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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기 / 사진 : 성낙선

4대강 사업에 동원된 군부대 장비들, 불도저와 덤프트럭. 뒤에 보이는 것이 부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막사. 군은 이 사업을 위해 '청강부대'를 창설했다.
 4대강 사업에 동원된 군부대 장비들, 불도저와 덤프트럭. 뒤에 보이는 것이 부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막사. 군은 이 사업을 위해 '청강부대'를 창설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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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보다 더 뜨거운 불길은 없고, 증오보다 더 질긴 밧줄은 없다. 어리석음보다 더 단단한 그물은 없고, 탐욕보다 더 세차게 흐르는 강물은 없다."

경북 상주의 영풍교 인근 식당 평상에 앉아 <법구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영남의 젖줄, 생명의 낙동강은 인간의 탐욕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지면서 흙탕물을 내뿜었습니다. '4대강 살리기'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공언마저 내팽개친 채 군대까지 동원해 강바닥을 파헤치는 몰염치한 현장,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4대강변에 휘몰아치는 '모래태풍'

지난 7일부터 5일간 350km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평속 18km. 남한강변에 핀 개망초와 패랭이꽃, 쑥부쟁이, 그리고 조팝나무 꽃향기가 강바람에 실려 눈과 코 끝을 사로잡았습니다. 섭씨 31도를 오가는 땡볕의 아스팔트 길. 힘든 라이딩이었지만, 텅빈 국도를 놔두고 4대강 유역에 자전거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 물정을 모르는 소리인지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여주 이포대교 밑에선 그 참혹함에 절망했습니다. 수십 대의 굴착기는 연신 강바닥을 퍼내고, 그 많던 금은 모래밭은 덤프트럭에 실려 인근 농경지를 덮었습니다. 심지어 모내기를 끝내고 파릇파릇한 벼가 막 자라기 시작한 논에도 모래산을 쌓았습니다. 강바닥에 알을 낳고 살던 뭇생명들의 거처를 모조리 헤집어놓고, 인간의 곳간까지도 모래로 채우는 어리석음. 되레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신륵사 모래적치장 뒤에서 일고 있는 모래바람
 신륵사 모래적치장 뒤에서 일고 있는 모래바람
ⓒ 여강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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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모래태풍. 신륵사 앞 여강선원에서 제공한 이 사진은 사우디사막의 공사현장 모습이 아닙니다. 금당천과 남한강의 합수지점에 위치한 대형 적치장에서 불어오는 흙바람입니다. 축구장 4개 크기의 적치장 높이만도 30~40여m. 모래산을 쌓는 동안 이곳의 아름다웠던 습지대와 버드나무 군락은 종적을 감췄습니다. 천혜의 습지를 갈아엎고 시멘트로 범벅된 인공의 습지를 만들면서도 '생명 살리기', '녹색뉴딜'이라는 거짓 깃발은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침전지, 강바닥을 긇어낸 모래와 흙에서 흘러나오는 오탁수를 걸러내는 장치. 적치장 규모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다.
 침전지, 강바닥을 긇어낸 모래와 흙에서 흘러나오는 오탁수를 걸러내는 장치. 적치장 규모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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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인근에는 5평 남짓한 침전지가 있습니다. 2~3미터 깊이의 인공 물웅덩이인데, 모래 적치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탁수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역시 수천 평의 농경지를 모래로 덮은 높이 30~40m의 거대한 모래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겠다고 기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침전지는 환경피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면피용 액세서리인 셈입니다.

여주 이호대교 인근에 가니 거대한 시멘트 말뚝 6개가 강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천보 공사현장입니다. 교각 높이는 13m. 그 밑에서 작업을 하던 불도저와 덤프트럭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삵의 서식처를 코앞에 두고 강의 내장을 훤히 드러내놓고 진행하는 그 육중한 공사 현장을 아직도 정부는 '보' 건설이라고 우깁니다. 홍수를 예방하는 등 다목적용이랍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형 댐의 높이는 15m이고, 이곳은 홍수가 거의 나지 않는 지역입니다. 손바닥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짓입니다.

강천보 공사 현장. '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다. 공사장을 오가는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강천보 공사 현장. '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다. 공사장을 오가는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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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도 그러했지만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열도 대단했습니다. 평지를 달릴 때는 숨이 턱 막혔고,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다리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온몸을 적셨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바람에 날아갔습니다. 350년 된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산소에 세탁되는 듯했습니다.

