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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일 30주년 기념일에 올해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는 교육개혁대책회의가 세 번째로 열렸다. 교과부는 이 자리에서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내용·방법·평가체제 혁신방안을 보고했다.

내용을 보니 현재 교과교육내용의 20%를 줄이고 창의성과 인성교육이 가능한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하여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예비교사 교육과 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한 교육, 입학사정관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첨부파일 보세요).

발표 내용을 보니 '과연 교과부가 발표한 이 정책들이 현재 우리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이고, 창의성과 인성교육이 이런 방법으로 길러지는 것일까 싶다. 현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사교육 경감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로서는 일단 문제의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다고 본다.

무한경쟁에 학생 인권은 나 몰라라

교과부는 1월부터 과학창의재단을 통해 창의인성교육방안을 연구해왔습니다. 학교에는 이미 3월에 창의인성교육홍보세트에 대해 안내하였습니다.
 교과부는 1월부터 과학창의재단을 통해 창의인성교육방안을 연구해왔습니다. 학교에는 이미 3월에 창의인성교육홍보세트에 대해 안내하였습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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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린이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정규직이 되는 게 꿈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아이들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놀 시간도 없이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자율화로 초등학교까지 국영수시간이 늘어났고, 특기적성을 기르기 위해 도입된 방과후 교육시간에도 교과학습을 하게 되어 초등학교의 전인교육은 무너진 지 오래이다. MB정부가 도입한 학교자율화 방안 때문이다.

학생들의 인권은 어떠한가?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해 초등학교에도 0교시가 생기고, 6학년 7교시는 기본인데다 9교시, 13교시라는 신조어가 떠돌고 있다. 초등 2학년까지 보충수업을 시키고 학력상을 주는가 하면 '놀토'에 등교하는 학교도 있다. 그러다보니 쉬는 시간도 5분으로 줄이는 학교가 생겼었고, 아예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이 없다고 떠드는 학교도 있다.

초등교육이 이렇게 무너지는데 앞으로 우리 교육, 우리 사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교과부와 정부는 관련 대책은 내놓지 않고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외친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수능점수 공개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로 점수 부풀리기가 불가능하니 절대평가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연합뉴스 5월 18일자). 결국 창의성은커녕 배설 본능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은폐하고 "MB교육은 창의성 인성교육이에요"라고 딴소리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습부담 20% 감축? 이젠 안 속아요!

교과부가 작년에 만든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물입니다. 교과군별로 수업시수를 20% 감축할 수 있고 창의적체험활동을 도입한다는 주요내용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교과부가 작년에 만든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물입니다. 교과군별로 수업시수를 20% 감축할 수 있고 창의적체험활동을 도입한다는 주요내용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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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이번 교과부 발표 중에서 학습내용 20% 감축을 가장 크게 보도하고 있다. 교과부는 작년부터 교과시수 20% 자율성, 학교교육과정 편성 자율권 20% 방안을 내놓더니 이제는 교과내용을 20% 감축한다고 한다. 대체 20%는 대체 어떻게 나온 수치일까? 교육 내용을 20% 줄이면 학생 부담이 어떻게 줄어든다는 것일까?

사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겠다는 건 4차 교육과정 개정기부터 나왔고, 교육과정을 바꿀 때마다 나온 단골메뉴이다. 1997년에 개정한 7차교육과정은 무려 교육내용의 30%감축을 내세웠다. 그런데 실제로는 줄어든 시간만큼 내용을 압축해서 더 어렵고 양도 많아서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에 교과부가 교육계 안팎의 비판을 무릅쓰고 개정한 2009개정교육과정도 학생들의 학습부담 감축이 주요 선전내용이었다. 교과부는 이번에는 교과별로 반복되는 내용을 없애고 정말로 20%를 줄였는지 인증까지 마치겠다고 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고 강한 의지조차 엿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과부의 교육과정 정책이나 교육과정 개발과정을 봐온 현장교사로서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

