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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권한대행 이성희)이 갑자기 재판이 진행 중인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에 나섰다. 14일 서울교육청은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에게 돈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교사들에게 오는 24일 징계위원회 출석을 통보했다.

 

이 때문에 전임 교육감의 불명예 퇴진과 선거 출마에 따른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선거 기간 동안 조직 관리를 위해 임시로 파견된 교육부 관료가 차기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전교조 심판'을 내세운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적 행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임 교육감의 "판결 전 징계 안 한다" 약속 파기

 

2009년 2월 29일 서울교육청(당시 공정택 교육감)은 불구속 기소된 교사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면서 "시교육청은 이들 전교조 교사들이 재판 중에 있는 점을 고려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2009년 3월 13일 제224회 서울교육위원회(임시회) 본회의에서 이부영 교육위원의 질의에도 "대법원 확정 때까지 징계권 남용 안 한다"고 명백히 밝혔다.

 

이날 회의록에는 공 전 교육감이 "교사들을 중징계하겠다는 언론사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법원 판결 때까지 징계 안 한다. 직위해제도 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교육청의 약속은 이뿐이 아니었다. 2009년 10월 29일 공정택 전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불명예 퇴진한 후 부임한 김경회(당시 징계위원회 위원장) 권한대행도 교사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기소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지 1년이 훨씬 더 지난 시점으로 사실상 재판 선고 이전에 징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힌 셈이었다.

 

이성희 권한대행도 "징계 않겠다"

 

공 전 교육감의 중도 하차에 이어 김경회 권한대행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면서 이성희 현 권한대행이 부임, 3월 22일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면서 징계 여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됐다.

 

이날 징계위원회에서 당시 교육위원이었고 현재 다시 교육의원에 출마한 이부영, 최홍이 위원이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 징계를 할 것이냐?"고 따져 묻자 이성희 권한대행은 "(재판 선고 전) 별도의 기일까지 징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를 당사자들에게 통보했고, 교육위원에게도 이를 명백히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성희 서울교육감 권한대행은 5월 24일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게다가 출석 통지서에는 "당사자가 불참하더라도 통보 없이 당일 중징계를 강행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들 교사들에게 범죄 사실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면서 검사에게 이를 특정하여 줄 것을 요구한 상황이어서 무죄가 나오거나 1심보다 형량이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윗선'의 지시 없이 갑자기 징계를 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의하면 담당자들도 "윗선에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하게 우리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며, 전임 교육감과 자신이 이전에 했던 약속을 뒤엎는 것으로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다. 또,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윗선의 지시로 징계에 나선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하게 우리 헌법의 지방교육자치 원칙을 위배한 것이며,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정치 선거에 동원된 것이다.

 

이성희 현 권한대행은 공정택 전 교육감의 불명예 퇴진과 부교육감의 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교육청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선거 기간 동안 공정한 선거 관리와 중립 유지 등을 위해서 임시로 파견된 교육 관료다. 임시로 조직 관리를 위해 파견된 교육관료가 선출된 정식 교육감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직선으로 뽑힌 교육감이나 정치인들도 퇴임을 앞두거나 선거가 진행 중일 때는 조직 관리 차원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차기 당선자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관리형으로 온 파견 권한대행이 3월에는 이후 교육감이 행사하게 될 교장 공모제에 대한 안을 확정 발표해 버려 월권 논란을 빚더니 이번에는 교육감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징계권)을 갑작스럽게 행사했다. 이는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징계를 하더라도 실제 인사권자인 차기 교육감이 결정할 일이지 현재 권한대행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리 교장은 봐주고... 과잉징계 혈세 낭비, 누가 책임지나

 

2008년 12월 이후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안내했다는 이유로 13명(서울 8명, 강원 4명, 울산 1명 등)의 교사가 파면 해임됐는데 이들이 모두 재판 또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재심으로 복직이 결정됐다. 그런데 이들 중 울산의 1명을 제외한 12명이 아직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임금으로 물어줘야 하는 국민 혈세가 1년에 최소 5억 정도에 이른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15억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세금과 변호사비를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혈세가 낭비될 것이 뻔하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교육청의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번에 서울교육청이 재판이 진행 중인 교사 18명을 추가로 징계할 경우에도 같은 상황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교사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다면 해마다 수억의 혈세를 물어주어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때에는 이성희 권한대행도 이미 서울교육청을 떠난 상황이라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징계를 하려 한다면 이성희 권한대행이 자신의 돈으로 임금과 변호사비 수억을 물어내겠다는 각서라도 쓰고 해야 한다고 당사자들은 요구한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교장과 장학관 등 매관매직 비리 당사자들 대부분이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일부만 징계를 받았다. 핵심 당사자인 김모 교장, 장모 교장 등은 아직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일부 교장과 교사들이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10명에 불과했는데,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비리 관련교장들과 부정승진 대상자 등은 거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 창호공사 등 건축비리와 관련된 인사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고, 무죄 또는 공직 유지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교조 교사들만 징계하려고 하는 서울시 교육청의 현 행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6·2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두언 한나라당 선거기획위원장은 수차례 이번 선거를 전교조에 대한 심판으로 몰아가겠다고 했고, 이를 이어 조전혁 의원 등과 함께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중징계 카드를 다시 꺼냄으로써 전교조가 불법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혹시 선거에서 현재와 다른 성향의 진보와 민주를 표방하는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리 이들을 징계해 버리면 어쩔 수 없다는 얄팍한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만약 이들 비리 교장들에 대한 징계는 미루거나 봐주고 전교조 교사들만 징계하려고 하는 것이 6·2 지방 선거를 겨냥한 것이고, 이것이 윗선의 지시라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서울교육청 이성희 권한대행뿐 아니라 그 윗선(교육부 또는 청와대) 역시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5월 24일 서울교육청의 징계위원회 결정이 주목된다.


태그:#서울교육청, #전교조, #이성희,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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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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