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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면서 일하라

 

 오색 주전골 개울의 돌탑

오래 전, 그때까지 미련스럽게 글을 그것도 꼭 만년필로 원고지에 쓰고 있는 나에게 한 친구가 충고를 했다.

 

"아직도 글을 만년필로 쓰니? 워드로 써봐 얼마나 편리하고 시간도 단축되는데…."

 

그 말을 듣고도 내 고집을 피우다가 학교의 학생활기록부가 모두 전산 처리되고 출판사나 원고를 청탁하는 잡지사에서 원고를 파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는데 그새 20년이 지난 이제는 컴퓨터 자판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기계문명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지난 겨울부터 이런저런 원고를 쓴다고 쉬지 않고 거의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은 책을 보거나 컴퓨터 스크린에서 검색을 하거나 자판을 두들겼다.

 

이즈음 며칠은 그 이상 무리를 했더니 마침내 그제 아침 일어나니 왼쪽 눈알이 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그냥 하루 쉬면 낫겠지 하고서는 목욕탕에 가서 몸을 담근 뒤 이발을 하는데 이발사가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렇게 내버려두느냐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그 길로 몇 차례 갔던 단골 안과로 갔다.

 

"또 무리를 하셨군요. 좀 쉬어 가면서 일하세요."

 

병원에서 주사 한 대와 처방전을 주기에 약국에서 약을 사 집으로 돌아온 뒤 안약은 눈에 넣고 알약은 먹었다. 하룻밤 자고 나니 약효 탓으로 충혈이 다소 가라앉았다. 집에 있으면 컴퓨터를 켜고 또 원고를 두드릴 것 같아 오랜만에 찾아온 아이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은 뒤 그들이 서울로 돌아가는 배웅도 않고 카메라를 메고 남설악 오색을 머릿속에 그리며 원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주전골로 가다

 

오색약수 오색약수는 위장병, 신경통 등 각종 질병에효험이 있다고 한다

집을 나설 때는 강릉을 거쳐 양양으로 가서 오색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표 파는 아가씨가 강릉 가는 버스가 금세 떠나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마침 홍천행 버스가 곧장 있기에 애초 여정을 역순으로 하여 신록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여행코스도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물이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그날 차 형편대로 거리낌 없이 다니는 여행이 즐겁지 아니한가.

 

홍천 시외버스에 내린 뒤 매표소에서 오색까지 차표를 끊고는 약간 갈등을 느꼈다. 먼저 한계령 정상에 내려 거기서 신록을 카메라에 담은 뒤 차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다음 차로 오색으로 가는 게 좋을 듯했다. 한계령을 넘는 버스는 30분에 한 대 꼴이라고 하지 않는가.

 

표 파는 아가씨에게 오색 표를 한계령 표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차표와 거스름돈 일천 원을 덤으로 건넸다. 버스가 원통을 지나 한계령을 오르는데 부연 안개와 함께 비를 뿌렸다. 집을 나설 때는 쾌청한 날씨라 우장도 챙기지 않았는데…. 기사에게 사정을 말하자 내가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리라고 편케 해줘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 접어들자 안개도 걷히고 빗줄기도 매우 가늘어졌다.

 

다람쥐 오색주전골의 주인인 다람쥐가 환영 인사를 하다

그래 거기서 내린 뒤 발길에 익은 주전골 계곡으로 곧장 산행 길에 나섰다. 그때까지 점심 전이라 계곡 들머리 한 밥집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는 오색약수터에서 약수 한 쪽바가지를 들이켰다.

 

오색약수는 언제 마셔도 탄산성분이 강해 사이다를 마신 듯 탁 쏘는 맛이 있다. 아무리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안내판에는 씌어있지만  어찌 미련스럽게 과음을 하랴. 약은 원래 귀하게 조금 먹을 때 효험이 있는 것이다.

 

주전골 계곡은 사시사철 다 좋다. 가을의 단풍도, 겨울의 눈경치도, 여름은 녹음도 좋다. 이래저래 기억을 더듬어보니 신록의 계절은 처음인 것 같다. 계곡 들머리의 산목련이 활짝 핀 채 수줍게 맞아준다. 몇 발자국 떼어놓자 이번에는 다람쥐 길섶에서 뭐라고 인사를 한다. 셔터를 누르자 겁을 먹었는지 후딱 사라져 버린다.

 

산목련 산목련이 수줍게 맞다

 

불심을 만나다

 

지난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올봄 내도록 비가 잦은 탓으로 개울물이 여름 장마철처럼 수량이 많았다. 국토를 순례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참 아름다운 강산이다. 그야말로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다운 내 조국 강산이다.

 

주전골 계곡(1) 오색주전골에 신록이 우거지다

이런 조국 강산을 지난 세기 36년 동안 일본에게 빼앗기고, 그 후유증으로 국토는 반쪽이 난 채 아직도 제 백성들은 마음대로 오도 가도 못하고 이즈음은 그나마 뚫린 길도 다시 막고 있으니 어찌 제 정신을 가진 지도자들인가.

 

산을 오를수록 기암괴석들이 앞과 뒤 좌우에서 반겨 맞는다. 독좌암, 병풍바위라고 했다. 조금 더 오르니 선녀탕이다. 금강굴 돌문을 지난 개울 옆 바위 위에 돌로 탑을 쌓아두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돌탑을 쌓았을까? 아마 불심(佛心)이었을 것이다. 불심이란 천지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일 게다. 이 돌탑을 쌓은 이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내 조국 국토에 대한 사랑을 돌무더기에 담았을 것이다. 나는 돌탑에 묵념을 드린 뒤 카메라에 담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속에 불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저잣거리에서 많은 사람에 부딪치면 불심은 사라지고 사악해지는가 보다.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용소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본 뒤 폭포 위에 올라 잠깐 비친 햇살 사이로 싱그러운 신록의 잔치를 마음껏 즐긴 뒤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산을 내려왔다.

 

주전골 계곡(2) 선녀탕

 

"단순 소박한 삶을 살라"

 

양양을 거쳐 주문진에서 생선구이로 저녁밥을 먹고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심야버스 막차밖에 없다고 한다. 그 차를 타고 집에 이르자 자정 전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좋은 신록여행이었다고 그날 여정을 얘기하자 아내가 한 마디 했다.

 

"그렇게 신록이 좋은 데 계곡에서 하룻밤 자고 올 것이지 집에 무슨 꿀단지가 있어 늦은 밤에 오셨소?"

 

"당신이 꿀단지잖소"라고 답을 하려다 대구를 않고는 이를 닦고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소지품을 점검하는데 전화번호를 잔뜩 적은 수첩을 어디에서 빠트렸다. 아마도 새로 수첩을 만들면서 그동안 연을 맺었던 사람을 더 정리하라는 계시인가 보다.

 

주전골 계곡(3) 신록에 파묻힌 주전골 계곡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언저리를 하나 둘 정리해야 된다고. 그동안 연을 맺은 지인들을 수첩에 잔뜩 적어놓고 일년에 한두 번도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제 새 수첩에는 기록치 말아야겠다고.

 

언젠가 한 스님이 나에게 일깨워 주셨다.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앞선 삶이라"고. 

 

주전골 계곡(4) 용소폭포
 
 
주전골 계곡(5) 주전골 계곡의 신록

 
주전골 계곡(6) 신록에 뒤덮인 오색 주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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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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