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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외출' 이레째(11일), 아침에 일어나니까 동생이 와있었다. 주말이어서 왔는데 아침 먹고 내려갈 때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잖아도 전날 아내 전화를 받고 마음이 흔들리던 참인데 잘됐다 싶었다.

 

수원에서 점심약속이 있으니까 다녀와서 오후 3시쯤 출발하자고 했더니, 오후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망설이다가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 지역에서 엄마(닉네임:우리일)와 자원봉사 하는 학생(찬휘)이 착하게 보여 자장면 사주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동생이 평택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일주일이나 함께 지냈던 셋째 누님은 동생을 따라 군산으로 내려가고, 나는 수원으로 향했는데 그것도 이별이라고 서운했다.

 

수원역에서 '우리일'님을 만났는데 저녁 6시쯤 '찬휘'가 오기로 했다며, 점심을 먹고 수원 시티투어를 하고 나면 시간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자장면만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시티투어라니, 호기심이 동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은 장마 끝에 대나무 자라듯 하기 때문에,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제의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자장면' 먹으러 갔다가 만난 '정조'

 

서울의 남쪽 관문이었던 수원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혼이 서린 도시이다. 그런데 어린 학생과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왔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통해 '정조대왕'까지 만날 수 있게 되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수원 '시티투어'에 들어갔다. 3시간 정도 걸리는 '시티투어'는 수원역 광장을 출발해서 서장대(화성장대)→ 화서문→ 화홍문→ 화성행궁→ 동장대→ 수원월드컵경기장→ KBS 수원센터 등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 서장대

 

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서장대'였다.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가이드로 보이는 외국인이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타종한다는 '효원의 종'에 대해 우리말로 설명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서장대에 오르니까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효자로 알려진 정조가 조성한 도시답게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는 2층 누각으로 축조되어 있었는데 정조는 화산 능 참배 때 이곳에 들러 군사를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서암문'(西暗門)이었다. 안내문에는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가축이나 사람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뛰어난 전술과 과학을 응용한 공법으로 보였다.

 

# 화홍문(華虹門)

 

화홍문은 화성의 북수문으로 굴도리 모양의 7개 수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이드 김소영씨는 7개 수문의 크기가 각기 다른데, 자세히 보면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게 설치되어 물의 양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문 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할 목적으로 만든 화홍문은 물이 통과하는 수문에 쇠창살을 설치하여 외부의 침입을 차단했다고 한다. 특히 수문 아래로 쏟아지는 물보라는 '화홍관창'이라 하여 수원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고.

 

 

화홍문 동쪽으로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인 '동북각루' 바깥쪽에는 용연(龍淵)이라는 인공연못이 있었는데, 늘어진 버드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원앙 부부가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은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 화성행궁

 

비록 시파와 벽파로 갈라져 당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조선 500년 역사에서 영·정조 시대가 가장 태평했다고 배웠던 나에게 가이드의 설명과 안내문을 통해 정조의 효심과 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화성행궁' 방문은 도착하기 전부터 가슴을 설레게 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능 참배 시 거처하던 곳으로 총 600여 칸 규모의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복원사업이 시작되었고 1단계 공사를 마쳤다는데, 현판이 제자리에 걸려 있지 않을 걸 보니까 지금도 공사 중인 모양이었다. 

 

화성행궁의 정전(正殿) '봉수당'은 임금이 행차했을 때 쓰던 건물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렸던 곳이기도 한데, 정조는 '만년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현판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 운한각(雲漢閣)과 화령전(華寧殿)

 

'화령전'의 정전 '운한각'에는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셔놓고 있었다. '운한'은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여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 불리었다는 '시경'의 시(詩) 구에서 따왔는데, 앞에는 제사 때 악공들이 연주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계단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가운데 계단은 혼백만이 사용하는 계단이라고. 

 

화령전은 정조대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어진 봉안각'을 말한다. 정조의 초상화는 평생 세 차례 그려졌다고 하는데, 화령전에는 융복(군복)을 입은 초상화를 모셔놓고 있었다. 가이드는 화령전은 화성에서 '화'자를 따고 사서삼경의 '시경'에서 '령'자를 따서 붙였다고 설명해주었다. 

 

화령전은 국왕 순조가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찾아가 문안을 여쭙는 전각이기도 했으며, 정조의 사당인 이곳에서는 역대 국왕이 현륭원과 건릉을 다녀갈 때마다 제향을 올렸고, 지금의 초상화는 2005년에 새로 제작한 것이라 한다.

 

화령전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들은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정전'. 화재나 홍수 등 만약의 사태가 났을 때 정조의 어진을 옮겨 모시는 '어안청', 국왕 및 제사를 모시려고 화령전에 온 관리들이 몸을 깨끗이 하고 대기하는 '재실',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전사청' 등이 있다고 했다.

 

# 노래당(老來堂)

 

'노래'(老來)란 말은 "늙은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백거이'(당나라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혜경궁 홍씨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담겨 있다고 한다.

 

'노래당'은 '낙남헌'과 '득중정'에서 열리는 행사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한 건물로, 정조가 왕위를 순조에게 양위하고 내려와 머물려고 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1794년(정조18년)에 세워졌으며 출입문은 동쪽으로 작은 널문인 '난로문'과 북쪽 끝에는 '가풍문'이 나있었다.

 

화성행궁의 많은 건물 중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게 '낙남헌'이라고 하는데, 행궁 북쪽에 자리하고 있고, 누각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앞마당이 넓어 행사를 치르기 좋고, 건물 내부도 넓은 마루로 되어 있어 각종 연회를 열수 있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정조의 화성 행차 시에는 과거나 양로연 등 각종 행사가 펼쳐졌다고 하는데, '낙남헌' 안쪽에는 정조가 활을 쏘던 '득중정'이 있고, 뒤쪽에는 '노래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세 건물은 각각 독립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연결된 게 특징이라고.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동북공심돈'은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화성 전체 모습이 훤히 보일 정도로 너른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다. 성벽 안쪽으로 성벽과 따로 떨어져서 세워졌다는 게 다른 공심돈과 다른 점이고, 내부가 소라처럼 나선형으로 생겨 '소라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동북공심돈 앞은 수원시내의 대표적인 활터라고 하는데, 마침 일요일이어서 국궁체험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도 열 촉을 당겼으나 명중은커녕 과녁판도 맞추지 못하고 모두 빗나갔다.  

 

수원은 한 마디로 '전통문화와 현대 문명이 조화를 잘 이루는 도시'로 표현되겠는데, 25세에 등극해서 개혁과 문화정치를 추구했던 정조대왕의 행궁에 다녀왔다는 자체만으로 만족이며, 연무대에서 국궁 시위를 당겨본 경험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태그:#여행, #수원화성, #시티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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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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