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유신 이후 산업·문화·국제 금융도시로서 뉴욕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쥐락펴락하는 제국 일본의 수도, 도쿄. 아름다운 불교사원 보다 군부의 정치개입 청산을 요구하는 유혈 도시항쟁으로 더 잘 알려진 태국의 수도, 방콕.

그런데, 이 도쿄와 방콕의 거리가 20cm에 불과하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본 지도상의 거리입니다. 채 20cm도 안 되는 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제국 일본과 개도국 태국 간에 밀무역이 벌어집니다. 대상은 태국 소년소녀들의 성과 신체 장기. 일본과 유럽의 부자 고객들에게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원으로 팔리거나 싱싱한 횟감마냥 해체되어 넘겨집니다. 

영화의 헤드 카피가 '당신은 이 영화를 마주할 용기가 있습니까'인 이유입니다. 제국의 끝없는 탐욕과 개도국의 부패고리 사이에서 성 착취와 장기밀매로 남는 것은 에이즈와 폐기처분된 아이들의 시신뿐 임을 고발하는 실화 <어둠의 아이들>입니다.

소처럼 해체되는 아이들의 육신과 영혼

 미국인이 매음굴 유치장에 갇힌 아이들 중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한 명씩을 데리고 일어서고 있다.
ⓒ (주)씨에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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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태국 국경 산악지대의 곤궁한 마을에서 어린 소녀 센라가 낯선 남자에게 팔려 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녀가 도착한 곳은 인신매매조직이 어린 아이들을 유치장에 가둬둔 채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매춘을 시키는 사창가. 그곳에선 극비리에 어린 소년소녀들의 장기까지 밀매하고 있습니다.

태국 주재 일본신문 기자 난부(에구치 요스케)는 일본에서는 금지된 아동 장기 이식수술이 태국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접하고 본사에 취재 지원을 요청합니다. 취재를 통해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는 수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를 마취한 뒤 심장을 몸에서 떼어내 이식하는 수술이었습니다.

방콕 아동인권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신참내기 인권운동가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는 난부를 통해 아동 매춘과 장기밀매 실태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난부는 케이코와 아동인권센터의 지원 속에 사고뭉치 프리랜서 사진작가 요다(츠마부키 사토시)와 함께 끔찍한 장기밀매의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취재에 나섭니다. 

영화는 세 지점을 교차해 가면서 도쿄로 상징되는 제국과 방콕 사이의 '어둠의 루트'를 난부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탐욕의 봉인이 풀린 뒤 드러나는 추악한 모습이 어떤 먹이사슬을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지를 차곡차곡 기록해 갑니다. 그리고 마치 소처럼 버릴 것 하나 없이 해체되어 이곳저곳으로 팔리는 아이들의 육신과 영혼을 두 눈 부릅뜨고 대면할 것을 요구합니다.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아이들

 에이즈에 걸리자 인신매매조직이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하치장에 버린 소녀가 봉지를 찢으면서 기어 나오고 있다.
ⓒ (주)씨에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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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에서 에이즈에 걸려 쓰러졌던 소녀는 이윽고 비닐봉지에 쌓인 채 쓰레기하치장에 버려집니다. 성 매매도 장기밀매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품가치가 끝난 것입니다. 소녀는 스스로 비닐봉지를 찢고 기어 나와 우여곡절 끝에 고향 집을 찾아가지만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이내 숨지고 맙니다.

뿐만 아닙니다. '로리타'로 불리는 아동 포르노 촬영을 위해 가방에 숨겨진 채 모텔로 옮겨지는 소녀에, 호르몬제를 과다하게 투약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소년에, 탈출을 기도했다 초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소년에, 변태적인 미국인 남녀에게 학대받는 소년과 소녀 등 아이들은 오직 어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제물로 전락합니다.

그 와중에 인권센터에서 수업을 받던 아란야에게서 다급한 구조요청이 옵니다. 치앙마이에서 강제로 매춘을 당하고 있다는 것. 케이코는 필사적으로 소녀를 구출하려 애쓰지만 부모마저도 외면하는 가혹한 현실. 아란야는 몇 십만 원에 인신매매조직에 팔려간 것입니다. 급기야 아란야마저 에이즈에 감염된 채 비닐봉지에 버려져 쓰레기장으로 가지만 중간에 차를 탈취해 간신히 생명을 구합니다.

