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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지한강공원 강변 산책로 풍경.
 난지한강공원 강변 산책로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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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실종됐다. 어느 정도 우려를 하고 있었던 일이다. 몇 해 전부터 3, 4월이 돼도 추운 날이 지속되는 양상이었다. 그러다 봄이 오는가 싶게 바로 여름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주만 해도 이상한파라며 저온 현상으로 농작물이 해를 입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이번 주엔 느닷없이 초여름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며칠 전까지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느니 마느니 했는데, 그새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이제는 정말 여름 반팔로 갈아입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게 날이 무덥다.

처음엔 그렇게 더운 줄 몰랐다. 바람이 살살 부는 게 선선한 느낌이었다. 자전거타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북악터널을 넘어야 해서 날이 더운지 추운지 가릴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 북악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땀에 젖은 내의가 가슴에 철썩 들러붙는데 아차 싶었다. 마치 물에 젖은 수건을 걸친 기분이다. 내의가 땀에 젖은 정도로 봐서 날이 꽤 더운 게 분명하다.

 난지한강공원 '거울분수'.
 난지한강공원 '거울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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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봄이 오는 듯했는데, 벌써 여름?

나만 더웠던 게 아닌 모양이다. 난지한강공원 거울분수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꽤 몰려 있다.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 한가운데를 아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이 제일 신났다. 분수대를 한 번만 더 지나가자고 조른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서다. 초여름 날씨가 분명해 보이는 이날, 난지한강공원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이곳 분수대다. 지난해 말 분수대를 만들 때만 해도, 이곳 분수대가 자전거 놀이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홍제천 한강 합수부.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홍제천 한강 합수부.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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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대교 북단, 자전거를 타고 하중보를 건너는 사람들.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다.
 방화대교 북단, 자전거를 타고 하중보를 건너는 사람들.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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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렸다고들 생각해서인지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기온이 오르면 오를수록, 한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서 방화대교 아래 하중보를 넘어 행주산성 쪽으로 식도락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예전엔 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으로 전해 오던 길이 이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가는 아주 평범한 길이 되어가고 있다. 그 덕에 창릉천 자전거도로 역시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창릉천 자전거도로.
 창릉천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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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창릉천에서는 낚시꾼들이 제철을 만났다. 창릉천에서 물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창릉천 깊이 올라왔던 물고기들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나물을 캐는 사람들도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헬멧을 쓴 채 천변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캐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손에 나물 캐기에 적당한 작은 칼이 들려 있는 것으로 봐서 작정을 하고 나온 게 분명하다. 자전거도 타고 나물도 캐고 물고기도 잡고 여행도 하고, 세상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창릉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면, 서오릉(고양시 용두동)을 아주 쉽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주변 풍경이 다소 단조롭고 황량한 편이어서 따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한강의 다른 지천에 비해 개발이 덜 되어 있는 까닭이다. 한편으론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직 창릉천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그게 아직까지는 이곳을 개발하는 데서 얻는 정치 경제적 소득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이곳에서 하천이 개발이 덜 된 상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서오릉 잔디밭으로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
 서오릉 잔디밭으로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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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모습의 숙종과 인현왕후... 초라한 장희빈

서오릉은 도성 서쪽에 다섯 개의 능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능을 관리하는 기관이 편의상 붙인 이름이라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능 안에는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인물들이 잠들어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들의 무덤이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특히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낮의 일요일, 이곳은 밀려드는 자동차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요즘은 <동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이곳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과 최숙빈 이야기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동이'가 최숙빈 역을 맡았다. 장희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최숙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방송 초기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희빈 또한 기존의 악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명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나란히 묻힌 곳. 사진 왼쪽이 인현왕후, 오른쪽이 숙종. 명릉에는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도 함께 묻혀 있다.
 명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나란히 묻힌 곳. 사진 왼쪽이 인현왕후, 오른쪽이 숙종. 명릉에는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도 함께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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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9대 왕인 숙종은 부인이 모두 9명이었다. 그중 정실 왕비만 3명이었다. 왕비로는 차례로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있었고, 후궁으로는 장희빈과 최숙빈 등이 있었다. 장희빈이 한때 인현왕후를 밀어내고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인현왕후를 모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빈으로 강등됐다.

