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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표지 .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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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이라는 게 있었다. 이름 하여 '남조선민족해방선전'. 박정희라는 이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정상적인 법 절차와 행정력이 아닌, 대통령의 권한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유신헌법이라는 게 위력을 발휘하던, 이른바 '긴급조치'와 '막걸리반공법' 시절에 일어난 최대의 공안사건이라는 게 바로 남민전이다.

세상 사람들이 제법 알은체를 하는 고 김남주 시인,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세(?) 국민권익위원장 이재오 등도 남민전 '관련자'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05년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이수일 교사. 그도 남민전과 관련해 10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가 30여 년 전 그때의 일을 책으로 썼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부제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에 간 교사 이수일의 삶, 사랑이야기'. 표지와 책 속 그림도 그 시절 감옥에서 직접 그린 것이다. 남민전 관련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를 간략히 언급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남민전' 호기심보다 인간 사랑 말하고 싶었다"

이수일 선생은 1978년 서울 정신여중 교사로 재직하던 중 '남민전'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1979년)돼 해직된 뒤 10년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전교조 정책위원장과 참교육연구소장 등을 거쳐 제11대 전교조위원장을 지냈다. 해직 20년만인 지난 1999년 서울 잠실고로 복직해 현재 서울 고척고에서 역사 교사로 제자들과 만나고 있다.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그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던 지난 18일 고척고에서 만났다.

이수일교사가 서울 고척고 교무실(진학지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 평범한 교사의 일상 이수일교사가 서울 고척고 교무실(진학지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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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88년 출소하면서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교육운동을 했고 특히 전교조 활동하면서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출소 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공안사건자료 접하면서, 새삼스레 시간이 지나면 그것(공안사건자료)밖에 안 남겠다 싶어서 쓰게 됐다. 개인사적으로도 돌아보고 정리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공안사건의 주인공에서 민주화 인정까지 심정이 어땠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건 관련자 모두가 신청·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는 있다. 학교 복직(1999년)하면서 복권은 됐다."

- 제목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이 번역·출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 검은 피부 흰 가면)의 여운이 짙은데.
"처음 생각한 건 '기록, 학교 갔다 온 이야기'였다.('학교'는 감옥의 은어). 지금의 제목은 본문에 들어가는 소제목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파농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이었다. 그것과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변하지 않은 이근안... "사람 변화시키는 게 힘들구나 싶다"

- 책의 시작이 '내가 죽은 날'이라는 제목의 체포 당시 장면이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증거로 봐도 될까?
"그런 셈이다. 내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한 걸 글을 쓰면서 발견한 게 많은데 워낙 그 당시에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는 상황에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의미나 비중이 컸구나 하는 게 의식 깊이 각인됐음을 발견한다."

- 그렇다면 잠실고로 복직 됐을 때 트라우마의 현장인 시영아파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운명일까. 잠실고 교무실에서 그 곳이 건너다 보였다. 교사로서 내가 살던 시대를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것이 교사로서 수업 과정이라는 의미 부여도 스스로 해 보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성숙하기도 하고 세상을 넓고 깊게 알게 된 수업과정일 수도 있다."

남민전 첫 공판 모습(위)과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악행 보도한 당시 신문 자료
▲ 자료 남민전 첫 공판 모습(위)과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악행 보도한 당시 신문 자료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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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다. 반성하는 듯했던 그가 최근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반성하지 않은 것처럼 그가 반성하지 않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변화와 발전이 그만큼은 달라지길 바랐다. 그 정도는 인정하고. 그러나 그가 하수인이니 변명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역사의 발전만큼은 변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

- 감옥에서 5·18 당시 관련 인사들도 만났다. 올해가 5·18 30돌이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5·18은 운동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큰 전환점이 됐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정도의 성과는 있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게다가 기념 행사가 파행으로 치러진 건 역사의 역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18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나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 남민전에 함께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이재오씨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제시대에도 그런 분은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관 뚜껑 덮어봐야 안다는 말 있지 않나. 누구도 장담 못한다. 우린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지 그 점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이재오가 다시 어떻게 돌아올지 누가 알겠나."

- 학교생활은 어떤가?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본다면?
"학교에 있으면 아이들의 생명력에서 많은 에너지 얻는다. 그건 교사로서 특권이고 행복이다. 반면 학교로 돌아온 행복감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고뇌와 좌절은 더 크다."

- 무엇 때문인가?
"학교·교육현실이 입시교육이나 이런 게 더 심화돼 교육적 상황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고 내가 그런 상황을 능동적으로 극복할 만큼 교사로서 개인적 역량의 한계도 크다. 환경탓만 할 수 없어 좌절도 매일매일 겪고 있다. 퇴직을 가까이 남겨두고 보니 좀 덜 부끄러운 교사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저 그런 교사로 끝날까싶은 초조함이 있다. 내가 농촌 출신이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큰 편이라 농촌 학교에서 퇴직하고 싶다. 좀 더 욕심을 내면 황폐한 농촌을 살리고 생태주의적 시대정신의 패러다임을 가꾸어보고 싶다."

"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 그들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이수일 전교조 전 위원장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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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좌파 · 빨갱이 운운하는 이념 공세와 전교조 둘러싼 지금의 시국상황을 어떻게 보나?
"새삼스레 얘기할 필요 있겠나. 화병 난 사람도 많다더라. 역사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강물이 때로는 역류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냇물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역사에 대한 믿음은 버릴 수 없다."

- 이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태로 보면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취업전선에서 얼마나 시달리고 있나. 우리가 자신에 충실하고 고민하는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자아를 돌볼 수 없을 만큼 더 쥐어짜고 내몰리고 있다. 그땐 겨울공화국이었고 지금은 모든 게 분출되는 여름 같은 시대다.

그러나 그 당시도 선택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어차피 역사는 그런 큰 흐름과 사이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와 그들이 다른 시대를 사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떤 시대에 살든 그 시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인간다운 사회가 되도록 세상의 중심을 옮기려는 노력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믿는 건 문제나 모순이 쌓이면 분노나 더 큰 동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간'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인간상이 시대의 산물이다. 내가 직접 만난 이들은 막걸리반공법에 걸린 이들부터 양심수까지 다양하다. 그들에게 얽매이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 면면을 더 중심적으로 봤다. 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남민전이라는 특정 사건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독자들도 그런 데 기대를 갖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에서 인간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나 문제의식을 발견했으면 싶다. 운동도 결국 그걸 떠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념이나 사상도 결국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살아있는 인간'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인간답게, 인간적으로 사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 이 책은 내 스스로 미워하고 가련히 여기는 내 젊은 날이자 나의 족적이다."

남민전으로 복역한 지 10여년 만인 1998년 복권이 됐고,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통지서를 받았다. 이수일 선생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복권과 민주화인정 남민전으로 복역한 지 10여년 만인 1998년 복권이 됐고,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통지서를 받았다. 이수일 선생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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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남민전, #이수일, #이근안,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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