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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동이>에서 장 희빈 역을 맡은 배우 이소연.
 MBC 드라마 <동이>에서 장 희빈 역을 맡은 배우 이소연.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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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탕약'을 올려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대비(명성왕후, 박정수 분)를 위독하게 만든 범인이 누군가를 놓고 미스터리 수사극을 선보인 MBC 드라마 <동이> 제18부.

18일 방영된 18부에서는 '이번에도 역시' 동이(한효주 분)의 활약으로 장 희빈(이소연 분)의 오빠인 장희재(김유석 분)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범행에 가담한 의관이 숙종(지진희 분) 앞에서 "중전이 시켰다"는 허위진술을 하는 바람에 상황은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로써 장 희빈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드라마 속 장희재가 명성대비를 죽이려 한 것은 장 희빈의 장남인 이윤(훗날의 경종)을 원자(元子)로 만들기 위해서다. 서인 출신의 강경파인 명성대비가 이윤의 원자 책봉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서 '원자'란 임금의 장남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자로서 아직 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아들을 가리킨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원자는 예비후보, 세자는 정식후보라고 할 수 있다.
 
명성대비는 장 희빈 아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천민 출신의 하급 궁녀에서 일약 정1품 후궁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성공담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팜므파탈' 장 희빈을 중전에서 끌어내리고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몬 장본인인 최 숙빈(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 <동이>. 현재 이 드라마는 장 희빈-최 숙빈 대결이 본격화되기 전에 있었던 장 희빈-명성대비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장 희빈 측과 명성대비가 이윤의 원자 책봉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는 드라마 <동이>의 이야기는 역사적 실제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명성대비는 '장 희빈'이란 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치를 떨 수 있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장 희빈의 아들이 원자가 되지 못하도록 명성대비가 훼방을 놓는 것은 '자연과학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윤이 출생한 때는 숙종 14년(1688) 10월 27일이었다. 그런데 명성왕후가 사망한 시점은 숙종 9년 12월 5일, 즉 서기 1684년 1월 21일이었다. 이윤이 출생하기 몇 해 전에 명성대비는 이미 사망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처럼 명성대비가 이윤의 앞길을 막는다든가, 또 그게 못마땅해서 장희재가 명성대비를 죽이려 한다든가 하는 장면은 실제로는 발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송시열의 영정.
 송시열의 영정.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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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갓 출생한 이윤의 운명이 그저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윤은 출생 이듬해인 숙종 15년(1689)에 원자에 책봉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이윤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된다. 우리 나이로 두 살밖에 안 된 이윤은 바로 이 세자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정쟁의 초점이 된다.

숙종이 이윤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서인 당파가 들고 일어났다. 서인들은 장 희빈의 아들이 다음 보위의 주인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때 이윤의 세자 책봉에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은 서인 영수 송시열이었다. 드라마 <동이>에서는 명성대비가 이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실제로는 송시열이 그렇게 했던 것이다.

송시열은 상소를 통해 이윤의 세자책봉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 일은 도리어 그의 운명을 종결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숙종은 그의 상소를 거부했고, 송시열은 같은 해 6월 3일에 전라도 정읍에서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숙종 16년(1690) 6월 16일 이윤은 드디어 세 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다.

'장 희빈' 벽 넘지 못한 '이윤 세자책봉 반대' 송시열

장 희빈 모자에게 패배의 쓴 잔을 안기려던 송시열은 도리어 자기 자신이 죽음의 독약을 마시고 말았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자 서인의 '영원한 총재'였던 송시열은 그렇게 장 희빈 모자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진 것이다.

그런데 송시열이 장 희빈에게 '잡아먹힌' 이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 전개를 관찰해보면, 조선 후기 정치투쟁의 흥미로운 먹이사슬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먹이사슬은 숙종의 할아버지인 효종의 재위기로부터 시작한다.

형인 소현세자가 집권당인 서인의 견제를 받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에 왕위에 오른 효종(봉림대군)은 취약한 정통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왕권강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기득권층의 저항에 직면했다. 왜냐하면 그는 왕권강화를 위해 중앙군 확충을 추진했고 거기에 필요한 재원을 기득권층의 호주머니에서 거두려 했기 때문이다.

이때 효종에게 맞선 기득권층의 대표주자는 송시열이었다. 송시열과 효종은 본래 사제지간이었지만,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 사안에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했다. 갈등을 풀기 위해 개최된 효종 10년(1659) 3월 11일의 효종-송시열 비밀독대가 결렬됨에 따라 정국의 긴장은 한층 더 첨예하게 고조되었다. 비밀독대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5월 4일에 효종이 41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급서함으로써, 두 사람의 대결은 송시열의 승리로 끝나고 기득권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런데 효종에 대한 송시열의 승리는 그로부터 15년 뒤에 송시열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현종 사망연도이자 숙종 즉위연도인 1674년에 제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이 "송시열이 국왕(효종)을 모독했다"며 그를 귀양지로 내몬 것이다. '주군을 잡아먹은 신하'라는 오명이 송시열에게 덧씌워진 것이다. 이때 송시열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서인의 비호 전략이 주효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비밀독대 때에 송시열은 "병력증강사업을 지지해달라"는 효종의 간청에 대해 "마음공부나 먼저 하라"며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효종이 죽고 효종의 정책도 무산되었으니,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송시열이 효종을 죽인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효종-송시열-장 희빈' 먹이사슬 다음에 자리한 최 숙빈

 드라마 <동이> 속 최 숙빈 모습.
 드라마 <동이> 속 최 숙빈 모습.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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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효종 임금까지 잡아먹은 송시열은 뜻밖에도 장 희빈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효종을 모독한 불충의 신하'라는 정치적 공격을 받고도 무사히 살아남은 거물 송시열이 장 희빈 모자 때문에 사약을 마시게 되었으니, 송시열이 '뛰는 놈'이라면 장 희빈은 '나는 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나는 놈'을 잡아먹은 장본인이 최 숙빈이었다는 점이다. 장 희빈을 중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아예 저승으로 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여인이 바로 최 숙빈이었다는 사실과, 장 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에 그 자리를 최 숙빈의 아들(영조)이 채웠다는 사실은 효종-송시열-장 희빈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다음 자리에 최 숙빈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드라마 <동이>에서는 장 희빈 모자와 명성대비 사이에 원자책봉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고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 희빈 모자와 송시열 간에 세자책봉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이 대결에서 장 희빈은 서인 영수 송시열을 고꾸라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뒤이어 출현한 최 숙빈이라는 다크호스를 막아내지 못해 자신의 승리를 끝까지 지켜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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