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라, 5월초까지 11건 발생한 구제역 보도가 시민들의 관심사에서 잠시 벗어났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이동과 접촉이 많은 선거기간이라 발생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구제역에 대한 방역당국의 방역체계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충남축산기술연구소의 어미돼지가 구제역에 걸려, 멸종위기종인 칡소까지도 죽임을 당했다.

최근 일본에서도 축산기술의 자랑(?)이라는 와규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렸다고 한다. 최대 새끼소 공급지역인 미야자키현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와규 씨소 49마리를 비롯해 이미 소·돼지 20만 마리가 살처분되었으나, 최고급 품질 와규 6마리는 특별관리를 받고 있었다. 최근 1마리가 구제역 양성판정이 드러나자, 다른 소들의 감염여부도 안심할 수 없어 일본 축산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충남과 일본처럼 축산기술연구소마저 구제역이 비켜날 수 없다는 점은 구제역을 막는 길은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윤리에 기초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축산토대만이 우선임을 보여주고 있다. 씨수소를 이용한 한우개량사업은 구제역과 같은 질병에 취약한 개체들을 양산하고 결국은 축산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30년 전만 해도 평생 일 해주다 늙어죽은 소를 동네 사람들 몰래 묻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소는 잡아먹을 대상이 아니었지만, 지금 한국은 미국이 눈독 들일만큼 쇠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가 되었다.
▲ 밭갈이 30년 전만 해도 평생 일 해주다 늙어죽은 소를 동네 사람들 몰래 묻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소는 잡아먹을 대상이 아니었지만, 지금 한국은 미국이 눈독 들일만큼 쇠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가 되었다.
ⓒ 생명평화결사

관련사진보기


올해 1월 초 경기도 포천에서 처음 구제역(A형)이 발생하여 총 6천여 마리 동물을 매장하고, 81일만인 3월 23일 구제역 종식이 선언됐다. 그러나 보름만인 4월 8일 강화도의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O형)이 또 발생하여, 현재까지 26건의 신고와 11건의 발생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소 돼지의 살처분만 이미 5만 마리에 육박하며 순수 살처분 보상금만 670여 억 원으로 산정되었다. 5월 6일 충남 청양의 11차 발생 이후에도 인천, 충남 등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왔다. 다행히 검사결과 음성판정으로 드러났으나, 현재는 사람의 이동과 접촉이 많은 지방선거 기간인지라 다른 발생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멸종위기종 칡소, 우보살, 슈퍼젖소도 살처분

10차 발생지인 충남 청양의 경우는 일반 농가가 아닌 축산기술연구소에서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되어 있는 토착종 칡소 14마리도 살처분 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4월 강화에서는 강화 선원사의 우(牛)보살 3마리가, 같은 달 말에는 생애 총 우유 생산량 15만Kg을 목전에 둔 속칭 슈퍼 젖소 '현웅 33호'도 살처분 되었다.

축산기술연구소의 구제역사태로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농협한우개량사업소는 충남서산의 종모우(種牡牛, 씨수소)들을 경북영양으로 옮겼다. 씨수소들이 구제역에 감염될 경우 한우개량사업이 10~20년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편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기술연구소가 소재하고 있는 충남도는 동연구소를 중심으로 471억 원을 투입하여 축산-바이오테크파크를 조성 중에 있으며, 복제동물, 형질전환돼지 등의 연구를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한우·양돈·낙농농가 일동은 일간지에 구제역 극복을 위해 구제역 발생국 방문 후에는 축산농가에 들르지 말아 달라는 광고를 하였다. 방역 당국인 농식품부에서도 가축 질병이 글로벌화한 요즘 구제역 종식은 국민방역체계가 관건이라는 요지의 차관칼럼을 게재하였다.

그러나 이미 중국 구제역 발생 시 구제역의 국경내 유입을 막기 위한 검역 강화가 이루어졌고 지난 1월 포천 구제역 발생 이후 예찰활동 강화가 시행되고 있었다. 4월 초 이미 예방적 살처분을 기존 500m 이내에서 3Km로 확대하고도 구제역이 속수무책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축산기술연구소처럼 소 돼지에 대해 거의 동물실험에 준하는 연구가 이루어지던 곳에서도 구제역을 막지 못한 사례로부터 문제의 심각성과 더불어 현재와 같은 방역의 한계를 분명히 볼 수 있다.

2010년 1월 15일, 포천에서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할 젖소들이 있는 농가 옆에서 포클레인이 땅구덩이를 파고 있다.
▲ 올해 1월 경기 포천 살처분 현장 2010년 1월 15일, 포천에서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할 젖소들이 있는 농가 옆에서 포클레인이 땅구덩이를 파고 있다.
ⓒ 동물살처분감시단

관련사진보기


불과 1년여 전 씨수소 개발기간을 현 5.5년에서 3년으로 단축, 18개월 령 수소 체중이 미국산 육우인 '앵거스'의 90%에 이르게 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기염을 토하던 서산의 한우 씨수소들은 지금 구제역을 피해 산골로 가 있다.

