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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교과부는 전국 134명(부산 23명)의 전교조 교사를 파면 해임시키겠다고 공표했다.
▲ 부산시 교육청 앞에 모인 선생님들, "참교육 선생님을 지켜주세요." 지난 5월 22일 교과부는 전국 134명(부산 23명)의 전교조 교사를 파면 해임시키겠다고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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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른바 '전교조 교사'입니다. '이른바'를 굳이 붙인 까닭은 전교조 교사란 이름은 다른 누군가가 붙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교조 교사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저 교사, 욕심을 부리면 '인간의 교사'이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거의 운명적으로 '전교조 교사'입니다.

청년 교사이던 1989년 그 해 봄 전교조가 창립될 때 나름으로 앞장을 서면서 당시 1500명이나 되는 해직 교사 대열에도 동참했고 그 이후에도 전교조의 시대적 소명과 존재 가치를 부정해 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전교조도 고쳐야 할 게 있을 것이고 반성해야 할 게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더러워진 목욕물과 함께 빛나는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134명을 영원히 교단에서 배제한다고?

지난 11일(금), 학교 근무를 마치자 곧장 부산시 교육청으로 향했던 것도 제가 전교조 교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5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는 느닷없이 국공립 현직 전교조 교사 134명(부산 23명)을 파면 및 해임 등으로 교단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했지요.

그 전교조 교사들은 민주노동당 혹은 그 당의 국회의원에게 몇 년 전 월 1만 원 정도의 후원금을 얼마 동안 낸 적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들어 이들을 기소했고, 교과부는 이를 이유로 빠른 시간 안에 중징계부터 하라는 지시를 각 시도 교육청에 내린 겁니다. '무죄추정의 원칙'(헌법 제27조 ④항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조차 무시한 채 말입니다.    

제가 부산시 교육청 정문 앞에 도착한 것은 11일 오후 5시 반경이었습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5월 31일(월)엔 시청 앞 광장에서 '교사 대학살'을 규탄하는 집회를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고 6월 8일(화)에도 부산시 교육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11일 그날은 제가 소속되어 있는 해운대 지회와 서부 지회가 중심이 되어 집회를 끌어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서권석 전교조 부산지부장의 교육청 정문 앞 철야 단식 농성 투쟁은 그날로 나흘째였고, 23명 징계대상 교사들은 조를 짜서 철야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었지요. 오후 6시가 되자 150명이 넘는 전교조 교사들과 공무원 노조, 참교육 학부모회, 여성회 등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회원들이 부산교육청의 닫힌 정문 앞을 꽉 메웠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스포츠 가방에다 좀 두터운 등산복 윗도리와 함께 미국의 셰익스피어라는 마크 트웨인의 정본 <허클베리핀의 모험>(민음사)과 라즈니쉬의 <마조 강의>를 집어넣고 출근을 했더랬습니다. 다음날이 '놀토'(휴무인 토요일)라 퇴근길에 바로 교육청 정문 앞 밤샘 농성에 합류할 요량이었습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우리 학교의 사제동행독서토론동아리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책인가를 검토할 요량으로 택했고 <마조 강의>는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어떤 '공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조는 초조(初祖) 달마에서 육조 혜능으로 이어진 중국 조사선의 전통이 마조에 와서 그 꽃이 만발하게 되었다는 그 마조입니다.

"'희망 23명' 선생님을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이윽고 사회자(황기철, 부산여고 교사)가 마이크를 잡으면서 항의 집회는 시작됐습니다.

첫 발언에 나선 이는 김경희 교사(경남여고). 그는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며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고 말한 다음, 한나라당에 수백만 원까지 후원한 것으로 확인된 일부 교원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전교조 교사는 민주노동당에 2만 원 낸 경우도 기소를 한 검찰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학교 채석인 선생님을 결코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

그는 이번에 해임이 된다면 교직 경력 20여년에 '3관왕'이 된다.
▲ "아이를 셋이나 낳은 애국자를 이래도 되나요?" 하며 웃는 채석인 선생님 그는 이번에 해임이 된다면 교직 경력 20여년에 '3관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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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언에 나선 이가 바로 그 채석인 교사였습니다. 그는 교직 경력 20여 년에 '징계 3관왕'입니다. 1986년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부산 회원으로 '5·10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하고 실천대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정직 징계를 받은 후 타시도 강제전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전교조 결성 당시엔 해직이 됐으며, 이번엔 좋아하는 당의 국회의원에게 한 달에 1만원씩 2여 년 낸 죄로 또 다시 해임 대상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주위 선생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저는 별로 안 그래요. 생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단식 같은 것도 안 하고 있고요. 이 나라가 저처럼 아이를 셋이나 낳은 애국자를 이렇게 대우하네요."

