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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 맺힌 삶이 있다.

'한일 100년 평화시민네트워크'에서는 매우 뜻 깊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국의 시민들이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 현장을 돌아보는 '평화역사기행'이 바로 그 것.

지난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5박 6일 동안 한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20여 명의 시민들이 이 역사기행을 떠났다. 이번 역사기행에는 평화운동을 해 온 단체회원과 일본 시민사회단체와 지속적으로 교류해 왔던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대표단,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했다.

특히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되었던 두 명의 증언자가 함께 참여해 현장에서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었다. 또한 이 증언자들은 일본과 한국의 취재진 앞에서 당시의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증언하기도 했다.

이번 역사기행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국민이기에 반항 한번 못해보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 강제로 낯선 땅에 끌려가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또한 고국은 해방이 되었어도 끝내 유골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못하고, 원수의 땅에서 뒹굴고 있는 우리 선조들의 피 맺힌 원한의 현실을 현장에서 절절하게 체험한 '역사기행'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기행에 동행했으며, 앞으로 수회에 걸쳐 이를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 노동자들의 유골이 있는 곳, '무궁화당'

 역사기행단은 첫날 밤을 고쿠라에 있는 '서남기독교회관'에서 묵었다. 이날 밤, '치쿠호와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역사기행단은 첫날 밤을 고쿠라에 있는 '서남기독교회관'에서 묵었다. 이날 밤, '치쿠호와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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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쿠라교회에 있는 전시공간. 이 곳에는 일본 큐슈 지쿠호지역에 강제징용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고쿠라교회에 있는 전시공간. 이 곳에는 일본 큐슈 지쿠호지역에 강제징용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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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쿠라 교회 전시관에 전시된 강제징용지도.
 고쿠라 교회 전시관에 전시된 강제징용지도.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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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단은 첫째 날 인천공항에서 출발, 일본 기타큐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고쿠라에 있는 한국인 목사가 시무하는 '서남기독교회관(고쿠라 교회)'에서 하루를 지냈다.

이 교회에는 특별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고쿠라교회 목사이면서 인권운동의 대부였던 고 최창화 목사 사진자료실과 함께 지쿠호지역(큐슈 서북부 탄광지역 일대)에 끌려와 강제노동을 했던 조선인 강제 징용노동자들에 대한 사진자료가 전시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치쿠호와 재일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다음 날인 26일, 우리는 지쿠호 지역의 중심지인 이이즈카로 이동해 오후 내내 '규슈지쿠호지역 강제동원노동자 증언 집회'에 참여했다.

이이즈카 시민회관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여 '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와 일본 'NPO법인 국제교류광장무궁화당우호친선의회'가 마련한 세미나로, 이 자리에서는 아소 탄광에서 일했던 공재수(87)씨와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원폭피해를 입었던 김한수(92)씨가 증언자로 나서서 자신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인간이하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다"는 증언자들의 증언을 듣던 200여 명의 참석자들은 집회 내내 상기된 얼굴로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그리고 이 두 증언자 외에도 김민영(군산대) 교수가 '일제하 전쟁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고, 이어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가 '과거사 청산을 통한 한국과 일본의 평화로운 미래'라는 주제의 발제도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 앞 선 기사-"우리는 인간 이하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보기)

 26일 이이즈카 시민회관에서 열린  '규슈지쿠호지역 강제동원노동자 증언 집회'.
 26일 이이즈카 시민회관에서 열린 '규슈지쿠호지역 강제동원노동자 증언 집회'.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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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우리 일행은 무궁화당을 찾아갔다. '무궁화당'은 일본 규슈 지쿠호지역의 중심지인 이이즈카시립 국립공원묘지 내에 있다. 세찬 비바람이 쳤다. 하늘을 찌르듯이 높게 솟아오른 봉우리 아래 무궁화당이 있었다.

무궁화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 연행되어 노동을 하다가 희생을 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납골당이다. 특히 이곳 지쿠호지역은 얼마 전 일본의 총리를 지낸 아소다로 총리의 가문이 운영하는 '아소탄광'이 있는 곳이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곳 아소탄광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갱도에서 사고로 죽고, 아파서 죽고, 배고파서 죽고, 맞아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유골은 죽어서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유골의 주인도 나타나지 않고, 여기 저기 절이나 야산에 흩어져 있었다.

지쿠호지역의 재일교포, 다시 말해 민단과 조총련 소속 교포들, 그리고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함께 1996년 '재일 지쿠호 코리아 강제연행 희생자 납골당 추도비 건립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들은 일본정부와 지방정부를 향해 외쳤다. 죽은 자들의 넋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추모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이들의 끝없는 노력으로 드디어 2000년 12월 12일 지금의 '무궁화당'의 낙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여기에 118위의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을 모셨다. 그들은 단체 이름을 'NPO법인 국제교류광장무궁화당우호친선의 회'라고 고치고 매년 추모의 날을 정해 추모의식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모셔진 유골 중 2기는 가족을 찾아서 익산과 대구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한 기의 유골이라도 더 고국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추모행사를 마치고 무궁화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추모행사를 마치고 무궁화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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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이이즈카 시립공원묘지 내 '무궁화 당' 내부에 모셔져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유골함.
 일본 이이즈카 시립공원묘지 내 '무궁화 당' 내부에 모셔져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유골함.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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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평화기행단원들을 맞이한 무궁화의회 이사장 기류 쥰이치씨는 "무궁화당의 건립목적은 역사의 진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걸립됐다"고 말했다.

