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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커피 판매점 싱크커피와 스타벅스
▲ 커피 판매점 로고 공정무역커피 판매점 싱크커피와 스타벅스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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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사무실 근처에 두 개의 커피숍이 나란히 있다고 하자. 한 곳은 공정무역(Fair Trade) 커피만을 수입 판매하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판매점이지만 원산지 주민들의 삶보다 회사 이윤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점심을 먹고 직장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하려고 한다. 만일 두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커피 맛에 별 차이가 없고 가격도 비슷하다면, 당신은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커피 한 잔 마시는데 뭐 그런 것까지 깊게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각자 익숙한 분위기 혹은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더구나 '착한' 커피를 파는 매장보다 '그냥' 커피를 파는 매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 아닌가? (실제 미국 뉴욕 시에서 공정무역 커피만을 판매하는 싱크커피 매장은 3개뿐이지만, 스타벅스 매장은 수십 개가 넘는다.)

맞다. 커피는 다만 커피일 뿐, 바쁜 일상에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어차피 선택은 최종 소비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잠시 마시던 커피를 앞에 두고 생각해보도록 하자. 왜 소비가 문제가 되는가? 착한 소비란 정확히 무슨 뜻인가? 소비라는 행위 앞에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원두1kg 300원에 사들여 25만 원에 판매... 830배 폭리

'식량전쟁'의 저자 라즈 파텔(Raj Patel)의 주장에 따르면,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식품기업 네슬레(Nestle)가 판매하는 커피의 시장가격은 kg당 평균 26달러이고, 원산지 커피의 매매가격은 kg당 14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격차이가 무려 185배가 넘는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원두를 전량 수입, 판매하는 한 전문업체의 경우, 커피 농장에서 원두 1kg를 약 300원에 사들여 전 세계 매장에서 평균 25만 원에 판매한다는 통계자료가 나와 있다. 다른 생산요소의 투입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려 830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이렇듯 심각한 가격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거대 식품카르텔 집단들이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이론가 어빈 라즐로(Ervin Laszlo)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로벌 시장경제 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동시에 '보이지 않는 발'이기도 하기 때문에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밟아버리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국제 커피시장에서 힘 있는 자란, 네슬레를 포함한 소수의 봉건제후 즉 다국적기업을 말한다.

최근 많은 커피회사들이 공정무역 커피 판매비율을 높이면서 대대적인 윤리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이유도, 그간 거의 '착취'에 가까운 불공정 무역을 해온 것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의 공정무역 판매 캠페인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지독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는 거래질서는 그대로 둔 채, 사들이는 커피 원료의 일부를 과거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지불한다고 해서 생색낼 자격이 있을까?

주주중심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기업의 이익 추구활동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문제는 이익 추구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이익 추구인가' 라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회사형태는 주식회사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자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회사를 경영한다. 그런데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보니 다른 이해관계자(stakeholder)와 상충되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해관계자란 주주, 종업원, 하청업체, 지역사회, 정부 그리고 소비자를 지칭한다. 기업 경영에서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은 '이해 득실'을 놓고 서로 대립한다. 주주와 종업원 간의 이해관계는 임금으로 나타나고, 하청업체와는 납품가격으로 표현되며, 지역사회와는 이익 나눔(지역 개발)이라는 문제를 놓고 갈등한다. (최근 많은 학자들이 기업 경영을 주주중심에서 이해관계자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사회공동체가 큰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의 대표적인 복합사례가 국제 커피시장이다. 에티오피아에는 1500만 명의 커피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이 하루 1달러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커피콩 100파운드(45kg)를 수확하고 커피 농가가 손에 쥐는 돈은 고작 3달러가 안 된다. 만일 국제 시장에서 공급 과잉이나 소비 축소로 커피값이 떨어지면 임금은 더 줄어든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단적 저임금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커피가격의 인하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브라질, 베트남, 온두라스, 에티오피아를 포함 전세계 70개 국가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수천만 명 농부의 생사여탈권이 소수의 거대기업들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국제 커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들 카르텔 조직들이 이익을 높이기 위해 가격담합 및 시장교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결과, 원산지 커피 생산자들은 빈곤과 기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자본가들은 매년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별 생각없이 쓰는 돈이 힘센 자의 호주머니를 더 불린다

이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공정무역 커피(Fair Trade Coffee)다. 중개상인의 개입을 배제시키고 제3세계의 가난한 커피 재배농가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주고 커피를 직접 구매함으로써, 최소한의 먹고 살 수 있는 수익을 돌려주자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다. 커피 가격 폭락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원주민들의 생존권 보호를 목적으로 1988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지난 10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전세계적인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한국 최초의 공정무역 커피는 2006년 아름다운 커피가 네팔로부터 수입한 '히말라야의 선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원산지 주민들의 피와 눈물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평소 별 생각 없이 쓰는 돈이 힘센 자의 호주머니를 더 불리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면, 이 소비를 계속하는 것이 옳은가? 이것을 '좋은' 소비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이른바 '나쁜' 소비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인도주의 관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생산과 유통 간 합리적 이익 배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해보고자 함도 아니다. 이 작업은 시민운동가와 경제학자의 몫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단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한다. 바로 우리들 모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호간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단단하게 연결된'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인류는 '타인이 존재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신도 존재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북경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에서 허리케인이 분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일 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국가와 인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발 이익을 위해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면 지구는 폐질환에 걸릴 것이고, 경제규모가 큰 나라들이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열병을 앓을 수 밖에 없다.

우린 '단단하게 연결된'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행성 어디에도 이러한 '파괴행위'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는 경제성장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미신(迷信)에 불과하며,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지구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학자들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지구의 에너지 자원을 끝없이 소진하게 함으로써, 인류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존하는 지구의 석학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웰빙(Well-being) 시대가 아니라 로하스(LOHAS)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로하스란 건강과 지속성을 추구하는 생활패턴(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을 말한다. 60억 개의 호모 사피언스 개체를 포함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가  공생하고 있는 지구라는 '별'을 보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친자연주의적인 삶, 친환경적인 소비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개인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작년에 한 민간연구소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책임을 잘 이행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전체의 약 55%(직전 조사시점 대비 11% ↑), 그렇지 않은 회사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약 43%(18% ↑)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통계는 착한 소비가 시대적 트렌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임과 동시에, 기업이 윤리경영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향후 기업의 사회책임투자(SRI)와 소비자의 사회책임소비(SRC)라는 두 개의 명제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핵심가치(Core Value)가 될 것이다.

소비는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다. 주디스 러바인(Judith Levine)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비는 정치적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마땅히 심사숙고해야 할 매우 의식적인 판단과 결정이라는 점에서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보다 더 정치적인지 모른다. 신토불이 상품을 애용하자는 호소가 애국심에 기댄 정치적 소비 마케팅이라면, 친환경 상품구입을 포함한 착한 소비운동은 범지구 차원의 정치 캠페인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여. 이제부터 쇼핑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지출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가격, 품질, 원산지 표시와 더불어 해당 제품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 바란다. 무엇보다 이 제품이 가족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것인가를, 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지구를 보존하는데 기여하는 것인가를, 이 소비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가를, 단 1초만이라도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쩌면 그 1초의 망설임이 파괴적인 '개발업자'들로부터 이웃과 마을, 국가 그리고 환경파괴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길인지 모른다.



태그:#착한 소비, #공정무역 커피, #이해관계자 경영, #사회책임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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