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구타 끝에 강제로 머리와 수염을 깎인 바비 샌즈가 음식물과 똥으로 도배 한 감방 안에서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다.

무자비한 구타 끝에 강제로 머리와 수염을 깎인 바비 샌즈가 음식물과 똥으로 도배 한 감방 안에서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다. ⓒ 채널4프로덕션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오후 북아일랜드 데리시. 영국이 재판도 없이 구속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자 이에 항의하며 공민권 획득을 위해 평화행진을 하는 아일랜드 시민들. 그들을 표적으로 정조준 발사한 뒤 몇 명을 맞췄냐며 무공을 자랑하는 영국 공수부대원들. 미성년자 6명 등 14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한 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사건.

<본 시리즈>와 <그린존>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어 가듯 '데리의 학살'을 재구성한 실화 <블러디 선데이>의 줄거리입니다.

당시 데리시에 살았던 그린그래스 감독은 학살 뒤 아일랜드공화군에 가입해 활동합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재현한 다큐멘터리식 영화는 진실은 단순히 보이는 사실들의 조각모음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힘과 실천에 있다는 것을 적시합니다.

그리고 9년 뒤인 1981년 5월 5일 새벽 벨파스트 메이즈 교도소. 데리의 학살 당일 공수부대의 실탄 발사에 맞서 돌멩이를 던진 테러 혐의로 체포되어 14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27살의 청년 바비 샌즈가 66일간의 옥중단식투쟁 끝에 사망합니다. 영화 <헝거(2008년작, 스티브 맥퀸 감독)>는 벌거벗은 맨몸뚱이 하나로 투쟁의 최전선에서 굶어 죽은 북아일랜드 투쟁의 상징 바비 샌즈에 대한 기록입니다.

IRA 전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맨몸뚱이 투쟁

1980년 12월. 아일랜드공화군(IRA)들의 정치적 지위를 박탈해 테러범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실제 목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 중인 IRA 전사들은 리더 바비 샌즈(마이클 파스벤더 분)를 구심으로 정치범 대우를 촉구하며 옥중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한겨울 추위에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고 담요 하나만 두른 채 버팁니다. 세수와 이발 등을 거부해 봉두난발한 몰골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아 피골은 상접하지만 두 눈만은 형형한 빛을 뿜어댑니다. 여기에 음식물과 똥을 모아 푹 삭인 뒤 감방 안을 도배해 바닥과 벽에는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똥파리가 날아다닙니다. 각자의 감방에서 소변을 모아 동시에 문틈으로 밀어내 사방 복도를 오줌바다로 만들기도 합니다. 

 대소변투쟁으로 돼지우리보다 더한 감방 안을 청소한 뒤 침대와 책걸상을 넣어주지만 모두 부숴버린다. 기동타격대의 곤봉과 군홧발에 난타당하는 IRA 전사.

대소변투쟁으로 돼지우리보다 더한 감방 안을 청소한 뒤 침대와 책걸상을 넣어주지만 모두 부숴버린다. 기동타격대의 곤봉과 군홧발에 난타당하는 IRA 전사. ⓒ 채널4프로덕션


교도소의 대응은 즉각적이며 단호합니다. 무자비한 구타 속에 머리와 턱수염을 가위로 듬성듬성 자른 뒤 욕조에 집어넣어 밀대로 빡빡 밀며 기절 시켜버립니다. 감방 안을 청소한 뒤 넣어준 침대와 책걸상을 바비 샌즈를 필두로 모두 부숴버리자 기동타격대를 투입해 진압봉으로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부러지도록 흠씬 두들겨 팹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바비 샌즈를 구심으로 한 IRA 전사들의 소내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차갑게 응시합니다. <블러디 선데이>처럼 들고찍기 기법으로 촬영하는 대신 신념과 투쟁이 씨줄로 구타와 고문이 날줄이 되어 교차하는 장면 하나하나를 꾹, 꾹 직조하듯이 기록해 나갈 뿐입니다.

극한의 맨몸뚱이 투쟁에 카메라를 고정한 이유 

영화는 집요하리만큼 바비 샌즈를 비롯해 IRA 전사들의 벌거벗은 몸뚱이에 집중합니다. 마치 보고문학적 관점에 서서 역사적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듯이 감옥 안에서 떨고 맞고 굶는 그들의 육체적 항거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카메라가 일체의 곁가지를 걷어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처절한 단식으로 죽어가는 바비 샌즈의 뼈만 남은 육신. 피부가 말라비틀어지면서 썩어 들어가자 간병인이 연고를 발라 주고 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처절한 단식으로 죽어가는 바비 샌즈의 뼈만 남은 육신. 피부가 말라비틀어지면서 썩어 들어가자 간병인이 연고를 발라 주고 있다. ⓒ 채널4프로덕션


