편으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북쌍리 쇠목마을이다.

선돌을 떠나 다시 주차장으로 빠져나오니, 이제 머리꼭지 위로 올라선 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한반도지형을 찾아갈 길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고개 아래로 내리막길이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그러나 역시 강원도는 강원도다. 31번 국도에서 88번 지방도로로 갈아탄 길에서 한반도지형을 찾아가는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하긴 한반도지형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아야 하는데 지대가 낮을 리 없다. 한반도지형을 찾아가는 길에 터널이 두 개다. 차량이 많지 않고, 길이가 짧은 편이어서 크게 위협을 느낄 일은 없다. 다만 이 지역이 석회암 지대여서 그런지 석회석을 운반하는 차량이 꽤 많이 지나다니는 게 조금 불안하다. 선돌에서 한반도지형을 찾아가는 길은 도로 변에 서 있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왼쪽 산 중턱이 2/3 가량 잘려나간 배거리산. 시멘트 생산을 위해 지역 명산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왼쪽 산 중턱이 2/3 가량 잘려나간 배거리산. 시멘트 생산을 위해 지역 명산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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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지형, 서강과 선암마을을 지켜낸 명물

이 지역에서는 석회석 광산을 보는 일도 어렵지 않다. 가까운 곳에 산마루가 뭉텅이로 잘려나간 산만 두 개다. 영월책박물관 북쪽으로 보이는 '배거리산'은 산 중턱까지 2/3가 잘려나간 상태에서 한쪽 면이 피라미드 형태로 깎여 있다. 흉물스러운 건 둘째치고, 너무 섬뜩하다. 산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건물 역시 저 산의 일부였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참 끔찍한 현실이다. 자연을 이용한다고 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이뿐만 아니다.

고갯길에서 다시 '도덕산'과 마주친다. 이 산 역시 산마루가 평평한 운동장처럼 변해 있다. 인간의 '위대한 힘'을 느끼기에 이처럼 실감이 나는 현장도 없을 것이다. 영월에 가거든 배거리산과 도덕산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앞에서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반도지형. 이 지형이 발견되면서 주변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수정됐다. 선암마을과 서강을 지켜내고, 지금은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이익까지 가져다 주고 있다.
 한반도지형. 이 지형이 발견되면서 주변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수정됐다. 선암마을과 서강을 지켜내고, 지금은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이익까지 가져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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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한반도지형을 내려다보는 관광객들.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전망대에서 한반도지형을 내려다보는 관광객들.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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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거리산과 도덕산을 보고 나서, 한반도지형을 바라다보는 기분이 남다르다. 인간의 욕망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자연을 지켜내는 일이 지난하기 때문이다. 이 한반도지형 역시 개발주의자들의 공격 앞에 수차례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적이 있다. 제방공사를 비롯해 서강 상류 부근에 쓰레기 매립장을 건설하고, 한반도지형 허리 위로는 삼팔선 긋듯이 관광도로를 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계획들을 한반도지형을 곁에 두고 사는 선암마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막아냈다. 만약 그때 주민들이 지역 개발의 혜택을 의식해 맥없이 앉아 있었다면, 지금의 한반도지형은 결코 온전히 살아남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이 한반도지형을 지켜내고, 한반도지형은 다시 마을을 지켜낸 셈이다.

한반도지형이 발견되기 전까지 서강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지형이 발견된 이후로 서강 역시 동강 못지않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한반도지형은 영월을 상징하는 명소 중에 하나로, 그리고 서강은 우리가 대대로 보존해야 할 강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강을 살린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한반도지형에서 만주벌판에 해당하는 지역에 특이한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현대시멘트 영월 공장이다. 그 공장을 보고 있으려니, 서강 역시 언제까지나 안전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발주의자들이 언제 또 무슨 명분을 들어 서강을 망가뜨리는 계획에 손을 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위) '영월동강저류지(한강살리기 17공구) 조성공사 사업 현장' 땅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굴삭기. 아래 왼쪽) '한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입니다' 홍보 문구. 아래 오른쪽) 영월동강저류지 조성공사 안내 플래카드.
 위) '영월동강저류지(한강살리기 17공구) 조성공사 사업 현장' 땅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굴삭기. 아래 왼쪽) '한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입니다' 홍보 문구. 아래 오른쪽) 영월동강저류지 조성공사 안내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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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과 서강의 합수머리에서 하나가 된 강은 그 지점부터는 다시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꿔 흐른다. 남한강에서 지금 한창 4대강 사업이 진행이 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언젠가는 동강과 서강의 합수머리에서도 강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에 눈멀고 탐욕에 찌든 자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청령포 근처 도로 변에서는 '영월동강저류지(한강살리기 17공구) 조성공사 사업이 본격 추진 중'이다. 굴삭기 여러 대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땅을 후벼 파고 있는 광경이 남한강 강바닥을 마구 긁어내던 굴삭기들을 연상시킨다. 4대강을 지켜내는 것이 서강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강을 지켜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월은 시간을 많이 축내게 되는 명승지와 관광지가 많고, 또 한편으로는 온몸의 근력을 축내는 고갯길이 많아 여행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다. 자전거여행을 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


태그:#청령포, #영월, #한반도지형, #선돌,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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