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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은 매주 점점 불어나고 있어. 불어나고 있어. 불어나고 있다고. 점점 더 섹시하지 않아. 섹시하지 않아. 섹시하지 않다고. 알겠어? 네가 임신한 건, 임신한 건, 임신한 건 더욱 분명해. 분명해. 분명하다고."

 

무슨 코미디에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대화다. 하지만 이 대화는 실제로 지난 3월, 뉴욕의 한 카페에서 있었던 고용주 남성과 피고용인 여성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다.

 

이 남성은 자기가 고용하고 있는 여성 바텐더가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게 되자 그 여성을 향해 마치 코미디 대사를 읊는 듯, 같은 말을 세 번씩 반복하면서 그 여성을 모욕했다.

 

만약 당신이 임신한 그 여성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용주 남성이 이런 발언을 흘리면서 당신의 목을 죄어오거나 은근히 해고 가능성을 내비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용주의 모욕을 그냥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치사하다고 여겨 그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올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고용주에 맞서 용감하게 한판 붙어볼 것인가. 만약 맞장을 뜨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스트립클럽 바텐더 제니퍼에게 무슨 일이?

 

제니퍼 파비글리아니티(29)는 올 초만 하더라도 뉴욕에 있는 남성 전용 클럽인 '카페 로얄'의 바텐더였다. 남성 전용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토플리스 걸이 접대를 하고 스트립쇼가 벌어지는 곳이다.

 

제니퍼가 임신을 한 것은 지난해 6월. 제니퍼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사장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다. 사장이 임신한 바텐더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이 되어서였다. 제니퍼는 몇 달 더 기다렸다가 나중에 출산 휴가를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사장도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사장으로부터 노골적인 압력이 들어왔다. 사장은 제니퍼의 외모가 영업에 방해가 될 것이고 클럽 분위기도 깰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장의 말이다.

 

"바텐더가 임신해서 섹시하게 보이지 않으면 손님들은 이곳을 찾아오지 않을 거야."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바(bar) 뒤에서 일하는 배불뚝이 여성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고. 그런 정도는 알만한 사람이."

 

결국 제니퍼는 임신했다고 자신을 쫓아내려는 사장에 적극 맞서기로 했다. 그래서 시도했던 것이 바로 사장의 모욕적인 발언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제니퍼는 곧장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남자친구로부터 빌린 디지털 녹음기를 자켓 앞주머니에 숨긴 채 사장의 말을 녹음한 것이다.  

 

기사 처음에 나오는 발언이 바로 '카페 로얄'의 사장인 존 닥시가 했던 말이다. 닥시 사장은 이 말을 할 때만 하더라도 제니퍼를 해고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제니퍼에게 직접 '해고'라는 말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연중 해고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가 자신의 발언을 녹음하고 그 테이프를 연방 기구인 '고용평등 기회위원회'(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 증거로 제출하면서 자신을 제소하자 태도를 바꿨다.

 

1965년에 설치된 EEOC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인종, 피부색, 국적, 종교, 성별, 나이, 장애와 관련된 차별, 또는 고용차별을 신고하거나 저항할 때 당할 수 있는 보복 등의 차별 행위를 조사하는 독립된 연방기구다. 피고용인은 자신이 당한 이러한 고용 차별에 대해 자신의 고용주를 EEOC에 제소할 수 있다.

 

 

"그녀는 해고된 게 아니고 자리이동 했을뿐"

 

임신한 사실이 드러난 뒤 '카페 로얄'의 바텐더였던 제니퍼에게 변화가 생겼다. 근무 시간이 줄어들었고 제니퍼가 일하던 시간대에 또 다른 바텐더가 채용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니퍼는 몇 주 동안 바텐더 스케줄을 못 받는 상황도 발생했다.