먼저 그들의 몸뚱이가 부딪치는 공간의 특수성입니다. 영국으로서는 일개 테러범들을 수용하는 교도소에 불과하지만, 전사들의 입장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 두 가지 시각은 맨몸의 뼈와 살 속으로 군홧발과 곤봉세례가 날 것 그대로 파고들수록 공간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대처 정부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도 작용합니다. 정치범 대우와 함께 자율복장 허용, 감형제도 부활 등을 요구하는 전사들에게 "테러는 테러일 뿐 정치는 아니"라고 못박는 철의 여인을 움직일 수 있는 선택은 하나 뿐. 극한의 투쟁을 국제사회에 알려 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단식이 시작되자 이들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고조됐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특사를 보내 단식중단을 권했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면회를 했습니다. 특히 바비 샌즈가 그 와중에 영국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주민들의 항거에 불을 댕기는 등 이들의 맨몸뚱이 투쟁은 북아일랜드 투쟁사에 커다란 획을 긋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책임소재를 따져 물어 역사의 증인이 될 것을 주문하는 <블러디 선데이>나 <화려한 휴가>와는 카메라의 초점이 다릅니다. 정치적 신념을 위해 단호하게 육체적 생명을 접는 그들의 맨몸뚱이를 통해 관객들을 진실한 감동의 성찰로 이끄니까요.   

조국에 대한 사랑과 신념을 고해성사하다

그러나 대처 정부는 끝내 그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곧 IRA를 합법적 단체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바비 샌즈가 단식투쟁에 돌입하기 전 데리시에서 온 도미닉 모란 신부(리암 커닝엄 분)와 나누는 논쟁은 이를 증언해 줍니다.

 바비 샌즈가 모란 신부에게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결행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 이 장면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성찰케하는 한 편의 역사서로도 손색이 없다.

바비 샌즈가 모란 신부에게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결행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 이 장면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성찰케하는 한 편의 역사서로도 손색이 없다. ⓒ 채널4프로덕션


15분 이상 롱테이크(한 장면을 편집이나 전환 없이 길게 찍는 촬영기법)로 진행되는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입니다. 카메라가 역광으로 두 사람의 실루엣을 고정시킨 가운데 어린 시절과 북아일랜드의 역사 그리고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하기까지의 고뇌 등을 밀도 있게 천착하는 이들의 대화는 한 편의 역사 텍스트마냥 가히 일품입니다.

팽팽하게 신경 줄을 잡아당기는 두 사람의 논쟁이 누구의 선택이 옳고 그른지를 확인하는 자리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바비 샌즈도, 격렬하게 반대하는 모란 신부도 압니다. 그것은 결행을 앞둔 바비 샌즈가 조국 아일랜드에 띄우는 사랑의 송가이며,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는 내적 독백이자 마지막 고해성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모란 신부와의 해후를 끝으로 바비 샌즈는 마침내 대처 정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IRA 전사 75명이 한 명이 죽으면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전사가 단식을 이어가는 '아사동맹'을 결의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마지막 전투를 시작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바비 샌즈는 아름다운 벨파스트 숲속을 달리는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며 두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둡니다. 그의 죽음 이후 전사들의 동맹단식이 뒤를 잇습니다. 그해 10월까지 이어진 옥중단식투쟁으로 9명의 전사들이 더 숨지고서야 대처 정부는 조건부 수용을 하기에 이릅니다.

바비 샌즈에서 박관현까지, 그 핏빛 진실

슬픈 역사가 빼닮은 아일랜드와 한반도. 외세의 침략으로 갈가리 찢겨지면서도 '저항의 역사'를 줄기차게 써 온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데리와 광주 모두 일요일에 공수부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고, 아직까지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데리의 바비 샌즈와 맞닿는 광주의 박관현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16일 밤 광주. 횃불의 바다를 이룬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에서 시위대의 가슴을 뒤흔드는 연설이 확성기를 타고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로 활활 타오르자며 사자후를 토해내던 그는 당시 27살의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도청에서 결사항전한 윤상원의 대학후배이자 들불야학 동지였던 그는 하지만 5·18 광주민중항쟁을 관통하지 못했습니다.

5월 17일의 일제검거를 피해 은신한 박관현은 요꼬공장노동자로 일하던 82년 4월 5일 체포되어 내란죄 등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박관현은 광주교도소에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40여 일간의 옥중단식투쟁 끝에 그해 10월 12일 새벽, 피를 토하며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단식을 둘러싸고 제기된 폭력과 고문 등 죽음의 실체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버렸습니다. 

잊혀진 역사의 한 조각이었던 바비 샌즈를 역사의 심장으로 되살려 낸 영화 <헝거>처럼 박관현 또한 역사의 불꽃으로 오롯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탓에 모든 장기가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던 바비 샌즈가 남긴 마지막 시처럼 박관현의 그 핏빛 진실도 결코 가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지만,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는 가둘 수 없다."

헝거 바비 샌즈 박관현 광주민중항쟁 아일랜드광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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