다음으로는 부산여성회 대표가 나섰습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설 수 있게 된 것은 학창시절 전교조 선생님 덕"이라고 말문을 열고는 "1, 2만 원 낸 후원금 때문에 선생님 목이 달아나는 세상"이라며 "전교조 수천 수만 선생님들 모두가 오히려 지금부터 공개적으로 후원금을 내겠다고 선언하면 어떻겠느냐"는 발랄한 제안도 했습니다.

전교조가 있는 한 이 '나라' 는 망하지 않는다"

그날 발언의 한 압권은 정경원 교사(경남여고)의 현 정권의 미래에 대한 '예언' 소개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비자가 말했다는 나라 망할 징조 47조. 그 중에서도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 파기 같은 토목건축을 좋아하고, (.....) 그 때문에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서민을 못살게 굴고 죄 없는 자를 죽이면 그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법률을 왜곡하며 사사로운 일을 공적인 일처럼 처리하고, 법령을 함부로 변경하면서 수시로 호령을 내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등의 대목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전교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할 운명을 재촉하는 것은 바로 현 정권입니다."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 파기 같은 토목건축을 좋아하고, (.....) 그 때문에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 한비자의 나라 망할 징조 47조에 대해 역설하는 정경원 선생님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 파기 같은 토목건축을 좋아하고, (.....) 그 때문에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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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장이 나와 전공노도 전국 89명, 부산 4명이 민노당 후원 문제로 기소됐음을 알리면서 전공노는 전교조와 끝까지 공동분투할 것임을 재천명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다른 몇몇 선생님들의 발언이 이어졌지만 집회의 발언들은 이만큼 해서 줄이고자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7시 반경, 참석자들이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집회는 일단 끝이 났습니다. 

이 선생님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꿈은 이뤄질까?
▲ 부산시 교육청 정문 앞 수위실 불빛은 밝은데 이 선생님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꿈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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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놀토'라서인지, 해운대 지회 차원의 집회였지만 교육청 정문 앞은 밤이 늦도록 쉬이 발길을 집으로 향하지 못하는 교사들과 노동단체 회원들로 북적댔습니다. 지부장을 비롯한 상근자들, 징계대상자들의 계속되어온 외로운 밤샘 농성이 못내 마음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 하는 법. 밤 12시가 가까워서야 교사들은 속속 귀가하고 불 밝힌 정문 수위실 앞에 마련된 농성장은 재정리됐습니다. 열  명 가량의 밤샘 조가 남았는데 수위실 뒤쪽으로는 미련이 남은 몇몇 선생님들의 열띤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고요.

밤 하늘엔 느티나무의 검은 가지들이 무성하고

저는 새벽 2시경이 되어서야 등산복을 꺼내 입고, 깔개가 깔린 바닥에 담요를 덮고 누웠습니다. 라즈니쉬의 <마조어록>을 꺼내 가로등 불빛에 비춰 읽어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아, 이렇게 땅 바닥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잠을 청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공연한 감개무량이었습니다. 누워서 올려다 본 밤하늘로는 느티나무 검은 가지들이 무성하게 뻗어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스님 혹은 구도자를 운수납자(雲水衲子)라 했던가요? 물처럼 바람처럼 살며 진리를 탐구하는 대자유인! 임제 선사는 '있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隨處作主)'고 했으니, 이 농성자리가 바로 불국토가 아니면 무엇일까, 아이들의 청정한 눈빛을 두려워할 줄 알며 사랑하고자 하는 전교조 교사야말로 운수납자요 선한 구도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펴다가 잠에 떨어졌나 봅니다.

밤샘 농성하며 대자유인, 운수납자를 생각하다
▲ 누워서 올려다 본 밤의 느티나무 밤샘 농성하며 대자유인, 운수납자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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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힌 교육청 향해 108배 하는 '2관왕', 그대도 '전교조 교사'

모기떼의 성가신 공격에 새벽 5시경에 눈을 떴습니다. 하수구에서 빠져나온 모기가 극성이라는 말은 진작 밤샘 농성을 해온 지부장님에게서도 들었던 바였지요. 아직은 오가는 사람하나 없는 교육청 정문 앞 이른 아침은 상쾌했습니다. 하여, 도로 누우면서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징계 대상자 중 하나인 노영민 선생(사직고)이 어제도 했다는 108배를 준비하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디를 향해 절을 할까?"

