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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강습양륙함 에섹스와 해상자위대의 방위함과 보급함이 정박하고 있는 사세보만 전경. 건너편 산쪽에는 탄약고가 있다.
▲ 야타케쵸 언덕으로부터 내려다 본 사세보항 미군 강습양륙함 에섹스와 해상자위대의 방위함과 보급함이 정박하고 있는 사세보만 전경. 건너편 산쪽에는 탄약고가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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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함 '천안함'의 침몰 사건에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의문점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잠수함을 수색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초계함이 왜 잠수함에게 어뢰공격을 받았는가, 또 어뢰가 폭발하기까지 어뢰의 접근을 왜 알지 못했는가 등입니다. 혹시 잠수함을 수색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명과 경비(건조경비와 운용경비)를 낭비했다는 결론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비밀주의와 정보 독점, 조작 의혹 등을 문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납세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가기밀 절대론과 군대의 정보 독점 문제에 대한 비판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를 국가가 전부 통제하고, 군대가 안보논리로 시민 개개인의 평화적 생존권과 언론의 자유, 의심할 자유마저 억압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 정부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정보공개를 요청한 시민단체에 대한 마녀사냥이 행해지고 있다.

"군대에도 비밀은 있어서는 안 된다, 군대문제야말로 민간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본 규슈 나가사키 현 사세보 미군기지의 변화와 동향을 파악하여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 '림피스'의 편집위원 시노자키 마사히토씨를 지난 6월 초에 만났다.

한반도·동아시아 평화·안보와 미군의 관계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수는 약 2만8500명이며, 일본에는 약 4만 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오키나와, 사세보, 요코스카, 도쿄, 아오모리 등에 미군이 주둔 중인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사세보에 유엔군 사령부를 설치했고, 오키나와는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에서 출격기지 역할을, 사세보도 병참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일본 자위대의 경우는 법으로 24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도록 정해놓았으나 실제 자위대원의 수는 약 18만 명이 이른다. 전체 4만 명 가량의 주일 미군 중 2만7천 명이 오키나와에, 약 5천 명이 사세보에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문제를 생각할 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존재, 그리고 한미동맹이나 일미동맹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최근 한반도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하며 전쟁 불사론과 함께 군사적 논리가 더욱 강해졌고, 2012년 4월로 예정되었던 한미간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가 2015년 12월로 연기됐다.

하루 전까지 사세보만에 드나들었던 잠수함 추적용 미군함이 하필이면 "오늘(6월 4일) 아침 어디론가 떠나버려서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며 "한국의 서해 쪽으로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아쉬워 하는 시노자키씨를 따라 사세보 미군 및 자위대 관련 시설 견학에 나섰다. 그리고 림피스 사무실을 방문하여 못다 한 이야기를 추가로 나누었다.

미군기지 지자체 시의원들의 모임 림피스

사세보만을 전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올라 본인이 만든 자료를 펼쳐드는 시노자키 씨.
▲ 시노자키 마사히토 '림피스' 편집위원 사세보만을 전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올라 본인이 만든 자료를 펼쳐드는 시노자키 씨.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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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림피스는 언제, 누구에 의해 설립되었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주세요.
"림피스(Rimpeace)는 1996년 12월에 설립되었습니다. 미군기지를 가지고 있는 지자체의 시의회 의원 네트워크인데요. 미군 기지의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것으로 평화운동에 이바지하고, 시의원들의 의회 활동에도 플러스가 되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세보 외에도 이와쿠니시,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도쿄도 훗사시, 도쿄도 야마토시가 림피스의 네트워크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외 협력지로써 아오모리현 미사와, 오키나와현 우루마시, 나하시 등이 있습니다.

