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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TV토론에 응하느냐 마느냐는 선거 전략의 문제지,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니야. 지지율이 낮은 후보야 언론 노출 기회를 어떻게든 늘리고 싶겠지만 큰 격차로 앞서고 있는 후보는 TV토론에서 얻을 게 없잖아. 열세 후보에게 TV토론이라는 추격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선거 전략의 하나로 봐야지."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한명숙 전 총리를 감쌌다. 당내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시 되는 한명숙 예비후보가 '쿨하게' 경쟁 상대인 이계안 예비후보의 TV토론 요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선거전략론'을 꺼냈다. 냉정한 현실론이었다.

 

좀 당당하지 못해서 그렇지 'TV토론 거부'가 선거 전략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사실 민주당도 이런 전략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당선 유력 후보들이 대거 TV토론 불참을 '전략'으로 구사한 탓에 '입도 뻥긋 못하고' 대패했다.

 

2년 전 '입도 뻥긋 못하고' 대패한 민주당

 

당시 낙선이 유력시 됐던 민주당 후보들은 갖가지 이유로 TV토론을 거부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서울 동작을), 김형오 국회의장(부산 영도) 등을 향해 "떳떳하지 못하다", "비겁하다", "유권자가 심판할 것이다" 등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중앙당 차원의 논평도 냈다. 당시 유종필 대변인은 "토론 거부는 '말은 묶고 돈을 푸는' 것으로서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한나라당은 무엇이 그리 무섭고, 무엇이 그리 떳떳하지 못하고, 무엇이 그리 자신이 없어서 TV토론을 거부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민주당 내에는 TV토론 무용론이 배회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만 놓고 보더라도 한 전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어 최종 후보가 될 것이 뻔한데 굳이 TV토론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본선도 아니고 당내 경선 토론회에 누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겠느냐"는 자조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당 경선관리위원회와 한명숙 전 총리 측은 지리한 '핑퐁 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 전 총리는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당은 "TV토론 실시 여부는 후보자들간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떠넘기고 있다. 이 탓에 "토론 없는 경선은 경선이 아니다"라는 이계안 예비후보의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로 전락했다.

 

민주당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한나라당은 벌써 서울시장 후보군들이 3번의 TV토론 기회를 가졌다.

 

여야 통 털어 지지율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 원희룡 의원, 나경원 의원, 김충환 의원 등이 참여한 토론회는 크지는 않아도 나름의 흥행에도 성공했다. 동시간대 시청률은 낮았을지 모르지만 토론 내용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각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을 알릴 기회를 누렸다. 

 

만약 오세훈 시장이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다면 이 같은 당내 경선은 본선 무대를 위한 훌륭한 리허설이 될 수도 있다. 오세훈 시장 한사람에게 파상공세를 퍼부었던 세 후보만한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선 직행 노리는 한명숙과 민주당의 핑퐁 게임

 

반면 민주당과 한명숙 전 총리는 '스파링' 없는 본선행을 기획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이미 선거캠프의 TV토론팀과 함께 본선 대비에 매진하고 있다. 어차피 경선은 100% 여론조사 경선이고 TV토론마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선 통과를 위해 별로 준비할 게 없긴 하다.

 

본선에서 쓸 칼을 당내 예선에서 미리 뽑지 않겠다는 계산도 깔렸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경쟁자를 포용하면서 정정 당당한 승부를 벌이는 대신 '대세론' 속에 지나치게 안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 일각에서는 "반MB 전선 속에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 "한 전 총리가 성역이냐"고 반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명숙 전 총리가 오세훈 시장을 위협하는 야권 유력 후보가 된 것은 8할이 검찰의 '삽질' 덕분이었다. 앞으로 나머지 2할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본선의 성적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 첫 걸음은 "자기가 속한 당 후보와 경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당 후보와 경쟁하겠느냐"는 이계안 후보의 항변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물음에 최소한 답이라도 내놓는 것이 같은 당원에 대한 예의다.

 

여기에 경선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경쟁자들이 수긍하고 흔쾌히 승복할 수 있는 약자 배려형, 소통과 통합형 게임의 룰까지 만든다면 금상첨화다.


태그:#한명숙, #이계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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