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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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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자체 선거를 불과 여드레 남겨 놓은 5월 24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갈 것", "남북 간 교역과 교류도 중단될 것", "북한이 우리의 영토를 무력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 등을 선언했다. '전쟁 불사'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전쟁기념관'에서 행해진 이명박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방송을 활용한 '이벤트 정치'의 극치였다. 지자체 선거를 불과 1주일 남짓 남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 이벤트 정치행위의 노림수는 사실 뻔한 것이었다. 이날 연설을 보면서 2003년 5월 1일 미국 샌디아고에 있었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무완수'라는 이벤트성 정치쇼가 떠올랐다.

MB와 부시의 정치쇼는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 20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이라크에 침공한 지 40일 만에 이라크 군사 임무를 완수했다며 항공모험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서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정치적 쇼를 벌였다. 부시는  페르시아 만에서 이라크 침공 작전에 참여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아고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 나타나 '승전'을 선언했던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이날 이벤트는 처음부터 정치적 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선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 부시는 전용 헬리콥터를 타지 않고, '해군 1호'로 알려진 바이킹 제트기를 타고 착륙했다. 당시 백악관은 전용 헬리콥터가 항공모함과 멀리 떨어져 있어 불가피하게 바이킹 제트기를 탔다고 설명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전용 헬리콥터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이킹 제트기가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는 일반 전투기가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처럼 쇠줄로 제트기 바퀴를 낚아채서 정지시켰다. 전용 헬리콥터로 내리는 것보다는 훨씬 '전투적이고 군 총사령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이었다. 여론조작의 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바이킹 제트기에서 나오는 부시의 모습은 조종사 전투복 차림이었다. 그는 다른 전투기 조종사와 함께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으며, 이 장면은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평복으로 갈아 입은 뒤 항공모함 링컨호 선상에서 '이라크 전쟁의 임무 완수'를 선언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가 이 선언을 할 때 그의 뒤 항공모함 몸체에는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거대한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에서 있어온 전투에 끝을 알린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장면도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전해졌다.

이 '임무완수' 쇼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가장 어리석고, 유치한, 자기 발등을 찍은 '정치 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왜냐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일시 승리한 듯 보였으나, 이내 참혹한 내전과 끔찍한 테러가 줄을 이었고, 그 과정에 엄청난 미군과 이라크인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임무가 완수된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분쟁과 파괴, 살상이 무작위로,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라크 침공 뒤 미군의 사망자가 4천 명을 넘어섰고,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만도 10만 명을 넘어섰다. 9·11 테러로 숨진 미국인 숫자가 2973명인데,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치른 여러 전쟁 가운데 이라크에서만 미군 사망자가 9·11 피해자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리고 전 세계로 반전 시위가 번졌고, 미국 내에서도 부시의 지지율은 '임무 완수' 쇼 뒤 완전히 내리막길이었다.

부시는 200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임무 완수' 이벤트는 실책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부시가 고백하기 전 이미 '임무 완수' 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도대체 아직도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더욱이 내전 폭발이 임박한데, 어떻게 '임무 완수'를 선언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항공모함 이벤트 직후부터 쏟아져 나왔고, 이 정치쇼는 부시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정치계산에 너무 몰두한 MB와 부시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미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미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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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전쟁 기념관' 이벤트를 보면서 부시의 '임무 완수' 쇼가 떠 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워낙 닮은 점이 많은 MB와 부시였기에, 특히 사기업 사장 출신답게 장삿속으로 정치의 이득을 따지는 욕구가 남달리 강한 듯한 면도 비슷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뢰 프로펠러와 어뢰 축이 발견되어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북한으로 밝혀졌다는 보고를 받고 "운이 따르는구나"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런 일마저도 정치적으로 계산하여 득이 된다고 보았으니, "운이 따르는구나"라고 독백을 했겠지.

부시의 '임무 완수'라는 어설프고 치졸한 정치 쇼가 그의 몰락을 가속화했듯이, 전쟁 기념관에서 '전쟁 불사'의 의지를 불태운 MB의 이벤트도 그의 몰락을 재촉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선거를 불과 여드레 앞둔 시점에서 이런 발표를 하는 정치 행위의 속내를 국민이 모를 것이라고 보았다면, 그리고 '전쟁 기념관'이라는 장소에서 '전쟁 불사'의 의지를 불태우는 이벤트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았다면, 이는 국민을 참으로 우습게 여긴 오만과 무지에서 빚어진 것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홍보언론들은 기름을 부어댔다. 김영우 한나라당 의원은 MB가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바로 그 날, 국회에서 있었던 천안함 특위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을 상대로 "국방장관이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 위해 국민 생명,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쟁 불사'라는 말을 드러내놓고 했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같은 날 대북한 논평에서 "진정한 평화, 지속적이고 안정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치를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도발에 대한 대응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고 초강성발언을 했다.