 

하지만 사장은 한 달 뒤, 제니퍼에게 다시 일자리를 주긴 했다. 원래 하던 바텐더 대신 캐시어 일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급여도 확 줄어 예전에 받던 바텐더 급여의 절반도 안 되었다. 결국 제니퍼는 변호사를 고용해 EEOC에 제소를 했고 고용주의 부당 행위를 법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닥시 사장은 "제니퍼는 해고된 것이 아니고 캐시어로 자리 이동을 한 것이다. 그녀가 임신을 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일자리가 주어졌을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직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인 로빈 본드는 CNN의 자매회사인 HL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종업원이 자신의 일자리에서 특별히 섹시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사장이 제니퍼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고용주의 권리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지노에서처럼 (카지노에서 일하는 섹시한 여성처럼) 그런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에 제니퍼가 문서로 동의했다면 제니퍼는 모델 같은 바텐더로 고용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제니퍼는 HLN과의 인터뷰에서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 잘한다며 9차례나 보너스 줄 땐 언제고

 

이렇게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기자는 이번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제니퍼를 접촉했다.

 

제니퍼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격려해줘서 고맙다. 묻는 질문에 얼마든지 답해줄 수 있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내용은 변호사를 통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러니 나를 이해해 주고 대신 언제든지 자유롭게 내 변호사 터크너씨와 연락해라. 그의 연락처는 womensrightsny.com에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제니퍼는 계류중인 현재 사건에 대해 침묵하겠다는 뜻을 밝혀 기자는 그녀의 변호사인 터크너씨와 5월 중에 통화를 했다.

 

잭 터크너 변호사(여성의 권리 뉴욕 닷컴 womensrightsny.com)는 직장내 성 차별이나, 임금 차별, 임신으로 인한 차별 등 차별 받는 여성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다. 그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두 딸의 아버지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터크너 변호사는 제니퍼의 바텐더 해고 사건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제니퍼가 일하고 있는 곳이 남성전용인 스트립쇼 카페라고 하지만 제니퍼는 댄서도 아니고 직접 손님을 접대하는 웨이트리스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제니퍼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병가 한 번 없었고 성실하게 근무했던 훌륭한 바텐더였다. 실제로 제니퍼는 '카페 로얄'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9차례나 보너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훌륭한 근무 평가를 받았던 제니퍼가 바텐더에서 캐시어로 강등된 것은 순전히 임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고용 평등'을 위반한 것이라는 게 터크너 변호사의 주장이다.   

 

한편, 이번 사건이 전국 방송을 타게 되고 여론의 관심을 모으게 된 데에는 제니퍼가 몰래 녹음했던 생생한 사장의 목소리도 한몫 했을 것이다. 기자는 이와 관련하여 터크너 변호사에게 이러한 녹음 행위가 불법이 아닌지를 물었다. 

 

"녹음기를 몰래 감추고 녹음을 하는 행위가 불법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주마다 다르다. 분명한 것은 이곳 뉴욕에서는 그것이 절대 불법은 아니다."

 

"부당"-"정당"... 성별에 따라 극명히 엇갈리는 견해

 

제니퍼 사건이 발생한 뒤 인터넷에서도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흥미로운 것은 성별에 따라 제니퍼 사건을 보는 견해가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여성] "나도 현재 임신중이다. 여성들이 임신하기 전에 고용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고용주로부터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는 바로 그 법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제니퍼가 이번 소송에서 꼭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성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이 일어나 '더 이상 차별은 안 돼!'라고 외쳐야 할 때다.(hlvn8r)"

 

[남성] "스트립클럽을 찾는 남성들은 섹시하고 날씬한 여성을 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바텐더에게 돈을 쓰는 게 아니고. 이런 곳에서 차별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만약 그녀가 임신한 상태에서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행동일 것이다.

 

임신했다고 해고를 하는 것은 비윤리적일지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그녀가 다시 섹시해질 때까지 다른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장의 행동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니다.(thurkey1)"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제니퍼. 그녀는 언젠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다. 지난 3월 6일에 엄마가 된 제니퍼의 페이스북에는 딸 루시 니콜의 귀여운 사진과 행복한 가족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기쁜 소식은 EEOC에 제소한 사건이 그녀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는 일일 것이다.


태그:#바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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