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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글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몸도 피곤한 데다 귀차니즘이 도져서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조선일보> 하는 짓을 보니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겠네요. 광우병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요.

 

더구나 최근엔 '광우병 괴담'과 '천안함 괴담'을 아예 세트로 묶어 국민들 입단속까지 주문하고 나섰더군요. "2년 전 광우병 괴담을 쏟아냈던 세력들이 이제는 천안함 괴담의 배후에서 얼씬거리고 있다"(조선사설, <가짜가 진짜 몰아세웠던 광우병 정보 세상의 함정>, 2010.05.12)나요?

 

도대체 "광우병 괴담을 쏟아냈던 세력들"이 누구이고, 얼마나 나쁜 짓을 해댔길래 <조선일보>가 저렇듯 학을 떼는 것일까요? 그 상처가 얼마나 심했으면 촛불이 꺼진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렇듯 몸서리치며 헛소리를 해대는 걸까요?

 

괴담 유포자를 추적하고자 <조선일보>의 옛기록이 고이 모셔져 있는 'DB조선'을 하릴없이 뒤져 보았습니다. 이하의 글은 그 지난한 추격의 기록입니다.

 

'광우병 괴담' 유포한 범인 찾아 삼만리

 

 

'광우병'의 시원을 찾아 <조선일보> 지면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96년에 닿습니다. 거기서 세상사 모든 일을 취급하는 만물잡화상 '이규태 코너'(1996.03.23)를 만나게 되지요. 그를 통해 유럽 각국에서 일고 있는 영국 쇠고기 수입 금지 소동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날 작성된 이런 기사도 있네요.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소로도 전염 밝혀져" "치사율 1백%" "뇌에 구멍…미친소 골 먹으면 위험…"(A39면)

 

어떻습니까. 시작부터 화끈하지요?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영 소 가공식품 금수 광우병 관련 의약-화장품… 유제품 제외>라는 96년 4월 3일자 기사도 보입니다. "정부가 유럽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광우병 파동'과 관련, 영국과 북아일랜드산 소와 소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약부외품 등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는 내용.

 

또 "영국 소녀가 쇠고기를 넣은 햄버거를 먹고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감염됐다"(1996.04.28, A31면)는 안타까운 기사도 보이는군요.

 

해를 넘겨 작성된 97년 1월 29일자 <광우병 공포 이유있다> 기사(A28면)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조선일보>가 '왜? 뉴스속의 과학'이란 지면코너를 빌어 광우병 공포를 나름 과학적으로 분석한 기사인데, 현존하는 '광우병 괴담'과 관련하여 '뇌송송 구멍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광우병이 공포의 대상인 것은 똑같은 증상의 병이 사람에게서도 나타나기 때문… 과학자들은 '프리온'이라는 미지의 단백질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고열이나 자외선 등에서도 독성을 잃지 않는다. 멸균소독이 불가능하다는 뜻… 이들은 모두 뇌에 구멍이 뚫려 죽으며 전염된다…."(<광우병 공포 이유있다>)

 

'광우병 괴담'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2001년 1월 29일자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은 그야말로 쇼킹 그 자체입니다. "광우병에 걸리면 뇌가 녹아서 처참하게 죽는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아교질, 젤라틴 등으로 만든 화장품, 캔디를 통해서도 광우병이 감염된다고 한다", "쇠고기를 안 먹는다고 안심할 것도 아니다" 등등, 이걸 보고도 공포와 전율에 사로 잡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미국 발병 광우병 소식도 여과없이 보도하던 <조선>

 

 

'광우병 공포'를 한국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조선일보>의 열심은 그 뒤에도 꾸준히 계속됐습니다. 시간을 절약할 겸, 메들리로 들어 보세요.

 

"광우병은 사람을 포함, 모든 동물에 정상적으로 발견되는 '프리온'이라는 희한한 단백질이 변형됨에 따라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 변형된 '프리온'이 뇌조직에 침투하면 뇌 조직에 스펀지 구멍을 만들면서 뇌기능을 마비시킨다…."(<'광우병' 공포 확산/한국 안전지대 아니다>, 2001.02.01, A41면)

 

"이 변형된 '프리온'이 음식 등을 통해 인체에 침투하면 뇌 조직을 변화시키면서 뇌기능을 마비시킨다… 이 변형 프리온은 끓여 먹어도 죽지 않고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광우병' 논란, 어떻게 걸리나>, 2001.02.07, A5면)

 

