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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냐"는 인사를 하기 어려운 시절인 듯싶네요. 2008년에 방송된 MBC 휴먼다큐 <우리신비>의 아빠 신경호입니다. 이곳 일본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최근 이근행 PD님의 근황을 접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어려운 자리를 맡아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송은 공기와 같다고 말들을 하죠. 또 언론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고들 말들도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개인 개인이 언론의 중요함을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기회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론 정말 짧은 방송 덕분에 인생이 변했던 경험을 한터라 방송과 언론의 중요함을 다른 사람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08년 방영된 MBC 휴먼다큐 <우리신비> 중 한 장면. 이 다큐는 지난 5월 MBC 파업 당시, 재방송 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8년 방영된 MBC 휴먼다큐 <우리신비> 중 한 장면. 이 다큐는 지난 5월 MBC 파업 당시, 재방송 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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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비'를 말하는 게 아니고요. 어느 짧은 라디오 방송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7년이 더 되는 이야기인 듯싶네요. 제가 '망막색소변성'이란 질병으로 서서히 시각을 잃어갈 때 이야기입니다. 겨우겨우 읽을 수 있던 책을 어느 순간 도저히 읽을 수가 없게 되고, 확대경을 통해 들여다보던 활자를 도저히 읽을 수 없게 된 때였지요.

당시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저는 차마 죽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우 방구석에 틀어박혀 라디오를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침 6시부터 라디오를 틀어놓고 아니 밤새워 틀어놓던 라디오가 그 시간에 눈을 뜨면 들렸는지 모르겠네요. 새벽 2시가 넘게까지 라디오만으로 세상의 정보와 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울 시각장애인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들었지요. 단 30초도 안 되는 그 방송이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방송을 듣고 물어물어 그 복지관을 찾아 컴퓨터를 배우고 다시 인터넷을 하게 되고 다른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과 언론의 중요성, 이근행 PD 통해 알았습니다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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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구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리 짧은 방송이라도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저와 PD님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PD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이 벌써 2년 반을 넘어가네요.

"저는용 MBC의 이근행 PD라고 하는데용."

이렇게 처음 전화를 걸어와서 우리 가족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소개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아. 죄송합니다. 그때 걸려온 PD님의 목소리를 활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이상한 말투로 표현했지만, 그래도 이런 표현이 그 당시 PD님의 인상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내는 PD님의 제안에 한동안 고민했지요.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장애인을 '신파'로 다루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의 장애인, 누구나처럼 옆집에 같이 살고 있는 이웃의 모습으로의 장애인이 그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의 이런 제안에 PD님도 같은 생각이라며 함께 좋은 방송을 해보자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의 예쁜 '비'가 텔레비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었지요. 휴먼다큐 <우리신비> 방송 이후 PD님이 어느 매체와 인터뷰한 것을 보았습니다. PD님은 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신비네 엄마 아빠가 시각장애인이란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우리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실제 <우리신비>를 본 사람들이 PD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한 사람의 방송인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런 사람이 만드는 방송은 앞으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들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우리 신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도 작은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데 그 한 사람의 방송인이 해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올바른 언론을 만들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공정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밥 굶어가며 싸운 사람이 해고된다면 누가 앞으로 방송을 만들지 궁금합니다.

"방송 내용을 검열하자는 건 아니지요?"

MBC에서 휴먼다큐를 찍자고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제 주위 사람들이 많이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인간 다큐프로그램에 나왔던 시골 처녀가 텔레비전 출연한 덕에 멀쩡한 아버지가 살인을 당하고, 자신도 더 꼭꼭 산 속에 틀어 박혀 살아야 했던 것처럼, 방송이란 것이 원래 출연하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무언가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기 마련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휴먼다큐 <우리신비>는 무슨 내용?
MBC가 지난 2008년 가정의 달 특별기획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력이 전혀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이자, 한국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영미씨와 망막색소변성'으로 중도시각장애인이 된 신경호씨가 딸 신비를 낳아 기르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래서 제가 PD님께 두 가지 약속을 원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을 위한 연출은 안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방송 전에 반드시 우리에게 최종 편집본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많지는 않지만 한두 번의 언론 소개에서 우리도 몰랐던 내용이 알려져 당황했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PD님은 두 가지 약속 모두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셨고 또 지켜주셨습니다. 다만 두 번째 약속을 말하면서 PD님이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비 아빠 엄마가 방송의 내용을 검열하자는 것은 아니지요?"

검열이란 말, 방송이 누군가에 손에 장악되는 것에 대한 방송인의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4월 26일 단식을 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냥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빨리 파업이 끝나고 단식이 중단되기만을 바랐지요.

끝내 5월 7일에 병원으로 실려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고라니요? 그것도 전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 말이죠.

대한민국에 신새벽의 신비로운 여명이 태동하기를

MBC 파업 기간 중 이근행 PD님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에서 "김재철 사장은 참 나쁜사람입니다"라고 표현했더군요.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동조합 위원장은 투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PD님은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요.

그걸 보면서 저는 평범하고 고민하는 방송인이 노동조합 위원장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파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겠지요. 그런 이들을 내치다니, PD님의 표현대로 김재철 사장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너무 이야기가 무거운가요? 신비는 아주 잘 크고 있습니다. 이제 뛰어다니고 아빠 말을 무지 안 들어 매일 싸우고 있지요. 둘째도 태어났습니다. 둘째는 아들이지요. 벌써 8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누나와는 달리 몸도 크고 먹성도 엄청 좋습니다.

둘째 녀석에게는 '새벽'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신새벽. 어때요? 이름 멋지죠? 우리 신새벽과 신비의 이름처럼 MBC에 아니, 내가 사랑하는 내 조국 대한민국에 신새벽의 신비로운 여명이 태동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신비 아빠 올림.


태그:#이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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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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