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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집무공간이다
▲ 양화당 인조의 집무공간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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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조씨가 양화당을 찾아왔다. 임금이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거나 대소신료들과 국사를 논하는 지엄한 장소에 후궁이 방문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전을 경덕궁으로 내쫓고 왕비의 침전 통명전을 차지하고 있는 소의 조씨만이 할 수 있는 당돌한 행동이다.

"전하! 강씨가 몰래 아이를 낳아 궐 밖으로 내보냈다 합니다."
"뭐야, 아이를 궐 밖으로..."

인조는 경악했다. 강빈이 아이를 낳았다면 죄인이 출산한 것이다. 죄인이 임신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낭패다. 죄인이 누구인가? 자신의 며느리다. 아이가 사내라면 자신의 손자다. 왕손이 태어난 것이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국채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다. 소현의 아들 석철, 석견, 석린을 잘 요리하면 봉림대군으로 기운 법통을 완벽하게 세울 수 있는데 자신도 모르는 혈손이 궁 밖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국채의 근간이 흔들린다.

세자빈에게 죄를 물어 물고를 내야합니다

"이는 하늘을 속이고 전하를 속인 것 입니다."
"강씨의 발칙한 짓이 어제 오늘이 아니었거늘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인조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앙큼한 강씨에게 죄를 물으소서."
"으음."

임금이 신음을 토해냈다.

"강씨를 당장 물고를 내야 합니다."
"치죄가 문제가 아니라 증좌가 문제다."
"증거는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전하!"

찾다 못 찾으면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표정이다.

"강씨가 아이를 낳아 궐 밖으로 내보냈다는 말만 있을 뿐, 물증이 없지를 않느냐?"

인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첩이 조사하여 증거를 찾아내겠습니다."
"지난번 옥사에서도 강씨의 시종들이 자복하지 않아 실패했는데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전하! 심려를 놓으십시오. 이번에는 꼭 해내겠습니다."
"정말이냐?"
"네, 믿어 주십시오."

절치부심 때를 기다리고 있던 소의 조씨다. 지난번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완강히 버티는 동궁전 궁녀들 때문에 망신당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처리하리라 다짐했다.

"좋다. 너를 한번 믿어보겠다."
"망극하옵니다."

이튿날, 궁궐에 비상이 걸렸다. 소의 조씨의 부름을 받은 내수사 관리들이 후궁전으로 속속 집결했다. 전수(典需)와 전화(典貨)직을 겸하고 있는 내관을 비롯하여 별좌(別坐)·부전수(副典需)·별제(別提)·전회(典會)·전곡(典穀) 등 등 간부들이 망라되었다.

나라의 아문을 사라사욕에 악용하는 후궁

내수사(內需司)는 궁중 살림을 맡아보는 아문이다.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왕실 토지를 관리했으며 수많은 궁녀와 노비를 지휘 감독했다. 공장(工匠)과 옹장(甕匠)·야장(冶匠)을 두어 왕실 물품을 조달했다. 많은 재화와 인력을 관리하다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때문에 별도의 감옥을 운영했다. 내사옥(內司獄)이다.

내옥(內獄)에는 국가의 법률을 적용하기 앞서 형신과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궁(宮) 내부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특수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의 조씨다. 내수사의 우두머리인 전수(典需)를 자신의 수하로 장악한 소의 조씨는 내사옥을 자신의 사옥(私獄)처럼 사용했다

"후원 별당에 유폐되어 있는 죄인이 아이를 낳아 궐 밖으로 내보냈다 한다. 이는 국채와 강상에 관한 일이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루자를 심문하여 전하께 공초를 올리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 알겠느냐?"
"네,"
"죄인을 다룰 때는 옹기 만지듯 해야 하며 형신을 가하되 죽이지 않고 자복을 받아내야 한다. 부득이 죄인을 죽였을 때는 너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튿날, 여명과 함께 내수사 관원들의 발바닥에 불이 불었다. 후궁전 내관들이 궁궐을 휘젓고 다니며 동궁전 나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순간 동궐은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소의 조씨의 명을 받은 내사옥 도사가 여승 혜영을 잡아 오기 위해 철원 보개산으로 떠났다. 텅 비어있던 옥(獄)도 손질했다. 먼저 형란이 붙잡혀 왔다.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는 내관

"네가 보개산 비구니를 데려왔느냐?"

전수(典需)를 겸하고 있는 내관이 머리를 산발한 채 형틀에 묶여있는 형란에게 물었다.

"네."
"누가 데려오라 했느냐?"
"세자빈 마마의 명을 받고 모셔왔습니다."
"마마는 무슨 얼어 죽을 마마냐? 네가 마마라고 부르는 강씨는 죄를 얻은 죄인이다. 다시 한 번 그 따위 말버릇을 하면 혀를 뽑아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알겠느냐?"

내관이 눈알을 부라렸다.

"네."

겁에 질린 형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대궐을 어떻게 빠져 나갔느냐?"
"동궁전 내관 종일이 도와주어 나갔습니다."

형란이 순순히 대답했다.

"나종일을 잡아오라."

내관의 명에 따라 별제가 내사옥 형졸들을 이끌고 튀어나갔다.

"어디로 나갔느냐?"
"북문을 통하여 청풍암문으로 나갔습니다."
"북문과 청풍암문 수문장을 데려와라."

형란의 입에서 거명된 자는 모조리 체포령이 떨어졌다. 소의 조씨의 비호를 받고 있는 내수사 내관은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렀다. 법위에 후궁전이 있었고 어명 앞에 소의 조씨의 명이 있었다.

살아있는 왕손을 내보냈을까?

"혜영을 데려와서 어떻게 했느냐?"
"곧바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갈 때 강씨가 무엇을 주었느냐?
"마마께서 보자기로 싸서 묶은 상자 하나를 내주시면서 혜영에게 전해 주라고 하기에 저희들은 전해 주기만 했을 뿐입니다."

"이 년이 마마소리하면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마마냐? 이봐라! 이년의 혀를 뽑아 버려라."

장정들이 달려들어 형란을 에워쌌다.

"사~살려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형란이 몸부림치며 애걸했다.

"이번 한 번만 봐준다. 그 대신 묻는 말에 바른대로 대답해야 한다."
"네."

형란이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자 크기가 얼마나 되었느냐?"
"길이가 한 자(尺) 남짓 되었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느냐?"
"모릅니다."
"아기가 들어 있었지?"

내관의 눈이 개구리를 노리는 뱀의 눈처럼 번득였다.

덧붙이는 글 | 공장(工匠)-왕실과 왕족의 생활용품과 장식품을 만드는 장인
옹장(甕匠)-왕실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 사옹원에서 관요를 관리했으나 왕과 왕후, 왕자와 공주 등 임금 직계가 사용할 도자기는 경옹장을 파견하여 특별히 제작했다.
야장(冶匠)-금, 은, 공예품을 만들었던 왕실 공방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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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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