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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지하에서 흘리실 피눈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6·15남북공동선언 열 돌이 다가왔습니다. 작년 9주년 행사를 끝내고 대통령님께서는 "내년은 10주년이 되는 해니까, 잘 준비해서 치러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6·15 10주년을 맞았지만 매년 해오던 남북공동행사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중단된 지 2년이 다 되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가 보고 싶어하시던 개성공단의 운명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성공단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냉전 시대, 대결 시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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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11일 저녁 대통령님께서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63빌딩 6·15 9주년 행사장에 병든 몸을 휠체어에 싣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연설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60년 동안이나 (분단된 상태로 있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력히 충고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합의해 놓은 6·15와 10·4를 이 대통령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대통령님을 찾아와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님께서는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사업을 한 분이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잘할 것"이라며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도 알고 계셨지만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이 없었습니다.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평화'를 택했다

대통령님! 지난 3월 서해에서 참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46명의 젊은 군인들이 해군 함정의 침몰로 산화했습니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애도했습니다. 정부는 침몰 원인을 발표했지만 의심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고는 지방선거와 맞물려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북풍'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전쟁 불사론'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하루 만에 29조 원어치의 주식이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마치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때도 일부 정치권과 언론들은 '전쟁 불사론'을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그때 대통령님은 분연히 일어나 내외신 회견, 전국 대학 순회강연을 통해 네오콘을 질타하고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습니다. 서울대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해야 합니다. 강제로 분단되어서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큰 전쟁을 치렀으면 됐지 또 전쟁해야 합니까.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히틀러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희극배우답게 말했어요.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는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 살든지 해야 한다'라고."

이번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화와 국민의 생명을 앞장서 말해야 할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 서서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 국민은 현명했습니다. 국민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햇볕정책'을 선택한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국제사회도 정부 '강경노선'에 냉담한 반응

대통령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염려스럽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미국도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는 형국입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 정부의 강경노선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곤경에 빠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오래전부터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6자회담을 동북아평화안보협력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님을 모시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방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 세번째)를 만났다. 왼쪽부터 정세현 전 장관, 박지원 의원, 이희호 여사이며,  맨 오른쪽은 양문창 인민외교학회 회장, 그 옆은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 김대중 전 대통령 중국방문 중국을 방문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 세번째)를 만났다. 왼쪽부터 정세현 전 장관, 박지원 의원, 이희호 여사이며, 맨 오른쪽은 양문창 인민외교학회 회장, 그 옆은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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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은 2004년 6월 북경 중남해에서 열린 장쩌민 당시 군사위 주석과의 회담에서, 그리고 작년 5월 베이징 인민대회당 내 시진핑 부주석과의 회담에서 6자회담을 동북아평화안보협력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작년 5월 북경 방문은 대통령님의 생애 마지막 해외여행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렇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가 터지자 더욱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게 뻔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늘 "외교는 내정과 달라 한번 잘못되면 바로잡기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님!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개혁진영은 '자기를 버리고, 크게 연대하라'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들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전국적으로 단일화를 이루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작년 6월 저희 비서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

대통령님,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뜻이 확인되고 민주개혁진영에 좋은 성과가 있었지만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3대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더 힘을 키우고 힘을 합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준 젊은이들

대통령님! 즐거운 소식이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던 젊은 세대들이 나라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문자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대통령님께서 일궈놓으신 정보화 기반을 바탕으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거 정치에 관심 갖는 것이 유치한 일이었다면 지금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개념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개념 없다'는 말은 '생각이 없다'는 뜻의 젊은이들 표현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작년 6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8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조문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의 서울광장 조문행사 불허, 장례식 조사를 정부가 반대한 것'등을 지적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8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조문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의 서울광장 조문행사 불허, 장례식 조사를 정부가 반대한 것'등을 지적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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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이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은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된다. 그리고 상당수는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도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반면) 반드시 지는 길이 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모든 사람이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한다."

이번에 우리 젊은이들은 대통령님의 유언과 같은 이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된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새겨들었습니다. 지난 6·2 지방선거 기간 동안 <이대로 가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할 것>이란 작년 대통령님 인터넷 연설 동영상을 무려 20만 명이 넘게 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대통령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대통령님! 며칠 전 밤 꿈속에 대통령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몸을 부축해 의자에 앉혀 드리고 왼쪽 종아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어 드리는 꿈이었습니다. 그 숱한 고난의 시절을 이겨내신 다리였지만 이제 가늘어져 뼈만 앙상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나 한참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기쁜 일이 참 많습니다. (이희호) 여사님께서 건강하십니다. 이번 6·15 기념행사를 주관하시고, 방송과 신문에 인터뷰도 하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셨던 자서전 <김대중자서전>이 다음 달 세상에 나옵니다. (저희는) 항상 여사님 잘 모시면서 대통령님의 뜻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시며 저희들을 지켜봐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으로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사)행동하는 양심 상임이사로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민주주의를 위하여.~, #6.15, #6.15남북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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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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