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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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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30년대에 출생한 70대다. 왜정 때 태어나 해방도 맞았고 6.25도 겪었으며 6.25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모두 공산당에 의해 학살당하셨다. 나를 포함해서 자식들 모두 군대 가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해 군대도 다 다녀왔다. 그러니 나는 격동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살아 온 보통 국민인 셈이다.

나는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한 일련의 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의 발표와 연일 쏟아지는 대통령과 정부의 성명, 여야의 각종 논평을 보다가 평범하고 소심한 보통 국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즉각 이것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작년 11월 '대청해전'에서 패전한 북한의 보복 공언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경비정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자 우리 군이 즉시 물러가라고 경고한 후 위협사격을 가하고, 북한이 응사하면서 벌어진 교전에서 북한군을 다수 사상케 하였고 군함에는 격침 수준의 최대 피해를 줬다는 것이 당시의 승전보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 우리 군의 새로운 교전규칙이 영 마음에 걸렸다. 제 1, 2차 연평해전 당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행해지던 복잡한 5단계 교전규칙을 '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하였고, 군의 신속한 대응을 위하여 지휘관의 재량권을 한층 강화하였던 것이 당시 해전의 주요 승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은 누가 보아도 확전 결의, 즉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의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교전규칙을 격상시켜 공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우리 군의 대응이 의외라는 듯 격렬한 보복을 다짐하고 나섰다.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인데 우리라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북한이 격렬한 보복을 다짐하고 나서는데도 우리 국가는 축제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장교들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비롯하여 화랑·인헌 등 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이에 덧붙여 언론은 국민의 열화 같은 칭송을 이끌어냈다. 마치 이런 일은 많을수록 좋고 앞으로 더 자주, 더 열심히 하라는 부추김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 특히 북한의 보복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분위기가 심약한 소시민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북한 소행으로 단정했던 나, 점점 불안해졌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민을 향해 북한이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는 폭력집단이라고 계속 교육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그 북한을 상대로 멸시에 가까운 모욕과 수치스런 패배를 안기고, 강도 높은 압박을 계속 행사하고 있으니 그것은 북한을 고양이 앞의 쥐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분명하다. 이 오만함, 도대체 우리 정권과 군이 가지고 있는 이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한 북한의 도발은 절대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자신의 진정한 국방 능력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게 아니고 싸워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면 그건 광증이거나 망발이 분명하다.

우리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군 부대 안에는 "見敵必殺"(견적필살, 적은 보는 대로 죽여라!)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전쟁은 어차피 죽고살기식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설사 승리한다 해도 폐허 위의 승리가 무슨 영광이겠는가. 변수가 많아 승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고,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리 군은 대청해전 후 북한의 보복이 전쟁까지 가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작은 보복이라도 그 피해 대상은 훈장 받은 장교가 아닌 일반 국민이거나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사병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은 아예 배제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라.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 46명이 생죽음을 당했고(이 중엔 장교가 한 명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조사과정에서 10여 명의 피해자까지 생겼다. 인적 피해만 해도 이런데 기타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얼마던가.

천안함 사태 중에 나는 반년 전의 자신있고 늠름한 무공훈장의 얼굴과 떠들썩하던 승전 환희 분위기를, 흐느끼는 천안함 희생자들의 가족 얼굴 위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아들이 하나인 가정이 많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멸문지화라고 할 정도의 처지에 놓인 가족까지 있을 터이니, 그 슬픔은 결코 과장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범이라는 나의 단정은 조사가 진행되면서 곧바로 벽에 부딛혔다. 도무지 그 침투경로나 폭파방법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사주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가적 재앙을 자초한 당사자들에게 '너희들이 책임이 없다는 것을 네 스스로 증명하라'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들이 자신의 경계소홀의 책임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온갖 것을 군사비밀이라고 감추는 조사단이 조사기간 내내 군대를 안 간 대통령을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더욱 불쾌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전군지휘관회의를 소집해 군기를 잡았겠는가.

현인택 통일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안보리 회부·북한 선박의 남측해역 운항 전면 불허·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남측 인력 방북 불허·남북교역 중단·한미연합잠수함 훈련·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 강경 조치를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안보리 회부·북한 선박의 남측해역 운항 전면 불허·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남측 인력 방북 불허·남북교역 중단·한미연합잠수함 훈련·심리전 재개 등의 대북 강경 조치를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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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개념은 계층마다 다름을 절감했다

날이 갈수록 북한을 주범으로 단정한 나의 성급함이 후회되었고 마지막에는 차라리 좌초이거나 피로파괴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래야만 안심하고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다는 북한이 최정예 이지스함이 두 대나 버티고 있고 십여 척의 정예군함들이 늘어서 합동훈련을 벌이고 있는 세계 최강 해군의 면전에서 군함을 폭파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그 신출귀몰한 침투술 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겠는가. 

그러나 우리 군은 북한의 침투경로는 밝히지 못하면서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끌어냈고, 대통령도 군의 손을 들어주면서 북한에 대한 온갖 강도 높은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국방 개념은 계층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국민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생명과 생업의 보장을 국방의 절대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해, 일부 계층에서는 국방이라는 국가요건을 정권 창출 또는 개인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에서 군은 무공을 세워 훈장 타고 영웅 만드는 데는 능하지만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데는 무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군은 정작 국가방위망이 뚫린 사정은 알아내지 못하면서도 주범을 확정하는 데만 성공하였으니, 현재의 군을 군사사건 전문조사기구로 돌리고 국가방위를 위한 새로운 군을 창설하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오죽 답답하면 이런 말까지 나오겠는가. 그만큼 조사결과는 혼란스럽고 허탈했다.

대다수 보통 국민은 죽기 전에는 훈장 탈 일이 절대 없는 나같은 병사 출신들이다. 장교들 눈으로 보면 졸병은 별 볼일 없는 존재이겠지만, 주권자의 대부분은 바로 나 같은 졸병 출신 국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쟁엔 안 나가고 튈 능력이 있는 자들아, 더 이상 전쟁 팔지 말아라

국방의 의무를 완수한 주권자로서 특별히 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싸움을 잘해서 훈장 타는 것만이 군인의 길은 아니다. 국민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적을 막아주는 것 또한 훌륭한 국방이라는 것을 장교들은 알아야 한다. 장교는 직업군인이어서 직장에서 영달하는 것이 인생의 보람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민을 제물로 삼는 일은 실수로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리고 국가 방위의 책임을 진 자가 신출귀몰한 북한의 침투술을 빙자해서 면책을 시도한다면 그런 자들은 역사에 길이 죄인으로 남게 될 것임도 명심하기 바란다.

대통령은 특별히 전쟁기념관까지 가서 북한의 책임을 강도 높게 추궁하고 비판하였지만, 국방의 책임을 진 군부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듯해 딱해 보였다. 이것이 군대에 안 간 대통령의 한계라면 이것은 국가의 비극이다. 군대에 안 갔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식으로 몰고 가지 않기 바란다. 우리 보통 국민 대부분은 전쟁이 나면 끝이다. 해외로 튈 능력도,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될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다면, 임무를 소홀히 한 국방 책임자들을 모두 엄하게 다스려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북한에 보복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쟁에는 안 나가고 튈 능력이 있는 자들아. 히죽히죽 웃으면서 더 이상 전쟁을 팔지 말아라. 능력 없는 사람은 전쟁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태그:#천안함 보통국민의 하소연 대청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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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각별해 졌다. 뭔가 세상에 대고 할 말이 많아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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