손톱 끝에 촘촘히 박힌 가난 때문에, 가족을 굶기지 않는 8살이 되어서, 일본과 미국과 태국을 잇는 탐욕과 욕망에 의해서 어린 생명들은 가격표가 붙은 다용도 소모품처럼 무참하게 꺾여갑니다.  

산 채로 장기를 도려내다

세미다큐멘터리보다는 사회고발 르포에 가까운 <어둠의 아이들>은 관객들에게 절망에 가까운 곤혹스러움을 안깁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참혹하고 어두운 현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눈 뜨고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눈을 감거나 돌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탈색되거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참혹한 어둠은 그 영역을 확장합니다. 매음굴에서 살아남는 아이 중 건강한 아이들은 장기밀매의 희생양으로 선택됩니다. 소녀의 심장을 사려는 곳은 일본. '가해자의 나라'에서 온 케이코는 난부와 함께 도쿄로 돌아와 방콕에서 심장 수술을 받기로 한 아이의 집을 수소문 끝에 찾아 갑니다.

케이코의 절규에 가까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보모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할 것이라며 거부합니다. 방콕에서 난부가 장기밀매 현장 사진을 채증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 아동인권센터의 사무장이 살해되고, 그 역시 조직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인신매매조직에 36만원에 팔린 센라가 산 채로 심장을 이식해 주기 위해 병원에 도착한 뒤 난부와 눈이 맞주치차 쳐다보고 있다.
ⓒ (주)씨에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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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와 함께 공항에서부터 일본인들을 뒤쫓던 난부는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센라를 봅니다.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예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이 퍼집니다. 깊은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냥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이 난부의 두 눈과 스치듯 짧게 마주칩니다. 그리고 소녀는 산 채로 장기를 도려내는 수술대 위를 향해 또박또박 걸어갑니다.

아이들의 성과 장기까지 착취해 가는 제국의 얼굴   

2010년 6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4년간 갈고 닦은 꿈을 이루기 위해 지구촌이 들끓는 함성으로 하나 되는 날, 휘슬 소리와 함께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가 푸른 창공을 가릅니다. 자블라니의 제작사는 아디다스. 아디다스 등 전 세계 유명브랜드 축구공의 75%는 파키스탄의 5~13살의 아이들이 꼬박 12시간씩 바느질한 손끝에서 만들어집니다.   

매년 2월 14일.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은 감미롭습니다. 하지만 초콜릿의 주원료인 이 코코아를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아이보리코스트에서는 매년 1만 명 내외의 아이들이 인신매매를 당한 뒤 코코아 농장으로 팔려가 하루 15시간 이상 강제노동에 갑니다.

하루 종일 바느질 하느라 손가락 기형과 허리 디스크로 고통 받는 파키스탄 아이들과 굶주림과 각종 질병으로 숨져가는 아이보리코스트 아이들의 꿈은 뭘까요? "단 하루만이라도 일하지 않고 놀아 보는 것"입니다.

 에이즈에 걸린 소녀가 가까스로 고향에 도착해 움막에 격리 수용된 뒤 곧 숨지자 엄마가 통곡하는 사이 아버지가 화장을 하고 있다.
ⓒ (주)씨에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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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국의 신자유주의가 개도국과 제3세계의 어느 곳까지 착취하고 학대하는지를 <어둠의 아이들>은 '잘 사는 제국'에서 온 희고 거대한 비곗덩어리가 남긴 에이즈에 감염된 소녀가 고향의 부모 곁에서 화장당하는 장면을 통해 상징처럼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똑똑히 묻습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라고.

영화는 다시 묻습니다. 추악한 혓바닥에 유린당한 아이들의 몸뚱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심장과 장기들이 분리된 몸뚱이는 마약을 담는 가방으로 변신해 국경과 도시를 넘나들며 운반책 노릇을 합니다. 안구는 유럽 등지의 연구소로 팔려갑니다. 그 끝자락에서 영화는 난부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려칩니다.

그리고 마치 관자놀이를 향해 무딘 못을 꽂듯 질문을 던집니다. "어설프게 변명하려거나 속죄하지 않고 난부처럼 죽을 용기가 있냐"고.

그것은 우리가 5만 원짜리 달콤한 초콜릿에 취해 있을 때나 15만 원짜리 자블라니를 차고 놀 때, 고작 애완견 한 마리 가격인 36만원에 어린 아이의 몸이 해체되는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아동 착취와 폭력의 연쇄고리를 언제 끊어 낼 것인지 우리 모두가 응답해야 할 '불편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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