림피스의 모토는, 군대에도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납세자로서 '알 권리'가 있습니다. 알 권리를 지키면서 활동합니다. 저는 일본인이 구 일본정부에서 일으켰던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의 전쟁이나 침략행위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외교와 군사정보를 군대와 관료가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일본은 군대에 관한 정보를 군인과 관료가 독점하여, 혹시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군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추적하는 정치가나 일반 시민이 있으면 곧 '스파이' 혹은 '매국노', '비국민'으로 매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체포, 투옥, 때때로 암살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민간인이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전쟁까지 갔고, 전쟁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림피스는 이러한 역사를 반성하며 '군사적인 문제야말로 민간인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정신을 갖고, '군대에도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납세자의 권리로서 정보를 공개를 요구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 왜 하필, 미군 기지를 주시하고 있습니까?
"일본의 자위대는 미군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자위대가 뭘 하고자 하는지를 알고자 하면 미군의 움직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아직 함께 일할 사람도 부족하고, 일본의 군사전략이나 운용의 전체상을 밝히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우선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군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어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의 자위대도, 사실상 미군의 관리와 지휘하에 놓여 있으며, 미군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것으로 아시아에서의 군사적인 긴장을 유발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보낼 수 있고, 반전과 평화운동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군대 감시 활동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이제 군사력으로 지역의 안전을 지킨다는 식의 사고는 틀린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안전을 보장하고, 상호 신뢰와 상호 이익을 지향하다 보면 힘에 의한 군사력은 불필요해집니다. 전형적인 예가 동남 아시아입니다.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 등은 내전과 각종 분쟁을 겪었지만 정치가 안정되면서 지역 경제가 발전했고 사회도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군사력에 의지하는 시대에는 경제발전과 사회안정도 불가능하고 전쟁만 일어날 뿐입니다. 군사력에 의지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면 오히려 지역의 발전도 가능해집니다."

- 한국에서는 군대의 정보에 일반인이 접근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시노자키 시 등이 일본에서 림피스 활동을 시작했을 때, 공안의 감시와 탄압은 없었습니까?
"96년에 림피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군대 정보를 수집하거나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범죄가 아닌가, 너무 위험하다며 같은 시민운동의 동료들마저 걱정하고 말렸습니다. 군사기지 찬성파들은 군사 비밀을 캐내어 뭘하려는 거냐며 우리를 첩자 취급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림피스가 하는 군대 감시 활동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 평화운동가의 당연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이건 시민의 알 권리와 통합니다. 소위 '말해선 안 되는 비밀'이라는 건, 알고 보면 비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즘은 NHK나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오히려 저를 찾아와 '최근에 사세보항에 뭔가 특별한 변화가 없습니까?'라고 묻기도 하고, 경찰조차 저에게 문의를 합니다. 시민운동 그룹이나 여러 단체에서 강연요청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대학의 강단에 서기도 하고요."

2월 중순부터 한 달간 잠수함 추적 군함 움직임 늘어

사세보 기지는 오일 터미널, 탄약고, 함선 지원, 보급 기지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주요 임무는 함대와 기류 부대를 위해 기지시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탄약, 폭발물, 무기류를 보수, 유지, 보관, 지급 하는 것 등이다.
▲ 미 해군 사세보 기지 U.S.Fleet Activites Sasebo 사세보 기지는 오일 터미널, 탄약고, 함선 지원, 보급 기지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주요 임무는 함대와 기류 부대를 위해 기지시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탄약, 폭발물, 무기류를 보수, 유지, 보관, 지급 하는 것 등이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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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기지가 있으면, 환경문제라든가 미군에 의한 범죄와 사건 사고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지금 사세보에는 5000여 명의 미군과 군 가족 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만, 사건 발생률은 높지 않습니다. 사세보의 미군은 전투 부대가 아니라서 전투병 군사훈련이 없기 때문이죠. 사세보 기지는 연료, 탄약을 저장하고 공급하며 배를 수리하고 보급하는 역할이 주되기 대문에 사세보의 미군이란 신분은 미군이어도, 하는 일은 엔지니어입니다. 환경문제도 간간이 발생하고 있지만 지금은 눈에 띄는 큰 사건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밖에서는 이렇게 미군의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안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죠."

- 최근 주목할 만한 미군의 움직임이나 변화가 있습니까?
"한반도 정세가 역시 신경이 쓰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따른 주일미군의 동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에 걸쳐 약 1개월 동안 미 해군의 잠수함 추적용 군함이 눈에 띄게 집중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와중에 3월 하순에 서해상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 발생 후에도 잠수함을 추적하는 미 해군의 배는 여전히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미 해군이 북한 잠수함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주시해왔지만 잠시 경계가 느슨해진 사이에 사건이 터진 게 아닐까, 혹은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적어도 미군이 북쪽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천안함 사건이 터진 후, 이를 구실로 한·미·일 3국이 군사적· 국제적 압력을 가하며 공동으로 북한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키려고 하는 데 (천안함을)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이렇게 되면 군사적 압력은 점차 강화되기 마련이고, 전쟁 준비라고 생각될 정도의 움직임마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미군의 잠수함 추적 군함이 하필 오늘 아침에 사세보 만에서 사라졌는데 한국의 서해 쪽으로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물론 저의 짐작에 지나지 않지만요."