슈퍼젖소라 불리던 젖소는 반복적인 출산과 착유를 당하다 지금은 두 딸 소와 함께 살처분 되어 묻혔다. 일본에서도 구제역 사태로 가슴에까지 마블링(marbling, 근육내 지방) 이 생긴다고 자랑하던 와규(일본산 소중 품질이 우수한 4종) 씨수소들을 대거 살처분하였고, 일부 대피시킨 6마리 중 1마리가 구제역에 걸렸다고 한다.

한우개량사업의 허와 실 노출, 축산 근간에 대한 재고 필요

사람들은, 기형적이리만큼 빨리 크고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는 소를 얻기 위해 한 마리의 씨수소가 1만7천 마리 송아지의 '아비소'가 되는 사실, 젖소 한 마리가 평생 200ml 우유 72만3000개를 생산해 내는 사실의 부자연스러움과 비윤리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씨수소를 이용한 한우개량사업의 후퇴와 신기록 달성의 무산만 이야기 하고 있다.

동물들의 건강이나 복지는 안중에도 없는 이런 행위들이 죄 없는 동물에게 무한한 고통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구제역과 같은 질병에 취약한 개체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결국 축산의 근본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 이전에 축산의 토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질병에 취약한 개체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질병으로부터 보호받는 기술적 검역과 예찰활동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질병이 유입되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건강한 개체들로 키우고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윤리에 기초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축산 토대가 일차적인 것이고, 질병 유입에 대한 기술적 대응은 이차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일차적 토대 없는 이차적 대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로 이 건강한 토대 자체가 질병에 대한 창조적이고 효과적인 대응 시스템의 핵심이다. 여기에 검역과 예찰활동 같은 부가적 조치들이 덧붙여지는 것이 순리이다.

올해도 여전히 살처분 위주의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질병의 확산을 막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개체의 생존과 번식조차 애초부터 완전 차단하는 것이다.

살처분 방식에 있어서도 소에게는 근육마비제를 주사하지만, 근육마비제주사는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진통작용도 없이 호흡마비를 초래하므로 결코 인도적인 방법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정맥주사가 아닌 근육주사로 투여시 고통이 연장된다. 심지어 돼지의 경우는 그나마의 조치도 없이 대부분 생매장되고 있음을 동물살처분감시단의 활동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5월 9일 SBS <8시 뉴스> 등 언론매체들도 보도한 바 있다.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축산이 해답

팔기 위해 횡성 우시장에 내놓아진 어미 소와 송아지. 그 맑은 눈빛으로 우리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동물보호 무크지 <숨> 2집 164쪽.
 팔기 위해 횡성 우시장에 내놓아진 어미 소와 송아지. 그 맑은 눈빛으로 우리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동물보호 무크지 <숨> 2집 164쪽.
ⓒ 옐로우독

관련사진보기


농장동물들을 단지 생산성 높은 기계로 취급하고 새끼를 낳는 암퇘지를 '기계'라고 부르는 생명에 대한 낙후된 인식은, 생매장살처분이 반복적으로 저질러지고, 용인되는 끔찍한 결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생명에 대한 낙후된 인식이야말로 구제역 등 큰 손실을 초래하는 가축 질병에 창조적·효과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과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축산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장해요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2010년은 UN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이다. 생물다양성은 곧 생명이자 우리의 삶임을 표방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해 로고는 발견(discovery)과 깨달음(realization)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는 토착종 칡소를 살처분하여 땅에 묻는 한편 더 빨리 크고 더 고기 맛이 좋은 소고기를 얻기 위해 씨수소 한 마리가 1만7천여 송아지의 아비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법과 인륜의 원칙을 파기하고 영리한 돼지를 생매장하여 죽인다.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반복되는 이와 같은 행위 어디에서도 창조적인 발견과 깨달음은 찾아 볼 수 없다.

매번 농식품부와 지자체에서는 법과 지침대로 안락사 후 매몰 조치한다고 말하지만, 조류독감 방역 시에도 거의 대부분 살아있는 닭들을 포대자루에 담아 생매장하고 돼지 살처분 시에도 산채로 땅구덩이에 던져 넣을 뿐이다.

동물보호단체의 감시단과 언론이 제시한 사진과 영상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방역당국은 반인륜적인 동물 생매장 중지를 위해 조속히 대안을 마련하고, 동물보호단체의 감시와 조사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카라(KARA)는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의 약자입니다.(누리집_ ekara.org)



태그:#구제역, #살처분, #생매장
댓글

(사)동물보호시민단체 KARA는 사람과 동물들의 아름다운 화음과 공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존중의식 제고, 반려동물식용 근절 캠페인, 동물실험 반대, 농장동물 복지와 채식권장, 동물보호법 개정운동 등을 합니다. 또한 동물을 위한 첫 선택(善擇)! 동물보호 책 <숨>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