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이 나왔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이런 사설이 있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사설을 실은 신문이 어느 신문인지 알아 맞혀보기 바란다.

이게 어느 신문의 사설일까

'남북정상 만남이 중요하다'

"오늘 분단 55년만에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만난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대목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방지와 평화정착에 대한 공동선언이다. 남북 간에 이산가족 문제도 중요하고, 교류 협력도 필요하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는가이다"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며'

"한반도 분단 55년 만에 남한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예우는 정중했다... 평양에서 만난 양쪽 정상이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기'로 합의하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쪽 정상이 자주 만나야 하고, 당국자 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 등 현안을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사설이 <한겨레> 또는 <경향신문>의 사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조선일보> 사설이다. 특히 성서를 인용해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기'로 합의하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이룩될 수 있다"는 대목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동아일보><중앙일보>도 비슷한 논조의 '평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랬던 조중동이 그뒤, 그리고 지금 어떤 주장을 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구조를 허물면서 어떻게 무력 모험주의로 휘몰아가고 있는지, 독자 여러분들은 잘 알 것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때 1차 걸프 전쟁을 치르기 전 미국의 분위기, 아들 조지 부시 때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을 했을 때의 그 전쟁몰이 강경 분위기가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특히 언론의 전쟁 '북소리'가 그렇다.

이라크 침공 전, 미국의 <뉴욕 타임스>조차도 사설에서 "9·11 사태를 치른 뒤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려는 부시 대통령의 노력이 전혀 놀라운 게 아니며, 따라서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대응책이 부시 대통령의 우선적 정책이 될 것"이라고 부시를 지지하고 옹호했다. <뉴욕 타임스>가 이 정도였으니, 다른 보수 언론의 전쟁 북소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 정부가 선별적으로 유출하는 거짓되고 왜곡된 정보에 의해 당시 미국 언론은 그렇게 전쟁 북소리에 동조했으며, 결국 이라크 침공이라는 21세기의 '더러운 침략 전쟁'에 일조했다.

한반도에 불었던 전쟁 북소리

2008년 4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방문중 골프카트에 함께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2008년 4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방문중 골프카트에 함께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미국의 전쟁광들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에서 울린 전쟁의 북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1991년 11월, 당시 북한의 핵문제가 한창 시끄럽던 시절, 미국 하원에서 북한 핵문제 관련 청문회가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방부 국제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낸 리처드 펄은 이날 청문회에서 노골적으로 무력 공격을 주장했다.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1차 걸프전쟁 때도 개전 초기부터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바그다드까지 질풍노도처럼 밀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초강경 매파였다.

"경제·외교적 제재조처는 시간만 끌 뿐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무력사용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이날 청문회에서 리처드 펄이 이처럼 직설적으로 대북 무력공격을 주장한데 반해, 군사 공격을 정면에서 반대한 인물은 뜻밖에도 군인 출신인 존 위컴 전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은 현재 (한반도에 배치된) 대규모 군사력으로 보아 틀림없이 전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핵시설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결여와 암반이 많은 북한 지형의 특성상 지하 시설에 대해  기습 공격을 해도 성공을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이 우발적으로 북한의 핵분열 물질을 폭발시킬 경우 이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남한과 일본으로 흩어질 수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처럼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푸에블로호 사건 때도 그랬고, 북한 핵문제가 위기로 치달을 때마다 쏟아져 나왔다. 1968년 미국의 정보함인 푸에블로호가 납북되었을 때 당시 미국은 대북 무력보복 조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날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94년 7월 미국 워싱턴 주미 한국 대사관이 마련한 모임에서 연설을 했는데, 푸에블로호 사건과 관련하여 이런 회고를 했다.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일본에서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으로 일했다. 당시 나는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보복조처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 중앙정보국 요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내린 결론은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살해되지 않으면서 제2의 한국 전쟁이 터지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보복조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레그 대사는 25년 동안 미국 CIA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시간을 아시아 문제 전담으로 보냈다. 1973년부터 3년간은 CIA 한국 지부장을 지냈다. 79년 카터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CIA 파견 보좌관을 지냈고,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 1982년 중앙정보국을 사임한 뒤 조지 부시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되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레그는 90년대 초중반 북한 핵문제가 첨예하게 떠올랐을 때, 군사력을 통한 해결에 한사코 반대하고 화해·협력정책의 전도사처럼 활동했다. 그 이유는 푸에블로호 사건 때 경험한 대북 대응책의 현실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백했다. 그 현실과 한계는 바로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이었고,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간인 출신은 무력사용 옹호하고, 군 출신은 반대하고