지금 학교는 교육과정 이행기라서 매우 복잡하고 혼란하다. 초등학교의 경우, 작년 1, 2학년에 2007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올해는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 개정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있다. 교육과정이 바뀌었으니 교과서도 바뀌고
교육과정 정책, 평가, 수업방법까지 변한 게 많은데 교과부는 형식적인 연수 외에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교과부가 교육내용을 개편하겠다면 새로 만든 2007개정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2007개정교육과정은 7차교육과정을 부분 수정했다고 하지만 교과별로 내용 체계가 변하고 학년간 이동도 커서 교사들은 내용을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양을 줄였다더니 시간마다 학생들이 알아야 할 개념이 너무 많고 교사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어떤 교과는 5학년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가서 학생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적 내용과 별 차이가 없어 대체 이런 내용을 학생들이 배워야 하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현실은 어떠한가? 교과부는 작년부터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교과별로 변한 체계가 학생 수준이나 발달단계, 성취수준과의 연관성을 따지고 지역수준이나 학생의 가정환경 변인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지 국가 수준의 질적 연구도 필요한데,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학년간 내용이동 때문에 학생들이 못 배우는 내용(수학, 과학, 영어, 기타 교과)이 있는데도 관련 사이트에 자료만 띄워놓고 학교에서 알아서 복사해서 쓰라고 한다. 그러면서 2009개정교육과정 연수자료는 학부모에게까지 나눠주라고 하고 바쁜 교사들에게 연수받으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대부분의 교사들이 보기에 교과부의 학습량 감축계획은 진정성조차 의심스럽고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창의 체험 활동 지도, 교사가 문광부일까지 하라구요?

교과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만든 창의적 체험활동CRM사례집입니다. 내용을 보면 체험학습가기 좋은 장소를 안내하는 건 시군 관광과에서 하는 게 더 충실한 자료가 나올 것 같고, 활동사례를 실어 교육자료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그냥 체험학습 안내집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데 굳이 "창의"라는 말은 꼭 붙네요
 교과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만든 창의적 체험활동CRM사례집입니다. 내용을 보면 체험학습가기 좋은 장소를 안내하는 건 시군 관광과에서 하는 게 더 충실한 자료가 나올 것 같고, 활동사례를 실어 교육자료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그냥 체험학습 안내집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데 굳이 "창의"라는 말은 꼭 붙네요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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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교과학습내용을 감축하고 창의인성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기업, 지자체 등과도 연계하여 창의체험활동 지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창의력이 길러지고 인성이 좋아질까?

창의체험활동 지도 사업은 교과부가 각종 연구학교선정이 다 끝난 3월에 의욕 있게 추진한 사업이다. 마침 기자가 근무하는 학교가 창의인성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되어 창의 체험 활동 자원 지도를 만들고 있어 실상을 알고 있다.

창의체험활동은 규모를 고려해서 전국에서 선도교육청을 지정하여 산하 학교까지 선도학교가 되었다. 연구학교가 아닌 곳은 다 신청하라니 무조건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연구 내용을 들어보니 시도에서 체험활동이 가능한 자원을 다 찾아 등록하고 교과부가 다음에 사이트를 만들면 거기에 등록하는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특정 지역의 자료를 다 찾고 분류하라는데, 내용을 보니 시군 관광과에서 해야 할 일이다.

결국 가뜩이나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 교사들이 모였다가 설명을 듣고는 "왜 문광부에서 할 일을 우리보고 하라고 하나? 관광계 공무원에게 물어보면 알 일을 왜 문외한인 우리에게 시키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런 내용이 꼭 필요하다면 이미 구축된 자료가 많으니 문광부와 협력해 자료만 모아놓으면 훨씬 좋은 자료가 나올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힘 약한 교사들이 거부할 수는 없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배당받은 장소를 각종 블로그와 카페, 군청 사이트를 뒤져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체험활동비는 국가가 대주나요?

교과부가 올해 만든 창의적체험활동 통합지원시스템입니다. 학생이 직접 체험활동 내역을 기록해 앞으로 입시에 반영한다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교과부가 올해 만든 창의적체험활동 통합지원시스템입니다. 학생이 직접 체험활동 내역을 기록해 앞으로 입시에 반영한다는 취지로 만들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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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체험활동을 활성화시키고 대학입학에까지 반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체험활동비는 누가 댈 것인가? 교육과정 내용에까지 편입한다면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발표내용 어디에도 그런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무상의무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상급식이 실현되지 못하고, 1년에 2번 가는 현장체험학습도 수익자부담이라고 학부모에게 전가하고 있다. 하다못해 즐거운 생활이나 체육교육과정에는 수영이 나오지만 이것도 학부모에게 돈을 걷어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체험학습비가 없어 결석하는 학생들이 있다. G20정상회의 유치로 국격을 높이자고 열심히 홍보하지만 정작 학생 교육의 질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의 의무사항인 이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체험활동을 강화하고 대입시에 반영한다는 정책은 결국 학부모의 능력에 교육을 맡기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또 이런 비용은 사교육비 통계에는 빠지지만 실제로는 공교육내 사교육비로 결국 학부모의 부담만 늘려주는 셈이다.

