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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6일 김영국(전 불교 조계종 대외협력위원)씨를 인터뷰한 뒤 판례검색 사이트에서 11년 전 한 사건의 판결문(http://is.gd/bXH9K)을 찾아봤다.

11년 전 대법원, 이명박 의원에게 범인도피 혐의 유죄 확정

1999년 4월 9일 대법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 혐의에 대해 벌금형(유죄)을 확정했다.

사건을 다시 살펴보면, 당시 이명박 의원은 ▲ 1996년 4·11 총선에서 법정 선거비용 이상의 돈을 뿌리고 ▲ 같은 해 9월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한 김유찬(전 비서관)을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에 대해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유죄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선거법 위반을 폭로한 김유찬씨가 그해 9월 15일 외국으로 출국할 때만 해도 이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보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게 분명하다. 김씨가 도피한 지 이틀 만에 "김씨가 국민회의(당시 야당)의 회유와 공작에 넘어가 사실과 다른 폭로를 하게 된 것이다. 국민회의는 한 젊은이를 더 이상 정치공세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파문 2라운드' '이명박 선거법 위반'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을 보도한 <조선일보> 1996년 9월 18일자 기사. 신문 속 사진은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에서 김유찬으로부터 받았다는 자필 편지를 공개하는 장면.
▲ '이명박 파문 2라운드' '이명박 선거법 위반'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을 보도한 <조선일보> 1996년 9월 18일자 기사. 신문 속 사진은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에서 김유찬으로부터 받았다는 자필 편지를 공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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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찰이 범인 도피에 관여한 참모들을 체포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지만, 이 의원은 "두 사람이 구속된 것은 충정의 심정에서 뜻밖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것이 나오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자신했다(1996년 9월24일 국회 의원회관 기자회견).

그러나 당시에도 1500만원이 넘는 김유찬의 도피 자금을 동료 직원들이 자신들의 지갑을 털어대 줄 수 있었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 사실이다.

결백을 주장하는 이 의원에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최종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이명박, 이△△, 강△△이 공모하여 벌금 이상의 죄를 범한 피고인 김유찬을 해외로 도피시킴에 있어 김유찬이 죄를 범한 자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한 (하급법원의) 조치는 정당하다."

이 의원은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부하직원들이 비리제보자를 빼돌렸다고 주장한 데 반해 법원은 대통령이 두 사람과 공모자라고 단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범죄에 대해 당시 '야당지'였던 <동아일보>는 사설(96년 9월24일자)에서 "이명박 사건은 한마디로 저질 코미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당사자인 이 의원이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고 비난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영미권에서 범인 도피는 사법을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진다"고 말했다. 정치선진국이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유권자들이 용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사건에 대해 대통령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지만, 2007년 12월 대선에서 차기 국정책임자의 도덕성을 묻는 질문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었다.

그해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에서 "김유찬씨의 폭로 후 범인 도피 공범이라는 판결에 승복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은 있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드렸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96년과 2010년에 벌어진 두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런데 봉은사(서울시 삼성동) 주지 명진 스님의 폭로로 촉발된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논란은 14년 전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김영국씨는 3월 23일 '봉은사 외압' 기자회견을 막으려고 했던, 대통령직속기구의 홍보책임자 A씨의 입에서 "기자회견 하지 않고 잠적하면 비용을 다 대주겠다"는 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김씨를 술자리에서 설득하는 과정에서 바깥으로 나가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과도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고, A씨가 '잠적 비용'이나 '뒷조사'를 언급했다"는 게 김영국씨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기자는 A씨의 해명을 듣기위해 7일 하루 내내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술자리에 동석한 일행 중 한 명도 A씨가 당시에 '잠적'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간접확인해 주었다.

김씨는 또한 "A가 나의 10년 후배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지 않고서야 절대로 내게 그런 얘기를 할 인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회의원 보좌관과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A씨가 무슨 권능이 있다고 10년 선배의 잠적 비용을 대주겠다고 했을까?

96년과 2010년에 각각 벌어진 두 사건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신원불명의 권력자가 부하 A씨와 공모해 폭로자 김영국을 잠적시키려고 한 2010년의 의혹은 이 대통령이 부하들과 공모해 폭로자 김유찬을 도피시키려고 한 96년의 사건과 비슷한 얼개로 짜여져 있다. 폭로자와 절친한 지인이 사건을 덮는 '중간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유사하다.

그러나 96년에는 명백한 범죄를 덮기 위해 폭로자를 도피시켰다면 2010년에 불거진 의혹은 여권의 도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을 덮기 위해 폭로자를 덮으려고 했다는 차이가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좌파 주지' 발언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기자회견에 대해 "VIP(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 보고까지 받은 점도 권력의 '오버'로 비쳐진다.

법정에서 가려질 봉은사 외압 진실공방... 이동관, 개입설 강하게 부인

96년 사건이 이명박 의원의 범죄로 결론이 났다면 2010년 사건에서 권력의 개입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것도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국-명진 스님과 이동관 수석의 주장이 팽팽히 엇갈리고 있지만, 사건이 영영 미궁에 빠질 것 같지는 않다. 3월22일 종로구 카페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증명해 줄 '3인의 선후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동관 수석은 "김영국씨와 전화통화한 사실도 없고, 그에게 사면복권을 제안한 일이 없다"며 사건 개입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 의혹 사건의 진실공방도 1996년 MB의 범인도피 사건처럼 법정으로 넘어간 상태다. 이번에도 법원이 지난 99년 4월 9일 내렸던 판결과 흡사한 결정을 할지, 아니면 이 수석의 손을 들어줄지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가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전과'를 새삼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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