북한 정권이 예뻐서가 아니라, 이런 '현실적 한계' 때문에 화해·협력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이들이 미국 행정부 내에도 적지 않았다. 강경 매파들이 자리잡고 있는 국방부와 CIA 쪽은 달랐지만 국무부 인사들은 다수가 비둘기파였다. 그레그 대사뿐 아니라 90년대 초, 북미간 대화가 거의 없던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리차드 솔로몬, 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 낸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협상 대표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1994년 북한과의 핵협상을 주도했던 로버트 갈루치 대사는 북미 기본합의서가 최선은 아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킨 차선책은 분명하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⑴북한이 핵을 개발하건 말건 그냥 내버려둔다 ⑵군사력으로 핵시설을 파괴해 버린다 ⑶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푼다 등 세 가지 접근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 방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군사적 해결은 한반도에 전면전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과 협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으며, 이 경우 차선책으로 외교적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쟁 발생하면 남쪽 1백만 사망, 경제피해 1조 달러"

지난 27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북한응징 결의 국민대회'에 한 참가자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친북좌파 척결과 보복·응징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북한응징 결의 국민대회'에 한 참가자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친북좌파 척결과 보복·응징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실제 미국은 90년대 중반 진지하게 대북한 군사작전을 검토했으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생하게 되며, 그 결과 '가공할 만한' '천문학적'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5년 4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이 실제 94년 북한 핵위기 때 미국은 수십만 명의 미군을 동원하는 등 대북 군사력 사용을 검토하고, 수차례 모의공습 실험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군사력 사용을 중단하고 외교협상으로 간 결정적 이유가 '엄청난 피해'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한반도 전쟁상황에 대비한 전략을 수립했던 게리 럭 주한 미군사령관은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면, 8만~10만 명에 이르는 미군의 인명피해를 포함해 모두 1백만 명의 남쪽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또 인명피해 이외에 경제적 피해만도 모두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해 북한을 군사적 대립으로 몰아가는 방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보였다는 것이다.

1996년 5월 리처드 마이어스 주일 미군사령관도 퇴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전쟁이 발발할 경우 '천문학적인' 인명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적 모험이 어떤 피해를 가져오는지, 그래서 그것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주한 미군 사령관을 지낸 존 위컴이나 미국 CIA에 오래 몸담은 그레그 전 대사처럼 군 경험이나 군사 정보가 풍부한 인물들이었다. 반면에 대북 군사 조처를 강력하게 주장한 이들은 리처드 펄과 같은 민간인 출신이었다.

리차드 펄은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국 국방장관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복귀했고, 그의 절친한 친구인 폴 월포비츠가 국방부 부장관으로, 그의 충직한 부하였던 더글러스 페이스가 국방부 차관으로 함께 국방부를 '접수'했는데 모두가 강경매파들이었다. 이들 위에는 '냉전의 전사들'로 알려진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이 포진해 있었으니,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들 초강경 매파들과 냉전의 전사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군 경력이 없는 '민간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현역이 아닌 '주 방위군'을 의혹과 잡음 속에 마친 인물이고, 딕 체니, 럼스펠드 등도 죄다 '민간인 출신'이었다. 오히려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작전에 거부감을 나타냈던 인물은 미 합참의장을 지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었다.

미국의 강경매파들이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면서 군사적 대응을 요구하는 것과 한반도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미국의 매파들이 전쟁을 한판 벌이자고 하는 곳은 미국과는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먼 땅의 이야기일 뿐, 그들 영토와 국가 안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미국 바로 이웃인 캐나다에서 전쟁의 위험이 있는 모험이 감행된다면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무력 사용을 주장하지는 않았을 터다. 이라크건, 아프간이건, 한반도이건, 미국 본토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는 머나먼 땅이기에 그들은 무력사용의 전쟁 북소리를 마구 내질러도 되었다.

정권과 언론의 독선과 오만, 모험주의... 그 엄청난 업보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호국추모실 복도 양 옆으로는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놓여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호국추모실 복도 양 옆으로는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놓여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바로 우리의 땅, 이 한반도에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목숨과 운명, 그동안 이룩해 놓은 것들을 파괴해 버리게 되는 전쟁 모험과 그런 위험을 불러 올 수 있는 군사적 대응을 이야기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권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모험주의에 가까운 대북 강경몰이를 하고 있다. 이 모험주의의 근거와 지향점, 그리고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언젠가 밝혀질 터이지만, 단기적 정치 목적으로 그러했다면 그 책임은 엄중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 기소,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명의 파괴, 민주주의 후퇴만으로도 이미 역사에 저지른 죄가 적지 아니한데, 이에 더하여 한반도 평화를 걸고 모험주의로 정치적 이익을 노렸다고 한다면 그 무거운 책임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역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선명하게 보인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죄다 옳다는 독선, 정권이 마치 무한한 것처럼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눈감아 주면서 그들의 가장 절친한 우군이 되어 있는 대부분의 한국 언론, 그들에게 내려지는 역사의 채찍은 매서울 것이다. 쌓은 업보가 너무 무겁고 크다.


태그:#정연주, #이명박, #조지 부시, #전쟁의 북소리, #대북 강경몰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