제가 말을 받았습니다.

"가장 원수 같은 사람을 향해 부처 되라고 비는 게 진짜 절이라는데."

나이가 오십 중반인 그도 이번에 해직되면 2관왕입니다. 그는 문을 걸어 닫은 교육청을 향해 묵묵히 108배를 했습니다. 몇몇 농성자들은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중에 징계 대상자인 김익수 선생(예문여고)이 제 곁에서 문득 말했습니다.

"저들은 결국 방학 중에 자르겠지요."

이번 부산 23명 중에서 사립교사는 그를 포함해 둘입니다. 설사 나중에 재판에 이겨서 법원이 복직 판결을 해도 우리나라 대다수 사립 재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을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잠시 후,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 놀토지만 학생들이 등교하여 자습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2관왕'이 될 참인 노영민 선생님의 또 하나의 일상
▲ 새벽의 108배 '2관왕'이 될 참인 노영민 선생님의 또 하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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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저도 농성장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전 9시. 남아있는다고 해도 안 될 이야 전혀 없지만 아침밥은 원래 안 먹는다는 지부장님은 혼자 있어도 된다면서, 조금 있으면 지부 상근자 몇이 와서 농성장을 함께 지킬 것이라면서 집에 돌아가 푹 들 쉬시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만 뒤에 남기고 저는 우리는 스위트 홈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잠이 쏟아졌습니다. 고만한 1박의 농성 투쟁(!)에도 맥없이 허물어지는 게 저의 육체입니다. 포근한 이부자리에 누워 23명 징계대상자 선생님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혼자 농성장을 지키고 있을, 언제나 푸근한 웃음을 잃지 않는 지부장님도 떠올렸습니다. 모두 '전교조 교사'로서 제 동료이고 친구이고 후배들입니다.

'희망 23'이라 부르는 까닭

그들을 두고 전교조 부산지부는 '희망 23인'이라 불렀습니다. 그 무슨 대단한  살신성인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민단체나 노동운동 단체,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에게 한 달에 몇 천 원 혹은 기껏 많아야 1만, 2만원씩 자동이체로 후원을 해오던 것처럼 민주노동당의 일 잘하고 똑똑하고 아름답다 여기는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몇 푼 냈을 뿐인 선생들을 두고 이 나라의 '희망'이라니 참 어패가 있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 23인' 중에서 단 한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 선생님의 제자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희망'이란 말에 값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징계대상자인 김은하 선생님(양동여중)의 중1 어린 제자들의 편지의 한 자락은 이러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교단을 떠나란 거죠?"
▲ 양동여중 1학년 1반 담임 김은하 선생님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교단을 떠나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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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으로 충분해요. 우리 34명이 아름답고 이쁜 모습을 모아서 선생님을 응원하고 뒤에서 앞에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지켜봐주고 해 준다면 못 일어설 리가 없죠. 우리는 아직 중학생 티도 안 나는 14살 꼬맹이들이지만 은하 샘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니까요. 진짜 우리는 한 마음 다 해서 선생님을 돕고 싶어요. 진짜 사랑하고 진짜 좋아하고 진짜 떠나보내고 싶지 않죠. 절대로. Never. 왜냐하면 We believe her. 우리는 선생님을 믿으니까요."

   
김은하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교단을 떠날 수 있을까요"하면서 가슴을 쳤었지요. 사태는 분명합니다. 이 정권은 이처럼 아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교사를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래서 교단에서 몰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정권인 것입니다.

전국 134명, 부산 23명의 선생님들을 지켜주겠다며 전교조 교사들은 연일 집회도 하고 결의도 모으지만 결국엔 이 정권은 선생님들을 교단에서 내몰고 말겠지. 그 선생님은 가슴을 치며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 생각는 중에 저는 잠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전교조 교사, 나는 누구인가? 

오늘 새벽에도 몇몇 '희망' 선생님들은 지부장님과 함께, 교과부의 징계 지시를 여과 없이 받아 안아 징계의결을 강행한 부산시 교육청 닫힌 정문 앞 바닥에서 철야 농성 열흘째를 맞고 있었을 테지요. 날이 흐리고 며칠 후부턴 장마가 온다고 합니다. 여름방학도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이 땅에서 전교조 교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으며 글을 맺습니다.

"꽃으로도 전교조를 때리지 마라", 고 안도현 시인은 말했던가요?
▲ 밤을 꼬박 새운 펼침막들 "꽃으로도 전교조를 때리지 마라", 고 안도현 시인은 말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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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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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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