강물도 그러합니다. 오르막은 없지만 굽이치는 계곡에서는 쉴 틈 없이 쏜살같이 내려오다가 평평한 곳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잔잔하게 흐릅니다. 그러다가 얕은 수심의 여울을 만나면 아랫물과 윗물이 서로 뒤엉켜 뒹굴면서 산소를 물밑으로 마구 밀어넣고, 물웅덩이인 소에서는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합니다. 강물은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자신의 몸을 씻어냅니다.

남한강의 한 지류인 섬강.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밭에 백로가 한가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강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남한강의 한 지류인 섬강.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밭에 백로가 한가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강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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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교에서 왈칵 눈물 쏟을 뻔하다

여주 남한강 구간에서 들리는 강의 노래는 차라리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내는 고통스러운 괴성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마주친 섬강. 전 섬강교 위에서 강물을 내려보다가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여울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밭. 알록달록한 자갈들이 훤히 내비치는 강물. 그 위를 날아다니는 왜가리와 백로.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눈을 들어 흥원창쪽을 바라보니 남한강과의 합수지점은 굴착기와 불도저, 덤프트럭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충주 구간을 지나 이화령을 넘었습니다. 산문을 폐쇄하고 선승들이 기도정진하고 있는 봉암사에서 여장을 푼 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낙동강 발원지를 향해 페달을 돌렸습니다. 4시간여 달린 뒤 마주한 경북 상주의 퇴강 앞 큼지막한 표지석에는 '낙동강 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뒷면에 적힌 낙동강의 유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자 빛나는 문화를 일궈낸 유서깊은 큰 강이다."

하지만 눈앞에는 이런 역사적 자부심을 부정하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드넓은 백사장은 대규모 아파트 공사현장을 방불케했습니다. 그 공사는 낙동강의 밑뿌리인 이곳부터 700리 길에 끊임없이 이어진 듯했습니다. 이 광경을 망연자실 보고 있노라니 천암함 사건 조사발표 뒤에 전쟁기념관에 서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호전적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부는 생명의 강에 대한 전쟁을 이미 시작했고, 낙동강 전체 구간에 걸쳐 뭇생명에 대한 참혹한 살육작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에 군부대까지 동원됐다. 사진은 군부대 트럭이 민간이 재배하는 퇴강 유역의 양파밭을 강바닥에서 퍼낸 흙으로 덮어버리는 장면이다. 민간인들이 서둘러 양파를 수확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군부대까지 동원됐다. 사진은 군부대 트럭이 민간이 재배하는 퇴강 유역의 양파밭을 강바닥에서 퍼낸 흙으로 덮어버리는 장면이다. 민간인들이 서둘러 양파를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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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이 '군사작전'을 위해 군부대까지 창설했습니다. 일명 '청강부대'. 물을 맑게 하는 부대란 뜻이랍니다. 110명 규모인 이 부대는 퇴강 유역에 콘테이너 박스 50여 개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4대강전'을 수행하기 위해 덤프트럭 50여 대와 불도저 2대를 장착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직접 전화 등을 통해 공사 진척 상황을 챙기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양파와 전쟁 벌이는 대한민국 국군

