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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로 가는 배 안에서 우리는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도 겁이 났는데, 이유는 바로 뱃멀미. 한 번도 멀미라는 걸 해 본 적은 없지만 '울릉도 뱃멀미'는 너무나 유명해 멀미약에 마른오징어까지 준비했더랬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눈으로 조심스럽게 바라본 바다는 마치 물빛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잔잔했다. 올록볼록 약간씩 일어나는 물결무늬는 모양 그대로 입체감을 선보여 '예술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바다하면 역시 동해 바다야."

평소 말이 없던 옆 사람(남편)도 한 마디한다.

점심은 따개밥을 먹었고 저녁은 홍합밥을 먹었다.
▲ 따개비밥(오른쪽)과 홍합밥 점심은 따개밥을 먹었고 저녁은 홍합밥을 먹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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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항에 내려 숙소에 짐을 푼 다음 점심으로는 따개비(전복하고 모양은 비슷한데 아주 작다) 밥을 먹었다. 값은 비싸지만 울릉도에서만 나는 거라니까 한 번쯤 먹어봐도 좋다고 생각했다. 맛은 좋았는데 역시 가격이 문제, 1인당 1만5000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우린 둘이 먹어서 3만 원을 냈다.

서둘러 다시 도동 선착장으로 향했다. 독도를 가기 위해서다. 이번 여행의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역시 독도 방문이다. 하지만 독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저 일본이 탐내는 우리 땅이라는 것뿐. 때문에 애국심의 발로로 독도를 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출발 전부터 긴장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 끝부분 바위들...
▲ 삼형제굴 바위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 끝부분 바위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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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노래에서 내가 아는 건 고작 여기까지다. 그러니 독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이게 전부인 셈이다. 자주 듣는 노래지만 1절이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흐지부지 듣게 돼 '새들의 고향이니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만 귀에 박혀있다.

독도로 향하는 바다는 잔잔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독도 부근의 바다가 워낙 변덕이 심한 데다 방파제가 없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닿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배가 독도에 닿는다는 방송이 나왔고 사람들의 관심이 문쪽으로 쏠렸다. 우리는 '왜들 저러나 싶어' 사람들을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 때문이었다. 먼저 내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독도의 동쪽에 있는 섬.
▲ 동도 독도의 동쪽에 있는 섬.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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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쪽 끝,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 명당자리라고나 할까?
▲ 독도 우리나라 동쪽 끝,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 명당자리라고나 할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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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감탄을 하며 배에서 내렸다. 우리 땅, 독도를 밟아 보는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아름답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다 빛은 영롱한 보석 같았는데 새들의 고향이라는 노랫말이 실감날 만큼 정말 많은 새들이 바다 위를 평화롭게 날아다녔다. 독도 어느 곳에 서서 봐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난 그저 독도를 한·일간 분쟁지역 바위섬쯤으로만 알았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독도의 서쪽 섬
▲ 서도 독도의 서쪽 섬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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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인 하얀 건물이 보이는 언덕을 올라가고 싶었지만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독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336호)이란다. 하긴 배에서 내려 구경하는 것도 아주 귀한 일이라고 한다. 독도는 눈으로 보고 사진도 찍고 계속 둘러봐도 또 보고 싶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섬이다. 결국 배에서 방송을 하고, 군인들이 "어서 배에 타시라"며 재촉을 하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배에 올랐다. 눈은 여전히 그곳 독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가 떠나니 새들만 남았다. 그토록 반기며 재롱을 부리던 새들이 떠나는 덩치 큰 배를 바라보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새들의 섬이라는 노래 가사는 참 절묘하다. 그들 작은 생물들이 있어 섬의 풍경이 더 빛났고 생동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독도를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대성공이라며 신나했다.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온 시각은 한낮(오후 다섯 시),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렸다. 울릉도 해안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바위로 둘러쳐진 해안가로 좁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장난치듯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갔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새벽 다섯 시에 집에서 출발, 독도까지 다녀왔으니, 피곤했다. 다행히 뱃멀미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상과는 다른 피로가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해안가 길을 걷다가 본 낚시하는 사람들
▲ 울릉도 바다.. 해안가 길을 걷다가 본 낚시하는 사람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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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를 따라 한참(40분 정도)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등대다.
▲ 행남등대 해안가를 따라 한참(40분 정도)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등대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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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니 해안길을 따라가면 행남등대가 나온다는데 아직은 멀었는지 등대는 보이지 않았다. 등대로 가는 길은 야트막한 산으로 덮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휴게소 같은 횟집이 있었다. 횟집에 들러 피로로 마른 목도 축일 겸 음료수를 사면서 물었다. 가격은 1500원. 육지에서보다 꼭 배가 비싸다.

"행남등대가 여기서 먼 가요?"
"아니요, 바로 요 위요."

그런데 우리 남편 다시 묻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바로 여기 위니까, 20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깜깜해져서 안 되겠네요?"

그런데 그 분 가만히 우리 남편을 바라보다가 강력하게 대답한다.

"아니 뭐 둘아가서 할 일이라도 있으슈?"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어두워지면 위험할 거 아녜요."
"아, 바로 여긴데 깜깜해지긴 그 안에 충분히 갔다 올 수 있습니다."

저물녘에 만난 저동항 바다. 멀리 죽도가 보인다.
▲ 저동항 바다 저물녘에 만난 저동항 바다. 멀리 죽도가 보인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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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남등대에서 본 저동. 바로 앞에 촛대 바위가 보인다.
▲ 저동 행남등대에서 본 저동. 바로 앞에 촛대 바위가 보인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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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우리 남편 제대로 당했다. 결국 우리 일이지만 그 분(?) 말을 핑계로 도중하차 하려다 아무 말 못하고 꾸역꾸역 오솔길을 올라간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도 힘들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등대를 안보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린 행남등대 전망대에서 멋진 저동항이 들어 있는 바다를 보았다. 촛대바위와 항구와 동네가 어우러진 바다, 그리고 바다에 유유히 떠 있는 섬, 죽도.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이 남자 힘들다는 말은 쏙 들어가고….

"정말 오길 잘 했네."

이 한마디만 흘렸다. 


태그:#울릉도,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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