한나라당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조중동 등도 처음부터 전쟁 북소리를 울렸다.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전시체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조선일보> 3월 30일자 사설)를 주장했고, '인간어뢰'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북풍 몰이에 나섰다. 그 과정과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언론이 아니라 '프로파간다 머신'(선동기계)이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MB 정권과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 선동기계가 쏟아 내는 이야기들을 아마도 일반 국민의 여론으로 착각했거나, 이런 선동에 편승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라고 여겼음 직하다. 지자체 선거를 며칠 앞둔 5월 31일 기자 간담회에서 "다행히 천안함 사태가 바로 인천 앞 바다에서 일어났다"고 한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인천지역선거대책위원장)의 '고백'은 천안함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MB·한나라당·조중동 등의 전쟁 북소리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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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의 전쟁 북소리는 시장에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제어되고, 또한 젊은 세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주식과 외환시장이 매서운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천안함 리스크'였다. 그리고 국민들은, 특히 젊은 세대는 국민들을 세뇌할 수 있다는 듯 독선과 오만을 부리며 북풍 놀이를 하는 MB 정권, 한나라당, 조중동, 한국방송 등을 외면했다.

젊은 세대의 생각이 생생하게 나오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전쟁 기념관 담화' 직후부터 심상치 않은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말인가", "전쟁이 날까 두렵다"는 '전쟁 공포'에서부터 "선거운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자신들의 부주의와 무능함은 묻어두고 국민들에게 투정질만 하고 있는 꼴" 등 냉소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시장의 반응이 이번에는 달랐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년 동안 쌓아 놓은 평화 기반이 워낙 튼튼하여 그동안 웬만한 북풍에는 시장이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전쟁 기념관' 담화발표와 그 이후에 나온 한나라당내 '전쟁 불사' 발언, 그리고 조중동 등의 전쟁 북소리가 합쳐지자, 시장은 '자본주의적 공포감'을 드러냈다. 5월 25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44.10(2.75%) 내린 1560.83으로 마감했고, 환율은 35.50원 오른 1250.00을 기록했다.

환율이 1250원대로 오른 것은 지난해 8월 19일 1255.80원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처럼 금융시장이 패닉 증상을 보이자 그 동안 앞 다퉈 강성 발언을 해 오던 인사들이 주춤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쏟아 놓은 '전쟁 불사'의 북풍 놀이와 전쟁 북소리가 국민의 마음, 젊은이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식게 해버렸다(이것 외에도 이미 민주주의를 뒤집고, 국민을 우습게 알고, 독선과 오만 방자를 자행했던 온갖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MB의 닉네임이 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거의 욕설 수준이 되어버렸다는데… 권력에 도취한 MB '핵심관계자들'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 결과가 6월 2일 지자체 선거에서 나타났다).

조중동 종편과 4대강 강행, 또 다른 몰락의 덫

KBS의 수신료 인상 움직임에 반대해 시민단체들이 수신료 국민공청회를 열었다. 14일 오전 10시 방송회관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날선 비판들이 이어졌다.
 KBS의 수신료 인상 움직임에 반대해 시민단체들이 수신료 국민공청회를 열었다. 14일 오전 10시 방송회관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날선 비판들이 이어졌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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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운이 따르는구나"라고 독백했던 천안함 사건, 그것을 정치적 이득의 극대화를 위해 MB 정권 인사, 한나라당, MB와 동지적 관계에 있는 수구 기득권 언론 등이 한 통속이 되어 몰아간 '북풍 게임'은 2003년 조지 부시가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하여 초토화하듯 밀어 붙인 이라크 침공, 이후 벌인 '임무 완수'의 정치 쇼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다.

안보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그 불순한 동기, 무력과 강성대응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군사 모험주의, 그 군사 모험주의를 대통령이 가장 앞장서서 끌고 가는 모양새, 그런 모양새를 강력한 리더십이라 착각하는 치졸한 인식, 대통령에게 정확한 민심의 소재를 전달하지 못한 압도적 다수의 여당, 권력 비판이라는 본래 기능은 포기한 채 오히려 군사 모험주의, 강경대응을 부추기는 정권 친화적 언론환경…. MB와 부시 사이에는 참으로 닮은 점이 너무 많다.

특히 여론조작을 위한 이벤트성 정치 쇼가 엄청난 저항을 받고, 또한 그런 작업에 적극 동조한 언론의 부역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았다. 입에 쓴 약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단 것만 좋아한 게 아닌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미국의 양심'이라는 <뉴욕 타임스>까지 전쟁 북소리에 동참했던 사실은 지난 증언 때 밝힌 바 있다. <뉴욕 타임스>가 그 정도였으니, 나머지 언론, 그 가운데 특히 미국의 <조선일보 방송>이라고 볼 수 있는 머독 소유의 <폭스>를 비롯하여 러시 림보로 상징되는 보우 우파 언론들이 부시 정권과 군사 모험주의, 보수 혁명을 얼마나 열렬하게 일방적으로 지원했는지는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은 올해 안으로 조중동에 종합편성 채널을 주려하고 있다. 그리고 조중동 종편의 먹거리를 위해 한국방송 수신료를 지금의 월 2500원에서 6500원으로 160% 인상하려 하고 있다. 조중동 종편과 4대강 밀어붙이기, 이 두 가지를 끝내 강행한다면, 천안함 사건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MB의 몰락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라크 전쟁 외에도 갖가지 부정부패와 카트리나 재난에 대한 무능한 대처에 미국 국민들이 엄청난 분노를 터트렸던 것처럼, MB도 조중동 종편과 4대강 밀어붙이기에서 또 다른 형태의 국민적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천주교, 불교 등 4대강 밀어붙이기에 대한 종교계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고, 조중동 종편과 이들의 먹거리가 되는 한국방송 수신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이 드세지고 있다.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몰락의 덫, 몰락의 페달이 될 것이 분명하다.


태그:#정연주, #이명박, #KBS, #조지 부시, #전쟁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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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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