지난 11일 지율 스님과 함께 찾아간 이곳에서는 양파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2대의 군청색 불도저와 3-4대의 덤프트럭들이 양파밭에 모래를 퍼부었고, 10여 명의 민간인들은 그 밑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쫓기듯 양파를 캐고 있었습니다. 입만 떼면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보수정권의 아이러니한 현주소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둑방 길을 달리다보니 곳곳에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 험악한 꼴을 보이기 전에 차라리 이 팻말이라도 뽑아버리지...' 입밖으로 상스러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식수원을 보호하려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금지시켰고, 농민들에게도 수십 년 동안 온갖 규제를 통해 재산권 행사마저 봉쇄했던 정부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 이중적 행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경천대는 한때 '하늘이 지은 절경'으로 불렸으며, 낙강제일경이자 상주의 국민관광지이다. 그러나 이 경천대에서 바라다보는 모래밭 역시 조만간 4대강 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경천대는 한때 '하늘이 지은 절경'으로 불렸으며, 낙강제일경이자 상주의 국민관광지이다. 그러나 이 경천대에서 바라다보는 모래밭 역시 조만간 4대강 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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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아직까지는 굽이치는 강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사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빨간색과 흰색 깃발이 '사망선고장'인양 직선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강을 직강화하기 위한 표식이었습니다. 낙동강 구간의 아직 살아남은 백사장에는 여지없이 주검의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의 골자는 이렇듯 강을 직강화하는 것입니다. 댐으로 물길을 막고 강바닥을 준설한 뒤 강물을 직선화한다면 우리의 식수원은 어찌될까요? 수십 년 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댐을 헐어내고 수로화했던 강을 자연형 사행천으로 복원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낙동강이 살고 사람이 살고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4대강 공사 현장 주변에는 이런 문구가 즐비하다. 이 말은 역으로 낙동강이 죽으면 사람이 죽고 지역 경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낙동강이 살고 사람이 살고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4대강 공사 현장 주변에는 이런 문구가 즐비하다. 이 말은 역으로 낙동강이 죽으면 사람이 죽고 지역 경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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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곳곳에는 국민들을 현혹하는 현수막들이 즐비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강의 미래는 행복입니다', '4대강 사업은 생명 살리기입니다' 등.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구호는 '4대강 사업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라는 문구입니다. 하지만 구미에서 만난 경실련 관계자는 "일부 지역기업들은 개발 기대 심리에 매달리고 있긴 한데 4대강 사업은 사실상 지역경제가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다"면서 "지역 건설업자들조차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최근 한 지역 골재채취업자의 자살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것이 헛구호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공사 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지율 스님. 강바닥을 긁어낸 흙에 자갈이 섞여 있는 걸 보고 지율 스님은 "강의 뼈 속까지 발라낼 심산인가 보다"고 말했다.
 낙동강 공사 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지율 스님. 강바닥을 긁어낸 흙에 자갈이 섞여 있는 걸 보고 지율 스님은 "강의 뼈 속까지 발라낼 심산인가 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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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뼛속까지 발라낼 심산인가?

상주에서 구미까지 오면서 본 낙동강은 이미 강의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왜가리와 백로가 머리를 처박고 고기를 건져올리던 그 강물에 대형 굴착기가 머리를 처박고 모래를 퍼올리고 있습니다. 구미보 인근에 쌓아놓은 적치장에 자갈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본 지율 스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강의 뻣속까지 발라낼 심산인가 보네요."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현장에 서면 공포와 체념이 엄습해옵니다. 생명의 강에 대한 증오심마저 느껴집니다. 지금이라도 막으면 복구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마저 듭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정부의 노림수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지만 야간작업까지 수행하면서 속도전을 벌이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체념케 하자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도 최근 성명을 통해 지금 사업을 중단하면 수천억원의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면서 4대강 사업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부도 4대강 사업의 공정을 30% 이상 마쳤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중단한다면 많은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사실상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다리 보강 공사를 하고 있는 낙단교. 4대강 사업은 이처럼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공사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이 모든 공사를 끝마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공사를 중단하는 게 현명하다.
 다리 보강 공사를 하고 있는 낙단교. 4대강 사업은 이처럼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공사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이 모든 공사를 끝마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공사를 중단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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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30% 공정 마쳤다고?

