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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
 MBC 드라마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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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신단의 숙소인 모화관에 위장 잠입했다가 감찰부 궁녀라는 신분이 탄로나 청나라 사람들에게 쫓기던 동이(한효주 분). 그는 모화관 마당에서 숙종(지진희 분)과 맞닥뜨렸다. 숙종은 국왕 신분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동안 숙종이 그저 한성부 판관(종5품)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동이. 그간 여러 차례 우연히 만난 이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한낱 '서울시청 고위 공무원'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저씨가 국왕 신분으로 모화관을 방문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동이. 청나라 사람들에게 쫓기던 동이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한성부 판관'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 아저씨가 옆의 측근으로부터 '전하' 소리를 듣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순간 의아해하던 동이. 사태를 짐작했는지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4일 방영된 MBC 드라마 <동이> 제14부는 그렇게 여운을 남겼다.

역사현장에서 부딪힌 인물들이 이미 그 이전부터 서로 인연을 갖고 있었다는 식의 설정은 종래의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예컨대, 정조 임금의 최측근인 홍국영의 야망을 다룬 예전의 어느 사극에서는 어린 시절의 정조와 홍국영이 길거리에서 스쳐가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다. 또 <불멸의 이순신>의 작가도 이순신과 원균이 어릴 적부터 서로 알고 지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한 바 있다. 

<동이>에서도 동이 즉 최숙빈(숙빈 최씨, '동이'는 실명 아님)과 숙종 사이에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을 두고 있다. 3월 30일의 제4부에서부터 숙종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동이의 아쟁 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 4월 6일의 제6부에서는 장악원 노비인 동이가 헛간에서 우연히 숙종을 만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계속 우연히 부딪혔고, 그때마다 숙종은 자신의 신분을 한성부 판관으로 위장하곤 했다.

그렇다면, 최숙빈과 숙종의 실제 만남은 어땠을까? 궁녀와 지존의 극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역사학은 일종의 재판과 같은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진실이 있더라도, 그 진실을 입증할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심증만으로 그것을 역사학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 기록이나 유물로 입증되는 것만 역사학적 사실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적 사실이란 '실제 있었던 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료에 의해 입증된 일'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에서는 역사학적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 이는 재판에서 사건 당사자가 알고 있는 진실과 판사가 인정한 사실이 다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과 관련하여서도 우리는 역사학적 사실과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흔히 하는 말처럼 남녀 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숙빈과 숙종이 처음 만난 때는 숙종 18년(1692)이었다. 이때 최숙빈의 나이는 23세였다. 최씨가 7세의 나이로 입궁한 때가 숙종 2년(1676)이므로, 두 사람은 무려 16년간이나 같은 공간에 살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아무리 궁녀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왕과의 접촉이 극히 힘들었다 해도, 한 공간에서 16년간이나 같이 살다 되면 어쩌다 한 번이라도 한쪽이 다른 쪽을 봤거나 혹은 양쪽이 서로를 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드라마 <동이>에서와 같은 드라마틱한 상황은 물론 없었겠지만, 그래도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특히 남녀 간의 일이란 더욱 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아주 없었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의 첫 만남에 관한 사료의 내용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사료에 기록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숙종 18년(1692) 이전에 이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이들의 첫 만남을 증언하는 사료는 이문정(1656~1726년)이 지은 <수문록>이다. 이문정은 최숙빈보다 14세가 많은 사람이다. 동지중추부사(종2품, 차관급)를 지낸 이문정은 신임사화(1721~1722년) 이후 학문과 집필에만 전념한 인물이다.

인현왕후가 폐서인(廢庶人)되고 장옥정이 중전으로 있을 때인 숙종 18년(1692)의 상황을 보여주는 <수문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대왕(先大王, 죽은 임금 즉 숙종)이 하루는 밤이 깊어진 후에 지팡이를 들고 궁궐 안을 돌아다니다가 나인들의 방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한 나인(궁녀)의 방만 등촉이 휘황찬란하였다. 밖에서 몰래 엿보니,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 나인이 두 손을 마주잡고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선대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밑줄 친 부분은 기사 본문에 인용된 부분.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밑줄 친 부분은 기사 본문에 인용된 부분.
ⓒ <수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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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에 따르면, 어느 날 한밤중에 궁궐 안을 거닐던 32세의 숙종이 한 궁녀의 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방의 조명이 유독 화려해서, 시선이 그리로 쏠린 것이다.

