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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에서 사퇴했다. 투표를 3일 남겨놓은 시점, 단일화가 아닌 일방적인 유시민 후보 지지 사퇴였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사퇴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가서 문을 에워쌌다. 진보신당 홈페이지는 배신자라며 심상정에 대한 탈당을 요구하는 비판으로 가득 차고 있다.

왜 그랬을까? 87년 대선부터 이어져온 "비판적 지지"의 압박에, 진보정치를 끝끝내 발목 잡아온 그 "단일화" 망령에 심상정이 굴복한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 누구보다 그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온갖 욕 다 먹어가며 민주노동당에서 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어온 그가 이를 간과했을 리 없다.

난 심상정이 "저는 지금 울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는,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그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 글에 담긴 두 단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속죄양"과 "용기"

철저하게 고립돼왔던 심상정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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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심상정은 힘들었다. 도지사 후보가 한 장짜리 공보물을 내보내야 했을 정도로 이미 재정은 바닥난 상태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유시민이 전국적인 이슈메이커가 되면서 민주당, 민주노동당과의 단일화를 성사해낼수록 심상정의 존재감은 약해졌고, 지지율 역시 약해지는 존재감에 비례했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했다. TV 토론에서 그는 "김문수 후보님, 유시민 후보님, 저는 두 분이 내려놓은 꿈을 짊어지고 30년 진보의 길을 걸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손가락 안에 드는 대선후보이자 삶이 곧 우리 '현대사'였던 김문수, 유시민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대한민국에서 심상정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점점 더 그녀의 목을 졸랐다. 평생 노동운동에 투신해왔던 심상정에게 민주노총은 유시민과 단일화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정책협약을 맺는 자리에는 유시민 만이 초대되었고, 심상정 선본은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종교계와 시민사회원로들은 선거가 본격화되자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한다며, MB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야권 단일화를 촉구했다. 노골적인 노회찬, 심상정 사퇴 압력이었다.

조희연, 박노자, 김규항 등 진보적 명망가들이 노회찬과 심상정의 완주가 진정한 미래 진보 정치의 씨앗이라 옹호했지만, 선거는 현실이었다. 이미 진보신당을 제외한 모든 야권 정치세력이 반MB연대의 틀 속에서 나름의 판을 짜놓은 상태에서 진보신당과 그 후보들은 철저히 고립되어있었다. 또한 진보신당 내부에서조차 지역별로 단일화에 대한 상이한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져버린 상태였다. 노회찬, 심상정에게 이제 이 선거는 득표율에 상관없이 완주자체가 목표인 선거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심상정은 힘들어서 사퇴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 걸 견디는 데는 그래도 이골이 난 사람"이란다. 동의한다. 만약 단일화의 압박이 힘들어서라면, 3일을 남겨놓고 사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였다면, 정치꾼인 그녀가 이렇게 아무런 '거래'도 없이 단순 '지지'를 표명하면서 당원들의 거센 저항 앞에 무방비로 나앉지 않았을 것이다.

'묻지마 반MB연대'에 온몸으로 저항한 사퇴

이번 선거에서 시끌벅적했던 반MB 연대의 파괴력은 미약했다. 민주노총까지 민주당을 밀어주는, 그야말로 '묻지마 반MB연대'였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천안함 국면이 아니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뚜렷한 비전과 대안 없이 그저 모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그러나 반MB 연대에서 거리를 둔 진보신당이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스타 정치인 노회찬의 지지율이 지상욱과 엇비슷한 것이 냉정한 현재의 모습이다.

심상정은 말한다. "선거운동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맞다. 떠밀려 내린 결정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득표율에 연연하지 않고 '독야청청'하겠다는 정신은 내부를 다지는 데에는 유용할진 몰라도 대중정당으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결기'만으로 선거를 하기에는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은 이제 너무 커졌고, 진보신당 역시 이번 지방자치 선거 결과에 책임져야 할 정치세력이 된 것이다.

심상정은 선택했다. 'MB 정권 심판'이라는, 현실 정치세력으로서 부정할 수만은 없는 요구 앞에서 자신이 '속죄양'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반MB'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당대표를 맡아 진보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노회찬은 지켜달라고 말하면서,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유시민의 당선을 위해서 사퇴한 것이다. 자신의 선거운동을 종료하면서 하는 사퇴와 지지다. 정치적이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 선택이다.

이제 그 누구도 선거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진보신당을 '분열주의'라 탓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반MB'라는 현실적 요구에 진보신당이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심상정은 자신과 진보신당을 압박해봤던 역사의 결결한 쇠사슬에 자신이 가진 진보정치의 지분을 걸고 '공세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유시민이 당선되면 심상정 때문에 당선되는 것이고, 지면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진 것이 되었다. 유시민의 당선 가능성 역시 심상정의 선택에 분명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야권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현 정권을 견제하는 유력한 수단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MB정권 심판'을 위해 심상정 후보가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한 30일 오후 범야권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경기도 분당 서현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하고 있다.
 'MB정권 심판'을 위해 심상정 후보가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한 30일 오후 범야권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경기도 분당 서현역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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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용기

2000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서 가시화된 진보정치의 독자적 세력화의 역사는 이제 만 10년이 넘어간다. 진보정치가 더 이상 선거 '완주' 만으로 그 의미를 평가받는, 즉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시대는 지났다. 진보정치는 이제 한국 정치판에서 나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행위자로서의 시야와 무게를 가져야 한다.

'반MB'가 가진 정치적 폭력성은 분명했다. 그 내부 협상이 깨지고 붙으면서 드러났던 모습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반MB와 분명하게 선을 그었던 진보신당 역시 대안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다. 진보신당의 유일한 선거 전략이 '16개 광역시도 전원출마'였고, 지금은 출마자 완주로서 그 전략이 이어지고 있는 빈곤함. 그 속에서 심상정은 자신의 지분을 걸고 마지막으로 선거판을 흔든 것이다.

심상정이라서 가능했던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을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동력으로 만드는 것 역시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진보정치를 감싸고 있는 협소함과 관성을 넘는 몸짓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녀가 남은 3일 선거운동을 하고, 일정한 득표율을 달성하고, 그렇게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를 마쳤다면 진보 정치인 심상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무난하게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퇴로 그녀는 백척간두 위로 자신을 세웠다. 스스로 속죄양이 됨으로서 꾀하고자 했던 진보의 혁신은 무엇일까?

유시민을 지지한다는 낙인을 스스로 이마에 찍으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심상정. 정치는 현실임을 그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품은 진심을 현실 '판'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 역시 '심상정'이기에 가능한 기대이다.


태그:#심상정, #진보신당, #반MB연대,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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