서오릉에는 숙종과 세 왕비, 그리고 장희빈의 묘가 있다. 조선 역사상 한 시대에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죽어서 다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최숙빈의 묘마저 서오릉에 함께 있었다면 좀 더 극적이었을 텐데, 정실들이 묻힌 자리에 후궁들까지 묻힐 자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최숙빈의 묘는 서오릉에서 북쪽으로 2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장희빈의 묘(대빈묘)는 애초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것을 1969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숙종과 인현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명릉과는 완전히 반대편 구역에 들어섰다. 군사정권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장희빈의 묘는 주변에 석장을 두르는 등 어느 정도 위엄을 갖추기는 했으나, 다른 왕가의 무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왜소하다. 한때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사람의 무덤치곤 상당히 초라하다.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서오릉 안에 별도의 능(익능)에 묻혀 있고,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가 숙종과 함께 하나의 능(명릉) 안에 묻혀 있는 것에 비하면, 장희빈은 죽어서까지 홀대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긴 살아서 그렇게 미워했던 인현왕후가 숙종과 함께 묻혀 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멀찌감치 돌아앉아 있는 게 더 나을 법하다.

 대빈묘. 장희빈이 잠든 곳. 서오릉 안의 묘 중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빈묘. 장희빈이 잠든 곳. 서오릉 안의 묘 중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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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빈이 잠든 대빈묘.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장희빈이 잠든 대빈묘.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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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악녀' 이미지를 벗기 시작하다

이긴 자가 선이 되는 세상에서 패배자였던 장희빈은 의심할 것 없는 악녀였다. 현대에도 그 이미지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 악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점차 변하고 있다. 장희빈은 역사서에 희대의 악녀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악녀가 현대에 와서는 연민과 동경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인 아버지와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 나라의 왕비가 되기까지 그가 겪은 인생역정이 일면은 일반 서민들이 희구하는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악녀라는 말조차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해가고 있다. 남녀차별이 심한 사회에 성공한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선 '나쁜 여자'라는 이름을 얻는 한이 있더라도 한세상 독하게 살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시대를 앞서 간 여성으로서 장희빈의 삶이 현대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서오릉에서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무덤이 장희빈의 묘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인물도 없으니 당연히 가던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장희빈의 무덤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앞에서 깍듯이 '예'를 올리고 가는 여성도 있다. 장희빈이 그들 사이에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장희빈의 묘 앞을 지나쳐갈 때도 20대로 보이는 2명의 여인이 묵념을 하는 듯 무덤가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다. 장희빈이 죽어서 후세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추모를 받게 될 줄은 아마 그 자신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있어 장희빈의 묘는 그나마 덜 쓸쓸해 보인다.

 최숙빈이 잠든 소령원.
 최숙빈이 잠든 소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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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보자면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최숙빈의 묘(소령원)가 더 쓸쓸해 보인다.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숙종과 같은 묘역 안에 묶여 있는 장희빈의 묘에 비해, 최숙빈의 묘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그들에게 그런 세속적인 거리가 별 의미가 없는 줄은 안다. 하지만 산 사람의 눈에는 이 모든 게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최숙빈 역시 장희빈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후궁의 자리에까지 오른 여인이다. 두 사람 모두 그 당시 왕가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전면에 서 있었다. 낮은 계급 출신으로 태어나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 '빈'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마지막엔 후대 왕의 어머니로 이름을 남겼다. 장희빈은 조선 제20대 왕인 경종을 낳고, 최숙빈은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를 낳았다.

한 시대에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여인이 둘이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최숙빈은 나중에 장희빈의 잘못을 들춰내, 사약이 내려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오릉에 와서 보니, 조선 역사상 이들처럼 극적인 사연을 간직한 여인들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방화대교에서 서오릉까지는 자전거로 약 10km 거리다. 가는 길이 비교적 단순하다. 창릉천을 따라 난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다,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뚝방길로 올라간다. 뚝방길 역시 오가는 차량이 적어 한적한 편이다. 뚝방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도로를 조금 더 타고 올라간다. 날이 메말라서 그런지 도로에 먼지가 많은 게 조금 흠이다.

서오릉 가는 길 1) 창릉천 자전거도로 끝나는 지점에 나타나는 길, 이 위로 올라서면 뚝방길이 나온다, 2) 뚝방길, 3) 뚝방길을 끝까지 가다 보면 나오는 큰 도로. 이곳에서 좌회전, 4) 도로를 타고 순창천 파란 표지판이 보일 때까지 직진.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 5) 천 위로 난 시멘트길을 쭉 따라가면 큰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건너가면 약간 윗쪽에 서오릉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온다. 6) 서오릉 입구
▲ 서오릉 가는 길 1) 창릉천 자전거도로 끝나는 지점에 나타나는 길, 이 위로 올라서면 뚝방길이 나온다, 2) 뚝방길, 3) 뚝방길을 끝까지 가다 보면 나오는 큰 도로. 이곳에서 좌회전, 4) 도로를 타고 순창천 파란 표지판이 보일 때까지 직진.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 5) 천 위로 난 시멘트길을 쭉 따라가면 큰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건너가면 약간 윗쪽에 서오릉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온다. 6) 서오릉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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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오릉에는 4월 30일과 5월 2일 이틀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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