하지만 이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낙동강 35공구 현장에서 만난 한 인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기에, 정확한 공정을 다시 한 번 물어보니 "준설공사의 30% 정도 마친 것 같다"는 말이 되돌아왔습니다. 양쪽에 제방을 쌓고 인공 습지와 체육시설 등을 조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입니다. 또 낙단교와 낙단대교는 준설로 인해 다리보강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4대강에 걸쳐 있는 수많은 다리들을 보강하는 데만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어려울 듯합니다. 물론 다리보강공사 비용은 4대강 전체공사비라고 정부가 발표한 22조원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이라도 4대강 공사를 막는 것이 이후 공사에 투입될 수십 조원의 혈세와 공사를 마친 뒤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유지관리비, 그리고 복원비용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돈을 절약하는 길입니다. 지난 2008년 '한반도대운하' 취재차 미국에 간 적이 있는데, 직강화했던 키시미강에 홍수가 나고 수질이 나빠져 공사비의 10배인 3억 달러를 투입해 사행천으로 복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막대한 돈을 들여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낙동강 유역에서 을숙도와 함께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해평습지. 이곳 역시 4대강 군사작전이 한창이다. 철새들의 낙원을 파헤치면서, 낙동강을 철새들의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게 4대강 사업이다.
 낙동강 유역에서 을숙도와 함께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해평습지. 이곳 역시 4대강 군사작전이 한창이다. 철새들의 낙원을 파헤치면서, 낙동강을 철새들의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게 4대강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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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4대강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잡은 것은 구미의 해평 습지였습니다. 낙동강 유역에서 을숙도와 함께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수십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습지로 두루미만도 매년 2000~4000마리가 찾는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 경유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4대강 군사작전이 한창이었습니다. 4대강 홍보 팸플릿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철새들의 서식처를 모조리 파헤쳐놓고 철새들의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정부. 굴착기 바퀴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는 거대한 공사장으로 들어가면서 지율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평 습지 앞 모래톱. 이 아름다운 모래톱도 곧 사라질 판이다. 멀리 굴삭기 한 대가 열심히 모래밭을 긁어내고 있다.
 해평 습지 앞 모래톱. 이 아름다운 모래톱도 곧 사라질 판이다. 멀리 굴삭기 한 대가 열심히 모래밭을 긁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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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전 항상 이곳에 오면 아바타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곳은 새들의 땅이었습니다. 속상해요. 너무나 엄청나서 절망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계속 이곳에 와서 변화되는 모습을 기록할 겁니다. 그리고 지난해 3월부터 상주에 머물면서 안동-임화-내성천-영강-문경 등의 구간을 1km씩 나눠서 규칙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감시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저들은 더 날뛸 겁니다. 이제 우리는 강같은 마음으로 강에서 만나야 합니다. 현장을 지켜보는 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저들은 알게 해야 합니다."

5일간 자전거를 타고 한강과 낙동강을 훑어보면서 저는 강의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국도와 둑방길을 달리며 머릿속에는 현 정부의 반칙과 편법, 야만과 광기, 거짓과 기만, 독선과 독주 등의 거친 단어가 맴돌았습니다. 그만큼 현장은 말로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처참했습니다.

해평 습지 앞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내고 있는 굴삭기. 철새들이 머리를 담그고 먹이를 찾고 있어야 할 그곳에 굴삭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풍경이 무척 기이하다.
 해평 습지 앞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내고 있는 굴삭기. 철새들이 머리를 담그고 먹이를 찾고 있어야 할 그곳에 굴삭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풍경이 무척 기이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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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할까요? 자전거 안장 위에서 페달을 굴리듯 끊임없이 자문해 보았습니다. 사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활시위를 떠난 지 오래입니다. 이 대통령은 14일 라디오 주례연설을 통해 "4대강 살리기는 먼 훗날이 아닌 몇 년 뒤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국책사업"이라면서 이 사업을 강행할 뜻을 밝혔지만, 그가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는 4대강을 담보로 한 '혈세 파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농지에 모래를 쏟아붓는 것을 반대했던 농민들에게 1년 농사에서 나오는 소출의 10배 이상의 웃돈을 얹어준답니다. 보상금에 눈 먼 한 지역민은 밤에 식칼을 들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의 집에 가서 협박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4대강 인근 지역에 대규모 개발계획이 세워지면서 개발업자들이 불나방처럼 날아들어 돈놀이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대형 건설업자들도 초기 공사비용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상태입니다. 욕망과 탐욕의 자기동력으로 가속도가 붙은 4대강 사업. 이명박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요?

하지만 결자해지 차원에서 그래도 그가 나서야 합니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인 2006년 가을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독일의 힐폴슈타인 갑문에 서서 한반도 대운하를 제1공약으로 발표하면서 이 무지막지한 욕망의 전쟁을 선포한 그가 나서야 합니다. 운하 선진국에서는 '박물관'에 처박혀 있는 구닥다리 고물을 가지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진입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국민들 속에 내재한 탐욕의 불씨를 끄집어낸 그.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불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4대강 쇳덩이를 삼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강을 회생 불능의 상태로 빠뜨리고, 국민 경제까지도 거덜낼 수도 있는 더 큰 참극을 막는 길입니다.


태그:#4대강, #자전거여행, #낙동강,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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