수업방법· 평가방법 혁신? 이미 하고 있는 걸요

교육내용 20% 감축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수업방법 개선이나 평가방법 개선안도 이미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을 새로운 것인양 포장해서 발표하였다.

교과시간을 2~3시간씩 묶는 블록타임제는 초등학교에서 교사에 따라 많이 도입하고 있고, 수행평가 예고제는 7차교육과정부터 시행되는 방법이다. 지금도 학교정보를 공시한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다 나와 있다.

결과물이 아니라 수행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원래 수행평가의 취지이다. 그런데 지금 일제고사 때문에 초등학생들은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중고등학교는 수행평가를 점수로 일일이 환산하는 것 때문에 취지가 무색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다.

집중이수제도 마찬가지다. 교과부가 작년에 고시한 2009개정교육과정은 올해부터 학교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까지 국영수 교육을 강화시켰다. 7월에 있을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예체능은 2학기로 넘기고, 심지어 6학년 1학기 내용을 5월까지 집중이수하고 있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개학을 앞둔 2월에 갑자기 음악, 미술, 체육 중에서 한 가지를 집중이수로 짜라고 강요받았다. 이제 예체능교사는 담임을 맡기 힘들 뿐 아니라 예체능교사가 없는 학교까지 생겨날 지경이다.   

문제중심수업, 토론 탐구 수업, 독서토론, 팀프로젝트, 글쓰기, 역할놀이, 교구활용수업 방법론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었다. 수업방법은 교육내용과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교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할 방법이다. 교사에 따라 학교에 따라 이미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교과부가 강조한 순간 오히려 교육방법은 획일화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열린교육이 도입될 때 관리자들이 교실 앞은 절대 보지 말고 무조건 모둠대형으로 만들라고 돌아다니던 현상이 되풀이 될까 걱정이 된다.

창의성과 인성이 이벤트로 길러질까요?

앞으로의 교육은 창의성과 인성이 가장 중요할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열풍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육의 창의성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창의성교육 강화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10년 넘게 고민했는데도 왜 우리 아이들에게 창의성이 부족할까? 이에 대해서는 각계에서 진지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교과부는 7차교육과정이 나올 때와 똑같은 평가만 내놓고 있다.

그런데 교과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창의성이나 인성교육을 근본적이고 철학적 고민이나 변화 없이 몇 가지 정책으로 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 이런 것도 식품첨가물처럼 특정한 요소를 집어넣어 해결된다거나 수치같은 것으로 계량화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사실 학교와 사회의 문화를 보면 개인의 의견이나 상식조차 거부당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학교에도 비정규교사가 많아지고 학급당 학생수는 늘어 교사의 업무부담은 더 가중되었다. 근무평정, 성과급, 교원평가로 이어지는 삼중평가 때문에 교사의 자괴감도 커지고 있다. 이러다보면 학교는 시늉만 내고 발빠르게 대응하는 사교육업체는 더욱 분화된 내용과 화려한 선전으로 이젠 교과교육에 이어 인성교육도 학원의 상품으로 전락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만 늘어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교육과정 개정, 개악?③]MB임기 끝나도 교육과정 삽질은 2016년까지 쭈욱?
[교육과정 개정? 개악?②] 학습부담 줄인다면서 왜 국영수는 그대로 둘까
[교육과정 개정? 개악?①]전인교육 포기한 공교육, 세금 받을 자격 있나 

덧붙이는 글 | 교과부는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창의인성교육의 기본 토대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고시 내용이 무엇이고, 정말 이것으로 선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창의성과 인성교육방안, #교육개혁대책회의, #학교자율화, #창의체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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