- 자위대의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평화운동 그룹도 있습니까?
"자위대만 대상으로 하는 그룹은 알지 못합니다. 미군과 자위대를 포괄해 일본에 있는 군대를 총체적으로 감시하는 그룹은 있습니다. 2001년 9·11 이후 해상 자위대가 인도양에 파견되거나 아프간에 파병되려 할 때, 자위대가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어떤 목적으로 해외에 파병되어 가는가를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자위대의 계획에 제동을 걸어온 그룹이 있습니다. 결국은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중지시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자위대 안에서도 문제의식이 높아졌고, 시민들도 군대문제를 더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세보 지역 노조나 평화위원회, 히로시마와 야마구치현의 피스링크, (사세보,쿠레, 요코스카 등 전국단위로 활동하는) 캣치 피이스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기 활동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군대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만드는 것, 일본의 평화헌법을 실현하는 것이 공통의 목적입니다. "

-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 반대의 역사가 길고도 강력합니다만, 일본인에게 미군의 주둔과 일미동맹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미군이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전세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주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군대라도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반대하는 주둔은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이 지지하지 않는데 일미동맹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논리 하에서 군대가 마음대로 주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군사력에 의존할수록 세계는 더욱 군사력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힘과 무력으로 상대방을 설복시키려는 건 결국 전쟁을 하자는 주장과 다름 없습니다. 무력과 군사적 충돌에 의해 상대방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보다 좀더 진지하게 교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군이 세계 각국에 주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미군이 군대로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국가 혹은 지역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자국의 경제적 권익을 지키기 위한 주둔인지 말입니다. 명목상으로 미군은 일본이나 한국 등 주둔 지역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러합니까? 지금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각국에 대한 지배력, 특히 지배력의 핵심이 되는 금융과 교통, 통신 시스템 등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결국 금융 시스템입니다. 자신들이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키고자 각 지역에 주둔해 있는 게 아닐까요."

- 자위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일본도 자위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자위대는 해외로도 나가 있고, 미군을 보완·지지하고 유지시켜주는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자위대가 이라크에 수년 간 주둔했고 복구와 의료 등을 위해서 간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600명 정도 파견되었으나 경무장이었습니다. 기관총이나 강력한 무기는 가질 수 없었죠. 그래서 항상 미국과 영국의 원조를 필요로 했고 안전지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복구 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위대가 이라크에 간 이유는 일미동맹 관계상 일본으로서는 임무를 다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를 어떤 공동체로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

주택지에 너무 인접해 있어 위험성이 문제가 되어 폐쇄계획이 수립 중인 마에하타의 탄약고.
▲ 마에하타 탄약고 주택지에 너무 인접해 있어 위험성이 문제가 되어 폐쇄계획이 수립 중인 마에하타의 탄약고.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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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총선을 통해 55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내면서, 종속적인 미일관계를 평등하게 개선하고, 이제부터는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노력하겠다는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비행장 이설 문제는 지역주민의 의사보다는 미군이 원하는 대로 전부 관철이 되었습니다. 이번 후텐마 미군 비행장 이설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군의 재편입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만의 재편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의 미군의 재편 계획 가운데 오키나와 문제도 놓여 있습니다. 군대 자체를 재편하는 것과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재편이라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미군의 재편이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미군의 거점 즉, 허브스테이션을 어디로 할 것인가 할 때, 그곳을 오키나와로 할까, 괌으로 할까, 하와이로 할까. 그것을 일미간에 합의해 오키나와로 현상 유지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

