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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를 완전 개방해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정부에 대하여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지도 2년이 지났다. 국민들은 광우병 유입에 대한 안전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상태로 수입이 졸속 결정된 것에 대하여 제대로 된 조건으로 재협상할 것을 요구했으나, 집권 초기의 정권은 국가 기관과 언론을 총동원하고 이에 합세한 일부 교수를 이용하여 무력과 일방적 홍보로 명박산성을 쌓고 무시하였다. 국내나 공항에서 전염병 확산이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적용하고 있는 방역과 검역의 사전주의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상황이었다.

 

뒤돌아 보면 당시 누구의 주장이 타당했는지는 명확하다. 정부는 정부의 협상조건이 국제적인 과학기준에 근거한 것이라서 조만간 우리의 주변국이 모두 한국과 같은 조건으로 쇠고기를 수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WTO에 제소당할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당시 정부는 법정전염병인 광우병을 전염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유럽 등에서 엄격한 사전주의원칙에 따라 수백만 마리의 소를 살처분하는 방역이 있었기 때문에 발병이 감소되고 있는 상황을 악이용해서 광우병이나 인간 광우병은 곧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점쟁이 수준의 예언까지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주변국은 단 한 나라도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WTO에 제소당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오히려 촛불의 예상과 같이 한국이 캐나다로부터 WTO에 제소 당했다. 우리들의 삶을 위한 과학을 특정 정권의 시녀로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은 왜 4월 초에 10톤 넘는 쇠고기를 폐기했을까

 

다행히 국제적으로 광우병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관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탓에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발생은 감소 추세에 있으나 광우병은 유럽은 물론 북미대륙의 캐나다에서 여전히 발병하고 있다. 또 병원성 프레온에 의한 환경오염과 더불어 그동안 단순 치매나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던 뇌질환과 인간광우병과의 연관성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의 비합리적인 주장에 동참했던 언론이나 일부 인사들은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은 없이 요즘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의 발생이 적다는 사실 하나와 당시 군중 속에 떠돌던 유치한 일부 소문에 대한 반박만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면서 촛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동아일보>는 지난 4월 29일 '이제는 PD수첩에 묻는다… 광우병 공포, 어디로 갔나'란 기사를 통해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광우병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과 반정부 좌파 세력의 선동, 인터넷의 온갖 유언비어가 가세해 광우병 공포가 확산됐다"며 "하지만 2년이 된 오늘 우리 사회에서 광우병 공포는커녕 광우병에 대한 문의도 없다"고 주장했다.

 

누구도 질병의 발생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발생이 감소했기에 '조심하자'고 한 촛불의 주장이 과장·날조라고 생각한다면, 지난 4월 초 광우병 방역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낙후된 미국에서조차 편도를 확실히 제거하지 않은 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10톤이 넘는 쇠고기를 회수한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허접한 언론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발병도 없고 병원성 프레온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10톤이 넘는 쇠고기를 전량 회수 폐기한 것일까. 이런 것을 무의미한 국가적 비용 낭비로 보는 것이 정부와 보수언론의 입장이라면 크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으로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에 대하여 그렇게 조심하고 자국민의 건강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질병의 발생이 감소하고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은 철저한 사전주의 적용해 스스로 지켜야

 

전염병에 있어서 국제적인 사전주의(precautionary principle)만 믿고, 발병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방역과 검역에 조심하자'는 주장을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벌어준 돈이 있다고 자신은 돈 벌 필요 없이 쓰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전염병은 철저한 사전주의를 적용하여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발병 사례만을 그리 따진다면 현재 국내에서 구제역 방역을 위해 주변 동물을 철저히 살처분하는 정책이 무색해진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유독 광우병에 대해서는 국제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버리고 은밀히 이중 잣대를 적용하면서 국민의 안전을 방기한 셈이다.

 

따라서 현재는 그나마 2년 전의 촛불의 도움으로 정부가 처음 타결된 조건보다 강화된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지만, 조금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한국의 수입 타결 이후 대만, 일본, 호주 등에서 진행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변국의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과 산업 보호를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을 보면 2년 전 정부의 수입 타결 조건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자국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촛불 주장이 옳았고 당시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명백해졌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대하여 2년 전 언론에 등장해 잘못된 내용으로 정부 편을 들던 교수, 공무원, 그리고 일부 언론 기자들 그 어느 한 사람도 책임 지키기는커녕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치졸했던 자신들의 행태를 여전히 합리화하고 변명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과학적 사실이 그렇게 호도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로 볼 때 매우 큰 손실이었다. 정권이 바뀐다고 과학적 사실이 변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과학적 사실이 한 달 사이에 바꿔 버리는 상황이란 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과학문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권교체에 따라 과학적 사실이 왜곡된 것뿐만 아니라 주요 언론의 주장도 180˚ 바뀌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판정신마저 저버리는 이들이 오히려 2년 전 국민들의 당연한 주장을 여전히 좌파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 색깔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역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학마저 정치경제 논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바뀌는 사회

 

이제 2년이 지나 국제적 기준마저 무시하고 국민의 요구를 묵살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뤄질 시기다. 막대한 국가 권력과 보수언론의 말장난으로 한 때의 소나기를 잠시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코 진실을 왜곡할 수는 없다.

 

아무리 선거철이 가까워졌다고 자신들의 주장이 어긋난 것에 대해서 침묵하고 주변국의 모습에도 눈을 감은 채 모두 인정하는 발병 감소 하나만을 들이대면서 초라하게 자신을 변명할 필요 없다. 또 기본적으로 국회의원만 질문할 수 있고 증인이나 참고인은 대답만 하게 되어 있는 국회청문회에서 말장난으로 진실을 가리던 2년 전 여당 국회의원들의 모습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정당한 과학마저 정치경제 논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사회,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은 무시되는 사회, 국민의 정당한 요구마저 이념 논리로 몰아가는 사회, 정권에 따라 말 바뀌는 해바라기 언론이 기득권을 가진 사회,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탐사보도를 사태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 겨우 방송 프로그램 하나로 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왔다면서 국민을 초딩 수준으로 보는 사회.

 

이러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깨어있는 국민들의 권리 행사뿐이다. 국민을 대변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변명만 하는 정부에 대하여 더 이상 국민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준엄한 심판을 보여줘야 한다. 기득권자들이 권력과 여론 선동으로 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민중의 촛불이 결코 그렇게 쉽게 꺼지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우희종 기자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교수입니다. 


태그:#광우병,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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