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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 책겉그림 〈바람의 노래〉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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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예수가 팔방미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둘도 없는 목수였고, 병자들을 고치는 의사였고, 심리적인 괴로움을 안고 있는 이들의 심리치료사였고, 기득권 종교 세력에 굴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참 자유인이었고, 당대 종교철학자들과 뜨거운 입담을 벌인 토론자였다.

예수에겐 그만큼 노마드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베들레헴에 태어났지만, 나사렛 촌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장성한 뒤엔 갈릴리 바닷가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대인들의 경계 지역인 사마리아까지 훑고 다녔다. 무소의 뿔처럼 어느 한 곳에 매임이 없었던 것이다. 하늘의 진리와 자유를 알리는데 나비처럼 온 생을 불태웠던 것이다.

작가 송준이 쓰고 사진가 정형우가 찍어서 엮은 <바람의 노래>에도 예수와 같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문학과 음악과 춤과 그림과 사진과 판화와 가수 등 여러 다종예술가들이 지닌 방랑과 자유와 사랑의 노래를 만나게 해 준다. 그들 모두는 어느 한 곳에,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는 다방면의 유목민들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불나비들이다. 

"바람은 광야에서 자란다. 마음의 끝을 감춘 광야는 시종 말이 없고, 바람 혼자서 메아리 없는 허밍으로 광야의 마음을 찾아 내달리다가, 끝내 광야를 두고 지평선 멀리로 떠나간다. 다시 광야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또 광야의 마음을 찾아 내달리고, 광야는 여전히 말이 없다. 광야에는 바람이 남긴 노래의 비늘들 흔들리며 반짝인다. 반짝이며 일렁인다. 저 노래들 모여 바람이 된다. 다시 바람이 인다."(들어가는 글)

여기에는 마흔 여섯 늦깎이에 데뷔하여 직접 벽돌을 찍어내듯 소리라는 집을 지어 부르는 노래꾼 장사익을 비롯해, 유인도와 무인도를 통틀어 전국의 4천여 개의 섬 가운데 1천여 섬을 돌았다고 하는 성산포 시인 이생진, 춤으로 신명을 빌어 춤으로 세월을 불태운 승무 이매방, 대학 때부터 노래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다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나 우리에게 화가 겸 가수로 돌아 온 정미조 등 22명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자유혼을 만날 수 있다.

"그녀, 늘 새로웠다. 새로움을 찾았다. 노래도, 삶도, 사유도, 이상은은 강박처럼 새로움을 추구했다.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한편으로는 낯설다. 그녀의 노래 가운데 절반의 절반쯤은 언제나 실험적 요소가 묻어 있다. 노래는 늘 그녀가 살아내는 시공에서 태어났다. 음악의 감수성, 기업, 악기 편성 등 구석구석에서 '그녀의 현재'가 노래를 불렀고, 가사들 또한 당시 그녀가 골몰하는 고뇌의 싯귀가 악보에 올랐다. 그리고 그 '현재'들은 늘 새로운 걸음 위에 있었다."(135쪽)

이는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때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나타난 가수 이상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곧이어 그녀는 MBC 신인가수상과 10대 가수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르는데, 1990년 프리마돈나처럼 모든 것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유가 뭐였을까? 무엇보다도 음반사에서 기획하고 작곡가랑 작사가가 만든 노래를 시키는 대로 부르는 게 싫었던 까닭이란다. 그만큼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자 일본과 미국과 영국으로 방랑길을 올랐고, 지금은 음악세계에서 진정한 나비가 되어 영원히 남을 노래를 만들고 있단다. 

"시가 들어오면 글로 내리고, 그림이 들어오면 캔버스에 옮긴다. 음악이 들어오면 '콩나물'을 다듬거나 노래로 부른다.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펼치는데, 관심사마다 내딛는 자취가 이게 또 만만치가 않다. 임씨의 작업은 자유로우면서 진지하고 또 감각적이다. 그가 쓴 책과 시, 그가 만든 음반, 그가 그린 그림, 휘뚜루마뚜루 일별을 한 느낌은 따뜻함이었다."(232쪽)

여기에 임씨란 임의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정말로 다종예술가다. 목사에다 수필가에다 화가에다 여행가에다 월드뮤직 음반기획자 등 듣는 이로 하여금 혼을 쏙 빼게 할 정도다. 하나를 택해 뼈를 묻겠다는 프로페셔널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도 그의 아호도 떠돌이별의 선무당이지 않던가.

그는 강진 남녁교회에서 목회한 시절에는 징소리로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가 하면 <직녀에게>를 입당송으로 불렀고, 10년 정들었던 그 교회를 사임한 뒤엔 생면부지의 담양에 한옥을 짓고 텃밭을 꾸리며 살고 있다고 한다. 언제 또 떠돌이처럼 무슨 직종을 위해 어떤 세계를 위해 그곳을 훌훌 털고 떠나버릴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예수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작은 예수로서 노마드 기질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예수를 따라 나섰고, 마태는 세리로서, 유다는 열혈독립당원으로서, 그리고 가롯 유다는 돈 궤를 맡은 회계로서 예수를 따라 다녔다. 그들도 예수처럼 머리 둘 곳 없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 것이다.

마찬가지다. 이 책에 등장하는 22명의 예술가들의 삶과 자유혼도 자기만의 진리와 자유를 향한 유목민적인 순례기라 할 수 있다. 그 순례 속에서 서로 다른 자유를 맛보았고, 그 자유 속에서 무한 고독을 체득했고, 그 고독 속에서 진리의 속삭임을 들었고, 그 진리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술혼을 표현해 낸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진리와 자유를 향한 바람의 노래로 한 데 읊조리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의 노래 - 자유, 그 무한고독의 속삭임

송준 지음, 정형우 사진, 동녘(2010)


태그:#다종예술가, #임의진, #송준,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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