- 결국은 일본도 일미동맹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예상되었던 결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뭐가 있었습니까.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현외로 미군기지를 이설할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동아시아를 어떤 공동체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종합적인 비전과 계획 안에서 사고해야 하는데, 부분적으로만 입장을 밝혀도 누군가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외교관계라든가, 일본과 아시아 간의 관계 변화 가능성은 없습니까.
"수년 전에 나가사키 평화연구소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시아통화기금(AMF)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군은 금융체제를 지키려고 한다고 방금 전에도 이야기했는데요. 그게 IMF(국제통화기금)입니다. AMF는 국제가 아니라 아시아인데요. 물론 미국은 아시아만의 별도의 통화 체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본이 혼자 출발해서 통화 스와프를 시작했고, 지금은 한중일 3국이 통화스와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토야마도 동아시아 공동체 발언을 했을 때 그걸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아시아 통화기금이란 1997년에 타이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 한국도 외환 위기로 IMF에 감독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아시아권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아시아의 각국이 서로 타격을 받으니 공동으로 대처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유럽연합은 오랜 세월 상호간 문화적 교류가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경우는 민주국가도 있고 독재국가도 있고, 정치체제가 각기 다릅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란 것을 EU를 모델로 해서는 불가능하지만, 정치적 차이는 남겨두고 금융을 중심으로 상호 공통점을 중심으로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그 지역내에서는 전쟁이 불가능해집니다. 예를 들면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B가 안 갚아도 "너 안 갚으면 죽인다"고 A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실제로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B가 죽으면 A는 돈을 돌려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A는 B에게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 일을 해서 갚으라고 말하게 되죠.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점은 놓아둔 채, 일단 경제 공동체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상대를 부정하면 전쟁이 됩니다. 이런 구상을 서로가 설득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라고 하면 공통의 인식이 불가능해집니다. 서로 싸우다가도 주변이 말리고 중재에 나서고, 서로의 경제가 붕괴하면 우리도 힘들어진다는 인식, 체제가 달라도 싸우면 서로 곤란해진다, 그런 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인식을 확고히 다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 일미 동맹이 없으면, 일본의 안보가 불안하다는 국내의 우려가 있습니다만.
"일미동맹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패전 후 일본의 복구와 경제적 부흥을 보장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지금과 같이 금융이 세계를 지배하는 글로벌 시대에는 군사적인 동맹은 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국가관계는 끝나야 할 시대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안정이란 뭘까요. 예를 들면 한일간에는 독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는 센카쿠 열도, 중국과 필리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도 다양한 영토문제와 노동자 문제가 갈등의 요소로 놓여 있습니다. 캄보디아와 타이 사이에서도 국경선을 가지고 서로 분쟁 중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는 까닭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은 서로 경제적으로 너무나 긴밀하게 의지하는 관계입니다. 

중국이랑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대립구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배가 미군에게 연료를 판매하려고 사세보 만에 자주 들어옵니다. 일미 안보조약이 없어도 일본을 점령하거나 침략하려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미 안보조약이 없으면 일본이 위험하다는 건 망상입니다. 일본에는 현재 중국의 제품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일본도 중국이 값싼 물건을 팔아줘야 하고, 중국은 일본이 사주어야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상호 의존의 경제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 전쟁의 이미지는 상대국을 점령해 그 국민에게 노동을 부담시키고, 자원을 착취하는 등의 구조였다면, 지금은 금융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금융으로 상대를 컨트롤하는 게 중심인 거죠. 군사적 무력에 의한 전쟁이란 것은 유럽도 그러하지만, 아시아 안에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일미동맹은 예전에는 일본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 그게 동아시아에는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달가워 하지 않을 텐데요.
"아시아가 안정화하고 금융관계에서 공통의 시장을 갖고 안정화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는 이익이 하향화하더라도 군대나 전쟁에 희생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메리트도 있습니다. 실제 아시아에서는 1984년에 약 34만 명 정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95년에는 11만 명으로 줄고, 2009년에는 7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주한미군을 중심으로 축소되어 온 것인데요. 아시아의 안정은 미군의 주둔 규모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건, 허브 스테이션으로서 오키나와는 남겨두려는 것이죠. 지금 오키나와에 두고 있으니까 그것만큼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계획인 겁니다."

"천안함, 아직 전모 모르기 때문에 속단 못해"

좀더 가까이서 바라본 미 해군 강습양륙함 에섹스. 눈 앞의 붉은 색 배는 민간의 배이며, 뒤쪽으로 숫자 2가 새겨진 회색 군함이 에섹스다. 헬리콥터 20기를 탑재할 수 있는 양륙작전을 주력으로 하는 항공모함이다.
▲ 아카사키 방면에서 바라본 사세보항. 좀더 가까이서 바라본 미 해군 강습양륙함 에섹스. 눈 앞의 붉은 색 배는 민간의 배이며, 뒤쪽으로 숫자 2가 새겨진 회색 군함이 에섹스다. 헬리콥터 20기를 탑재할 수 있는 양륙작전을 주력으로 하는 항공모함이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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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문제를 늘 고민하고 계시니까, 징병제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지금 G8 국가(미, 영, 일, 러, 프, 독, 이탈리아, 캐나다) 중 징병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뿐입니다. 러시아도 그만뒀고, 프랑스도 징병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앴습니다. 독일도 상당히 느슨한 징병제입니다. 프랑스가 그만둔 까닭은 지금의 사회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현대 군대는 하이테크 무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취급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실전에서 어설픈 2~3년제 일반 사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병역제도는 의무보다는 권리가 더 보장됩니다.