숙종은 평소에 최측근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리 품위 있는 군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신을 중시하는 군주 같았으면, 위와 같은 경우에 궁금증을 억제하고 그냥 지나치거나 아니면 측근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저 방에는 밤늦도록 불이 켜 있네"라고 한 마디 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숙종은 좀 '솔직한' 군주였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최측근들에게 숨기지 않았던 듯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그 의문의 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문 앞에 다가선 숙종은, 창호지에 침을 묻혔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왕의 체면을 내팽긴 채 방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방안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두 손을 마주잡은 채로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남들 다 자는 야심한 시각에 말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결국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그 궁녀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냐고. 이 궁녀가 바로 훗날 영조를 낳게 될 최씨였다. 이것이 두 사람의 우연한 첫 만남이었다.

이후의 기사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날 밤 궁녀 최씨는 폐서인된 인현왕후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식을 홀로 거행하다가 숙종에게 우연히 들켰고 그런 모습에 감동된 숙종이 최씨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 <수문록>의 설명이다.

이문정의 <수문록>.
 이문정의 <수문록>.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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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뒷부분은 드라마 <동이>의 스토리 전개를 보아가며 이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이 숙종 18년(1692)의 어느 날 한밤중에 우연히 그리고 숙종의 '솔직한' 호기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다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점이 있다. <수문록>은 관찬 역사서가 아니다. 이문정이 개인적으로 집필한 정치평론서 같은 책이다. 그리고 이문정은 궁궐 안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인물이 어떻게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을 알 수 있었을까? 대체 그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훗날의 독자들이 그 점을 궁금해 하리라 생각했는지, 이문정은 위의 이야기 앞에 정보의 출처를 제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교(孝橋) 옆에 유경관(劉敬寬)이란 사람이 있다. 사람됨이 근후(謹厚, 조심스럽고 신중함)하고 지식이 있어서, 일찍이 사알(司謁)로서 선왕(先王, 숙종)을 육칠년 모시다가 병이 들어 은퇴한 사람이다."

효교는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에 있었다. 그리고 사알이란 궁중에서 왕명전달을 담당하는 액정서(掖庭署)의 책임자인 정6품 관직이었다. 비록 품계는 낮지만 국왕과 가까이서 접촉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바로 그 액정서 사알을 지낸 유경관으로부터 이문정은 위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유경관의 증언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수문록>을 신뢰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왕을 6~7년간 보좌한 사람이 증언을 하고 참판급(차관급)을 지낸 인사가 집필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차관급 대우를 받은 어느 학자가 대통령을 6~7년간 보좌한 측근의 증언을 기초로 대통령과 첩의 첫 만남에 관한 글을 썼다면, 우리는 그 기록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논란은 있겠지만, 대통령 측근이 증언하고 차관급 인사가 집필했다는 사실이 갖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숙종을 모신 관료의 증언과 종2품을 지낸 관료의 집필을 기초로 할 때에,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은 숙종 18년(1692)의 어느 날 밤중에 우연히 이루어졌다. 한밤중에 유독 등불이 환히 켜진 한 궁녀의 방이 숙종의 눈에 띄었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이 방안을 엿보다가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일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던 것이다.

물론 앞에서 유보한 바와 같이 남녀 간의 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그 이전에 두 사람 중 한 쪽이 다른 쪽을 본 적이 있거나 혹은 두 사람이 서로를 보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는, 기록을 토대로 할 때에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숙종 18년(1692)에 그렇게 이루어졌음을 설명하는 것뿐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드라마 속에서처럼 숙종의 신분이 감춰진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수문록>에 묘사된 실제의 상황이 드라마 속의 상황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국을 다스리는, 혈기왕성한 32세의 국왕이 한밤중에 궐내를 돌아다니다가 한 궁녀의 방을 보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생겨 방문을 열어본 일이 계기가 되어, 훗날 그 궁녀가 정1품 빈이 되고 그 여인의 몸속에서 영조 임금이 태어났다는 사실. 한밤중에 이루어진 이 역사는, 별다른 윤색과 픽션을 가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태그:#동이, #최숙빈, #숙빈 최씨, #숙종, #수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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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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