"작년 말 후생노동성은 의약품·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유럽산 소 장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광우병 발생지역이 아니라도 동물성 사료를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기자수첩, <일의 광우병 대책>, 2001.02.09, A3면)

 

그리고 2002년 4월 22일,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광우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김용선 한림의대 교수의 충격적인 글이 <조선일보> '과학상식'을 타고 이 땅을 강타합니다.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에 걸린 사람은 결국 광우병에 감염된 소처럼 뇌에 구멍이 생겨 100% 사망하게 된다… 특히 최근 연구 결과, 한국인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었을 경우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nvCJD)'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유전 형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은 인구의 48%, 우리나라는 인구의 98%가 nvCJD에 걸리기 쉬운 유전 형질을 보유하고 있다."(<인간광우병>, A11면)

 

<조선일보>는 이렇듯 자사 지면을 통해 '광우병 공포'를 무한 증폭·확산시키는 한편, '기자수첩' 등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광우병 대응이 한가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질타해 마지 않았습니다.

 

"미국발 광우병 등으로 '육류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 당국의 대응은 한가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국민들의 증폭된 불안감 뒤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99.99% 안전해도, 정부가 나머지 0.01%의 위험관리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믿음을 못 주는 것이다. 농림부 장관이 "먹어도 된다"고 해도, 고깃집이 전보다 한산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2003.12.29, A3면)

 

'아침논단' 필자인 소설가 정이현이 아줌마들의 수다를 빌어 시중에 떠도는 광우병 공포를 생생하게 전한 2004년 1월 5일자 칼럼 <소들의 복수>도 눈길을 끌기에 층분합니다. 그 중 한 대목을 들어 보시죠.

 

""잠복기가 최소 4년이라던데…. " "그건 소한테 나타나는 광우병 얘기지. 인간의 잠복기는 십 년도 넘는대. " "그렇다면 혹시 이미…?" 모두들 그쯤에서 입을 닫았다. 더 깊이 생각해봐야 마음만 상하는 일이었다…(중략)…특히 광우병이라고 알려진 '해면상 뇌질환'에 감염된 소와 사람은 뇌조직이 스펀지처럼 숭숭 구멍이 뚫리고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사망한다는 점에서 공포스럽다…."

 

미국에서 발병한 광우병 소식도 <조선일보> 지면을 타고 여과없이 소개됐습니다. 2003년 12월 캐나다에서 수입된 젖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2005년 6월 24일 미국에서 태어난 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됐고, 2006년 3월 미국에서 세 번째 광우병 감염 소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그것입니다.

 

2007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 'Books섹션'에 실린 서평기사(D2면)도 빼놓으면 섭하지요. 생화학자 콤 켈러허 박사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을 추적·경고한 '굴없는 공포, 광우병'란 책을 소개한 글인데, 서평 말미에 <조선일보> 기자가 써넣은 글이 이러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미국에서 소고기 수입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당국은 프리온이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기 때문에 안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살코기와 피에서도 프리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지면을 뚫고 들려온 그 '놈 목소리'

 

 

글이 길어질까봐 대충 찾은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범인의 윤곽을 찾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서 생생하게 들려온 '그 놈 목소리'를 핵심만 간추려 다시 들어 보시죠.

 

1. "광우병에 감염되면 소처럼 뇌가 녹아서 처참하게 죽는다. 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열을 가해도 죽지 않고 전염되며, 치사율은 100%에 이른다."

 

2. "광우병에 걸린 소의 아교질, 젤라틴 등으로 만든 화장품, 캔디를 통해서도 광우병이 감염된다. 그러니 쇠고기를 안먹는다고 안심해선 안된다."

 

3. "일본은 광우병 감염을 우려, 유럽산 소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이나 의약품, 화장품 등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영국의 한 소녀는 쇠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고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에 걸렸다. 미국에서도 광우병 소가 세번째 발견됐다."

 

4. "살코기와 피에서도 프리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는 만큼, 살코기만 수입한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의 98%가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유전형질을 보유하고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상술한 4가지는 <조선일보>가 비난해 마지 않는 '광우병 괴담'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런 '괴담'을 1996년부터서 자사 지면을 통해 끊임없이 전파해 온 당사자가 바로 <조선일보>였다는 사실! 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제 입으로 내뱉은 말도 기억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혹은, 분리된 두 자아가 서로를 공격하는 정신분열? 아니면, 제 잘못을 남에게 덮어 씌우는 파렴치? 그도 아니면, '뇌송송 구멍탁' 된다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태그:#광우병 괴담, #조선일보 치매 , #뇌송송 구멍탁, #조선일보 촛불이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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