누구나 병역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는 히틀러 시대 군대가 나라를 망치고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그 군대를 거부할 수도 있고 오히려 군대에 들어가서 시민적 감각 위에서 군대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은 아직 전쟁중이니까 징병제를 존속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군대의 존재 양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언젠가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 우파 측 인사가 징병제 부활을 주장했는데요. 징병제를 부활시키면 군대가 뭘 할 것인가, 징병제를 통해 군인이 된 사병이 헬리콥터나 비행기를 다룰 수 있는가, 지금의 최첨단 군용 컴퓨터를 그들이 조작할 수 있겠는가 하고 되물으니 답을 못합니다. 그 우파의 인사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군대는 상대방, 적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지만 상대방의 마음 속까지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하기 위해, 감시 레이더와 첨단 도구, 잠수함 추적 등이 필요한 거죠. 작은 소리와 작은 움직임도 포착해서 상대방의 의도와 계획을 알아채려 하고, 위험을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징병제로서는 그런 시스템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가스 터빈에도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기술자 되는 데는 그렇게 짧은 시간내의 훈련으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첨단장비의 군대에서 실질적인 능력을 발휘하려면 10년은 복무를 해야 합니다.

10년간 군대에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사실은 군대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지금은 예컨대 어는 만18세의 젊은 공학도가 징병제로 군대에 들어갔다고 할 때 과학기술 연구와 상관없이 2년간 운전병만 할 경우, 2년 동안 그의 학력과 수준은 얼마나 떨어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징병제는 국가적으로도 마이너스입니다. 전쟁 중일 때는 별도겠지만요. 선진국은 징병제를 그만뒀습니다. 징병제가 아니라면, 군대도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희망해서 들어갔고 10년 이상은 복무한다고 할 때 결국은 그 구성원들이 군대를 민주화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미 해군의 상륙연습정, 경비정, 연락용 보트, 수송선 등 소형 배들이 빼곡이 들어선 히라세케이센치 지구. 미군의 복리 후생 시설 등이 있으며, 사진의 정중앙 쯤에서 바다 저쪽편에 미군 사령부 시설이 있다.
 미 해군의 상륙연습정, 경비정, 연락용 보트, 수송선 등 소형 배들이 빼곡이 들어선 히라세케이센치 지구. 미군의 복리 후생 시설 등이 있으며, 사진의 정중앙 쯤에서 바다 저쪽편에 미군 사령부 시설이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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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암함 침몰 사건을 전후해서 향후 한국, 북한, 국제사회가 어떻게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을 비롯하여 주변국이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건 전모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군사적 대응이 선행하지 않을까 일시적으로 긴장한 때도 있었으나, 최우선 당사자인 한국,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에서도 전쟁은 안된다는 위기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적 충돌이 생기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국이며, 그 다음은 중국이나 일본입니다. 그런 점에서 좀더 부드럽고 유연한 협상으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겠죠.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1989년 독일 통일의 예를 생각할 때, 동독은 경제 사회적으로도 불안했고, 실업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때 네오 나치즘이 일시적으로 눈에 띄기도 했죠. 독일은 서독이 동독을 책임지는 상황 속에서 경제적으로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할 때,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나 한국의 부담이 커집니다. 난민이 흘러들어온다거나 대혼란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피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죠. 독일의 사례로부터도 이미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요."

- 경제적 타격을 받는 건 한국, 중국, 일본이라고 하셨는데,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본은 한국과 경제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국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제 불안은 일본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일본은 중국,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투자했는데, 그것을 회수할 수 없게 되면 일본 경제에는 타격이죠. 일본 기업이 도산하면 국가도 도산입니다. 투자와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면 전 사회가 붕괴합니다.

한국도 타이가 발신지가 되었던 외환 위기 때 IMF시대라는 고난의 행군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연관성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한국경제가 붕괴하는 데 일본이 건재할 수 있다는 것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기업이 대거 도산하면 일본 기업도 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지니까요. 일본 기업도 도산 연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반도나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더라도 최대한 협상과 교섭,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태그:#사세보, #군대, #미군기지, #시노자키 마사히토, #동아시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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