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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이들과 어울려본 사람은 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한지를.

 

향토 유적 답사에서 아이들은 유적지보다 풀숲에 숨어 있다 날아가는 풀벌레에 더 관심이 많았고, 웅덩이에서 바글바글 헤엄치는 올챙이를 더 좋아했다. 답사 안내한다고 참가한 처음 본 중년 아저씨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팔짱도 끼고 턱수염도 만져보던 아이들. 그 모습 곁에서 지켜보던 후배가 한 마디 했지. 선배처럼 험상궂은 인상도 아이들에게는 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라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런 아이들과 38년을 살았다. 섬진강 물길처럼 재잘대며 낮은 곳으로 옮겨갈 줄 아는 아이들 곁에서 살았다. 살 내놓은 아이들이 튀는 햇살 차며 뛰노는 눈부신 모습에 감탄하면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유리창에 턱 괴고 앉아 격의 없이 활달하고 유쾌했던 하루를 돌아보면서.

 

시인 김용택이 38년 세월을 초등학교 교사로 생활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를 생생한 날 것으로 묶어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문학동네 펴냄)란 책을 펴냈다. 책 제목처럼 늘 아이들과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두 달이 넘도록 글쓰기를 한 번도 안 해오는 놈에게 화를 내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계속하는 아이들, 의자에서 일어나라고 해도 몇 번씩 반복해야 겨우 일어나는 아이들을 보면 입 안에 쓴 물이 고이고, 뭐라고 혼을 내도 그냥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는 아이들 앞에서 질리고, 야단 쳤다고 집에 가서 일러바치는 아이들 보며 참담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두 달 넘게 글 안 써온 녀석 혼낸 뒤 마음에 걸려 과자 나누어줄 때 덤으로 두 개 더 얹어주었다. 말 안 듣고 일러바치기 잘 하는 아이들을 만든 게 경쟁과 성적만을 강조하는 잘못된 교육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과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이른 봄길, 나는 꽃들을 따라다니며, 이 작은 생명들 곁에 엎드려 시를 썼습니다. 아니,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이 꽃들이 나를 불러 이렇게 저렇게 시를 쓰라 일러주었지요. 나는 다만 그들의 말을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봄이 되면 사람들이 눈을 들어 먼 산의 화려한 꽃을 찾는 동안 나는 이 작은 꽃들 앞에 절하듯 엎드립니다. (책 속에서)

 

사람들이 먼 곳의 화려한 꽃을 찾는 동안 시인은 들녘에 핀 작은 생명들 곁에 엎드려 시를 썼다. 시인이 시를 쓴 게 아니라, 작은 꽃들이 재잘대는 말을 받아 적었다. 사람들이 돈과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는 동안 시인은 몸을 낮추어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아무런 부러움도 어떤 불안도 없이 평온하게 마음을 비웠다. 그러자 아이들이 싱그러운 풀꽃이 되어 시인 곁으로 모여들어 재잘댔다. 아이들의 재잘대던 말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입 맞추다>란 제목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2010)


태그:#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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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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