우리 기행에 함께한 '평화노래단'이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이국 타향 먼 나라에 강제로 끌려와 깜깜한 갱도에서, 그리고 차가운 흙바닥에서 죽어갔을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향의 봄
"이별이 너무 길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 직녀에게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다. 빗물은 더욱 거세게 내렸고, 우리는 눈으로 마음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노래를 듣던 조선인 강제 노동자였던 김한수 옹(93세, 미쓰비시 조선소 근무, 원폭피해자)이 갑자기 흐느껴 울며 소리를 질렀다.

"노예처럼 끌려와 온갖 모진 고난을 겪었을 이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다.개 처럼 끌어다가 일만 시키고, 이제는 죽어서도 이렇게 억울하게 고향에도 가지 못한 채 이렇게 여기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슬프다. 정말 그들은 인간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무궁화당은 한국의 수치다. 강제 징용된 자기 민족들을 이렇게 방치해 놓을 수 있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뭐하나..."

우리는 정성을 모아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일본인들의 가족 납골당이 보였다. 화려하게 꾸며진 그 묘를 보면서 슬픔이 올라왔다.

 무궁화 당에 있는 유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김한수(92)씨. 그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로서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무궁화 당에 있는 유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김한수(92)씨. 그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로서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일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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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 당에 역사기행단은 헌화와 분향을 하고 묵념을 했다.
 무궁화 당에 역사기행단은 헌화와 분향을 하고 묵념을 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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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탄광 갱도에서 불타죽은 조선인 노동자들 - 덕향추모비

비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30여 분을 이동하니 어느 마을의 한 복판에서 버스가 멈췄다. 집들 사이에 공터가 있고, 그곳에 추모비가 서 있었다. '덕향추모비'다.

아소탄광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일본인 관리자들은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갱구를 막아버렸다. 그리하여 25명의 광부가 질식사했다. 그 중 조선인은 21명이었다. 이 25명의 희생자들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바로 이 '덕향추모비'다.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이곳은 약 400평 정도의 공원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풀이 무성했다. 그 귀퉁이에 추모비와 함께 추모비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추모비 뒷면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탄광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덕향추모비'. 이 때 희생된 25명의 광부 중 21명이 조선인이었다.
 탄광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덕향추모비'. 이 때 희생된 25명의 광부 중 21명이 조선인이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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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에서 화재로 인해 희생된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향추모비'의 희쟁자 명단을 살펴보고 있는 김한수 씨.
 탄광에서 화재로 인해 희생된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향추모비'의 희쟁자 명단을 살펴보고 있는 김한수 씨.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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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호지역 민단과 조총련이 94년 1월 30일 공동으로 이 추모비를 세웠다. 그리고 매년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조총련과 민단이 그 이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 추모비 건립을 계기로 좋아졌다고 한다. 회사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땅을 기증했고, 조총련과 민단이 함께 기금을 마련해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가져온 꽃을 헌화하고 향을 피워 타국에서 죽은 선조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배동록씨가 말했다.

"아소가문은 탄광을 해서 돈을 벌고, 탄광에서 나오는 버력(탄광 등에서 선별되어 나오는 암석 덩어리, 폐석)을 공사장에 팔아서 돈을 벌었다. 아소탄광에서 나온 버력을 쌓은 산이 해발 130미터나 된다. 탄광이 문을 닫으니 이번에는 탄광촌을 평평하게 밀어 부동산 개발을 해서 돈을 벌었다. 또 시멘트공장을 차려 돈을 벌었다. 또 버력산위에 골프장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 이래저래 돈을 번 아소가문은 이 지역에 '아소왕국'을 만들었다."

조총련 이이즈카 지부 사무실을 방문하다

 조총련 지쿠호지부 사무실 전경.
 조총련 지쿠호지부 사무실 전경.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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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조총련 이이즈카지부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우리 일행 몇몇은 조총련 사무실에 들어서는 것에 약간 겁을 먹은 듯했다. 역시 반공교육을 잘 받았나 보다. 무궁화회 부회장이면서 민단 회장도 같이 조총련 사무소에서 우리의 식사를 지원했다.

식사는 조총련 여성회원들이 국수를 별도로 준비했고, 수박과 냉커피까지 풀코스로 대접을 받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얼마 전 이곳에서 공연된 '친구' 공연 DVD를 보았다.

'친구' 공연은 이 지역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과 한국이 모두가 '친구'가 되자라는 주제로 기획한 공연이다. 일본 문화 단체 2개와 한국 문화 단체 2개가 출연해 공연을 장식했다. 재일 한국인들은 조총련과 민단을 뛰어넘어 '친구' 공연 실행위원회를 만들어 일을 추진했다.

DVD에서는 아리랑이 흐르고 사물놀이가 펼쳐졌다. 또 일본 북춤과 전통악기가 연주됐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함께 나와 노래하고 춤을 췄다. 갈등과 차별을 넘어 평화가 가득했다. 적어도 이 지역 지쿠호에서는 조총련과 민단이 이미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손을 잡고 역사를 바로 잡아 일본과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열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 공연의 주제가 '평화', '반전', '반핵', '반차별'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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